[기고/나춘균]환자가 약국을 선택하게 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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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춘균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나춘균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우리나라처럼 선진국의 정책을 빨리 도입하는 나라도 없는 것 같다. 특히 의료정책에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진다. 1977년 시행된 의료보험이 12년 만인 1989년 전 국민으로 확대됐는가 하면 2000년에는 의약분업이 전격 도입됐다.

문제는 속도만큼 내용도 충실했느냐는 점이다. 건강보험으로 이름이 바뀐 의료보험은 국민 입장에서는 여전히 보장성이 낮아 가계부담으로 허덕이고 있고, 병·의원들은 저수가로 수입이 적어 먹고살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의약분업은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들어주다보니 소비자 편의는 외면해 버렸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병원이 외래환자에게는 약을 조제해 주지 않는 기관분업이라는 기형적인 분업형태다.

일본의 경우 병원 외래약국 허용 여부를 지방자치단체의 결정에 맡기고 있다. 다만 도쿄도과 같이 병원에 외래약국을 허용하는 지방자치단체의 경우 병원 외래약국에서 약을 타면 환자 부담금을 더 내게 하고 있는 것으로 환자편의도 봐주면서 의약분업의 취지를 살리고 있다.

지난해 대한병원협회는 환자에게 조제처 선택권을 주자는 취지의 ‘의약분업제도 개선을 위한 대국민캠페인’을 벌여 264만 명의 서명을 받았다. 한국리서치 조사 결과에서도 응답자의 73%가 불편을 호소하며 개선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환자들이 불필요한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한데도 정부와 모든 이해당사자들이 관련 규정의 개선을 외면하고 있다. 병원협회가 제도 개선을 요구해도 ‘밥그릇’싸움쯤으로 취급한다.

박근혜 정부는 4대 중증질환의 보장성 강화를 비롯해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간병비 등 소비자들이 부담을 느끼거나 불편을 겪고 있는 것을 해소하는 정책을 추진 중이다. 환자들이 약을 지을 수 있는 곳을 선택할 수 있게 되면 병원과 약국 두 군데를 오가는 데 따른 불편과 적지 않은 금액의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고, 건강보험 재정에 미치는 영향도 거의 없다는 점에서 새 정부의 의료정책 기조에도 부합한다. 이해관계를 떠나 국민 입장에서 생각하는 정책이 아쉽다.

나춘균 대한병원협회 보험위원장
#의료정책#약국#건강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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