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의회 자료제출 요구 봇물, 교사들 “학생지도 어떻게 하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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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업체에 정보제공 여부 밝히라”
비교육적 주문에 일선학교 반발… 일각 “文교육감 길들이기” 시각도

서울의 A고교는 최근 서울시교육청에서 보낸 공문을 하나 받았다. 이런 내용이었다. ‘사교육업체로의 진학 관련 정보 제공 내역을 파악하고자 하오니 관련 자료를 제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공문은 제출 방식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①제공 업체=××업체 ②제공 방법=전화 문의에 답변 ③제공 내용=2013학년도 주요 대학 진학 결과 ④비고=업무담당자 실수로 해당 자료를 제공함’

교장은 공문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1년 중 가장 바쁜 때 교육 본질과 상관없는 잡무 요청을 받으니 황당했다. 더 어이없는 점은 학교를 사교육업체에 자료를 유출하는 통로 수준으로 보는 비상식적인 사고방식이다.”

사실 서울시교육청도 어쩔 수 없었다. 김형태 서울시의회 교육의원의 요구를 피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교육청 관계자는 “전체 학교에 전달하는 우리도 미안하다. 하지만 예산을 쥔 시의회 회기가 코앞이라 납작 엎드릴 수밖에 없다”라고 털어놨다.

시의회의 자료 요구로 일선 학교가 요즘 몸살을 앓고 있다. 3, 4월은 초중고교가 개학 이후 가장 바쁜 시기. 새로 편성된 학급 관리, 행정처리는 물론 교과목 연구까지 하느라 눈코 뜰 새 없다. 여기에 자료 요구가 이어지니 불만이 나온다. 서울 송파구 B고교 영어교사는 “교사들끼린 이를 3월의 악몽이라 부른다. 애꿎은 곳에 힘을 쓰면 피해는 모두 학생 몫”이라고 했다.

시의회의 요구 자료를 처리하는 데 애먹기는 교육청도 마찬가지다. 의원의 자료 요구 내용은 교육청의 교육자치과 의회협력팀에 전달된다. 이어 교육청 해당 부서와 교육지원청을 거쳐 일선 학교로 간다. 교육청의 장학관은 “애매한 공문이 내려가면 일선 학교에서 문의가 빗발친다. 며칠 동안 우리도 업무에 집중하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시의회도 이런 실정을 모르는 건 아니다. 지난해에는 3월 한 달을 공문서 50% 감축의 달로 정했다. 당시 곽노현 전 교육감이 “가장 시급한 교육 현안은 선생님들이 수업과 생활지도라는 본연의 임무를 수행하도록 돕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시의회는 “적극 협조하겠다”며 화답했다.

실제 시의회의 자료 요구는 지난해 3월에 19건으로 2011년 3월 59건보다 크게 줄었다. 그러다 올해 3월 다시 46건으로 늘었다. 요구 문항 수는 153개에 이른다. 이를 두고 문용린 서울시교육감 ‘길들이기’ 아니냐는 말까지 나온다. 문 교육감은 혁신학교, 학생인권옹호관 조례를 두고 시의회와 마찰을 빚었다. 교육감 취임 직후인 올해 1월 시의회의 자료 요구는 64건. 이에 김 의원은 “교육감이 불통(不通)이다 보니 자료 요구권을 적극 활용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사교육업체에 정보 제공한 내용을 요구한 부분과 관련해선 “공교육이 해야 할 일에 사교육 업체가 나서는 게 문제라 생각해 경로 확인 차원에서 요청했다”고 밝혔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시의회#교육청#자료제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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