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 실종된 밀라노 가구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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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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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경기침체 영향으로 짙은 그늘… 2013년 전시 주제로 ‘혁신’ 내걸었지만
신제품보다는 기존제품 ‘변형’ 주력… 노랑-보라-녹색 등 화려한 색상 특징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부속 행사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사무용 가구 박람회의 쇼룸. 이전에 잘 쓰이지 않았던 녹색과 보라색 톤의 소파가 인상적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이탈리아 밀라노 가구박람회의 부속 행사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사무용 가구 박람회의 쇼룸. 이전에 잘 쓰이지 않았던 녹색과 보라색 톤의 소파가 인상적이다. 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이탈리아는 20세기 중반 이후 세계 가구 디자인의 흐름을 좌우해 왔다. 이탈리아 가구업계는 북유럽 국가나 독일 같은 다른 가구 강국보다 새로운 트렌드를 빨리 받아들이고 그것을 신속하게 제품에 반영해 성장을 거듭했다.

특히 1961년 이후 매년 4월 열리는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는 이탈리아 가구산업 발전의 일등공신으로 꼽힌다. 이탈리아 가구업체들이 혁신적인 제품을 발표하고 세계에 널리 알리는 무대를 제공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경기침체는 이탈리아 가구업계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9일 오전 9시(현지 시간) 밀라노 외곽의 ‘피에라 밀라노’ 전시장. 축구장 30개 넓이의 전시장에 2500여 업체가 부스를 마련했다. ‘밀라노 국제가구박람회 2013’을 보기 위해 관람객들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오랜 시간 기다려 입장한 관람객들은 큰 기대를 안고 테마별 전시관으로 흩어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대체 지난해에 비해 달라진 것이 무엇인가”라는 말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특히 올해의 전시 주제인 ‘혁신’의 참모습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탈리아 가구업계는 요즘 경영난을 호소하고 있다. 한때 3만8000개에 이르던 가구업체는 최근 5년 사이 1만4000개나 줄었다. 일자리를 잃은 가구업계 종사자는 6만 명에 이른다.

아무리 어려워도 50여 년 역사의 무게는 쉽게 없어지지 않는다. 이번 행사에서도 크지는 않지만 몇 가지 새로운 트렌드가 관측됐다.

첫 번째는 모던함을 추구해 온 최근 디자인에 변화의 흐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올해 박람회에서는 모던 디자인에 클래식과 자연적인 요소를 결합하려는 시도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탈리아의 세계적인 가구 브랜드 ‘체코티 콜레치오니’ 관계자는 “모던 디자인의 차가운 느낌을 원목 등 천연 소재의 따뜻함으로 보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노랑과 보라, 녹색 등 이전에는 많이 쓰이지 않았던 색상이 등장한 것도 특징이다. 이런 시도는 회색과 흑백 등 무채색 위주였던 사무용 가구에서도 나타났다.

이번 행사에서는 중국인들의 모습이 유독 눈에 많이 띄었다. 중국인 디자이너들은 곳곳에서 전시 담당자들과 토론을 벌였다. 행사장 출입구에서는 이탈리아와 중국인 아르바이트생들이 하반기 중국에서 열리는 가구 전시회 홍보용 쇼핑가방을 관람객들에게 나눠줬다.

이탈리아 가구업계는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해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행사장 안에서는 중국 업체들의 불법 복제를 막기 위해 사진 촬영을 막기도 했다. 중국은 싼 인건비와 솜씨 좋은 기능공들을 기반으로 이탈리아 가구업계를 위협하고 있다. 밀라노 가구박람회 두세 달 뒤 진짜와 거의 같은 복제품이 나온다.

반면 중국 시장을 새로운 기회로 이용하려는 움직임도 있었다. 전시회장 안내 잡지의 표지에 중국어가 등장했고, 주최 측도 중국 관람객과 언론을 배려했다. 한국 취재진이 쓰기로 했던 인터뷰 룸을 사용 20분을 앞두고 중국 취재진에게 배정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가구업계 홍보 담당인 라코포 파프 씨는 “우리는 중국이라는 ‘배’에 어떻게 올라탈 것인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밀라노=문권모 기자 mikemoon@donga.com
#이탈리아#밀라노 가구박람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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