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H]고창석 “주인공은 싫어…연기 빼곤 깜냥 안 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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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1일 07시 00분


연극으로 출발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개성강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 고창석은 “마흔이 돼서야 배우로마 일하며 먹고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연극으로 출발해 영화와 드라마를 넘나들며 개성강한 연기를 펼치는 배우 고창석은 “마흔이 돼서야 배우로마 일하며 먹고 살기 시작했다”고 했다.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이 노래한 것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가치 있고 빛이 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드라마나 영화의 진한 이야기를 든든하게 받쳐주는 배우, 묵직한 무게감으로 변치 않는 팬들의 사랑을 받는 가수, 명작을 탄생시키기 위해 밤을 지새우는 스태프 등 각 분야에서 묵묵히 존재감을 빛내고 있는 인물들의 사람 냄새(Human)나는 따뜻한 이야기(History)를 ‘H스토리’를 통해 전합니다.

■ 동네 아저씨 같은 ‘귀요미’ 조연배우 고창석

“마흔 돼서야 배우로만 먹고살기 시작
지금은 연기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다”

동료들에게 연기 잘하는 배우로 정평
타고난 뚝심과 넉살로 연기열정 활활
아내와 부부 2인극 준비 “연말쯤 무대”

“사람들 사는 것처럼 살아야지.”

주변에 살고 있는 이웃들처럼 평범하게 산다는 것. 그리 특별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말이 누군가에는 참 어려운 일이 되기도 한다. 다른 누군가의 인생을 드라마나 영화, 무대를 통해 대신 살고 있는 배우들에게 이러한 삶은 가장 ‘가까워’야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실제 그들의 삶은 평범함과는 거리가 멀다. 배우 스스로가 느끼는 현실과 이상 사이의 큰 괴리 중 하나다.

여러 작품 속에서 소시민적인 캐릭터에 맛과 재미를 더하며 어느새 ‘안 보이면 허전’하기까지 한 배우 고창석(43). 평소 무대가 끝난 후 “동료들과 대포 한 잔 안 하고는 못 배긴다”는 그의 삶은 막걸리만큼이나 소탈하다. 오래된 동네 대중목욕탕이나 길거리 포장마차, 마을버스 등 그가 즐겨찾는 풍경에서도 그동안 연기한 캐릭터들의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연기를 업으로 삼는 배우들 중 주인공을 마다할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하지만 고창석은 “주인공은 싫다”고 잘라 말한다. 연기에 자신이 없어서가 아니다. 아직은 “연기 외적인 시청률이나 관객 등 외부적인 것까지 감당할 수 있는 깜냥이 안 된다”는 생각에서다.

“연기만 해서 먹고 산 게 얼마 안됐다”는 그의 말에서도 연기 하나에만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드러났다. 부산에서 극단 생활을 하다 충무로에 입성한 고창석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생계를 위해 연기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했다.

“마흔이 되어서야 배우로만 일하며 먹고 살기 시작했다. 1년 동안 영화 여러 편에 출연해서 1000만원을 벌 때도 있었다. 지금은 그때보다야 훨씬 좋아졌지. 그때보다 몇 배는 더 버는데 여전히 마누라랑 돈 때문에 투닥거리는 걸 보면 참 신기해. 옛날엔 연기를 하고 싶어서 돈을 벌었다면 이젠 상황이 나아져 연기에만 집중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그 시간을 좀 만끽하고 싶다.”

고창석은 ‘내공 꽤나 있다’는 배우들 사이에서도 연기 잘 하는 배우로 정평이 나 있다. 특히 작은 역할이라도 작품 속에서 존재감 있는 캐릭터로 색을 입히는 데 일가견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 속에는 부산에서 탈춤과 사물놀이로 출발해 노래패, 부산외대 총학생회장, 마임 극단, 철공소 등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스물아홉의 나이에 서울예대 연극과에 지원해 10살이나 어린 동생들을 깎듯이 ‘선배’로 모시던 그의 넉살이 고스란히 묻어 있다.

그런 뚝심은 그의 연기론에서도 가장 잘 드러난다. 고창석은 “내가 시골 극단의 배우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송강호, 설경구 선배보다 열등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배우 짓은 결국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못하는 거다. 10년 전의 나와 비교했을 때 얼마나 식지 않은 열정으로 연기를 대하고 있는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주 무대인 스크린을 벗어나 올해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와 최근 종영한 KBS 2TV 드라마 ‘광고천재 이태백’으로 무대를 넓힌 고창석은 이제 다양성을 고민하고 있다. 단순히 연기와 캐릭터의 다양성을 넘어 활동 장르에 대한 고민도 포함돼 있다.

그 중 하나로 결혼 후 가정을 위해 꿈을 접은 아내이자 배우 이정은을 위해 준비 중인 부부 2인극은 연말쯤 선보일 계획이다. 현재는 대본 작업에 한창이다.

고창석은 “최근에 ‘벽을 뚫는 남자’ 식구들과 막걸리를 한 잔 했는데 은근히 판이 커질 수도 있을 것 같다.(웃음) 대학로에 배우 부부가 꽤 있더라. 사실 마누라와 둘이서 하면 벅차지 않을까 했는데 나눠서 하면 더 좋을 것 같고. 어차피 같이 사니까 연습은 각자 집에서 하고 우리 동네 마을 소극장에서 공연하면 되지 않을까”라며 덥수룩한 수염을 만지작거리면서 사람 좋은 웃음을 웃었다.

배우 고창석.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배우 고창석. 김종원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 배우 고창석?

1970년 부산 출생.
서울예술대학 연극과 졸업.
극단 ‘사다리 움직임 연구소’ 창단.
2004년 영화 ‘마지막 늑대’와 ‘친절한 금자씨’로 충무로 입성.
2008년 ‘영화는 영화다’ 봉 감독 역으로 이름 석 자를 널리 알림.
‘혈투’ ‘헬로우 고스트’ ‘의형제’에서 비중 있는 조연으로 활약.
‘부산’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미쓰고’ ‘고지전’ 등으로 한국영화 대표 ‘신 스틸러’로 활약 중.

김민정 기자 ricky337@donga.com 트위터 @ricky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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