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정양환]진격의 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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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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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양환 문화부 기자
정양환 문화부 기자
지난 주말 국내 포털사이트 검색어 순위는 다소 예상외였다. 경기 때마다 당연한 듯 관심이 들끓던 잉글랜드 축구 프리미어리그, 월요일 새벽 등판할 메이저리그 류현진이 최고 관심사가 아니었다. 내놓는 노래마다 난리 났던 SBS ‘K팝스타2’ 악동뮤지션의 우승도, 누구누구의 연애설이나 사건사고도 수위에 오르진 못했다. 이틀 내내 부동의 1위 검색어는 일본 만화 팬이 아니라면 생경할, ‘진격의 거인’이었다.

사정은 이렇다. 원래 진격의 거인은 2009년부터 연재한 일본 만화다. 단행본은 현재 9권까지 나왔는데 현지에서만 1200만 부 이상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그 만화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긴 작품의 첫 회가 7일 일본 방송에서 전파를 탔다. 이에 한국 누리꾼들이 폭발적으로 열광하며 검색어 1위까지 차지한 것. 지금도 인터넷을 찾아보면 엄청난 리뷰와 찬사를 마주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진격의 거인 소식은 정말 반갑다. 2011년 잠깐 만화 칼럼을 쓸 때 굉장한 작품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SF(공상과학) 장르물인데, 스토리가 탄탄해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어린 세대가 일본 만화에 몰입한단 우려의 시선은 거두시길. 글로벌 한류 시대에 그런 잣대는 너무 편협하다. 그리고 요즘 애들이 얼마나 영악한데. 그리 쉽게 휘둘리지 않는다.

그럼 국내외에서 진격의 거인은 왜 이리 인기일까. 워낙 액션신이 호쾌하지만, 현 시대상을 투영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인간을 잡아먹는 거인들에 갇혀 몸부림치는 인류. 그 모습에서 젊은이들이 갈수록 팍팍해지는 삶에 절망을 느낀단 얘기다. 상대를 밟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무한경쟁에 대한 두려움이 배어 있단 평가도 있다.

그런데 진격의 거인엔 또 다른 음울한 현실도 존재한다. 드높은 벽을 쌓아 오랫동안 거인이 뚫지 못하니 성 안에서 ‘새장 속 평화’에 안주하는 군상들이 늘어난다. 바깥에 존재하는 위험에 눈을 감고, 거인과 싸워야 할 의무는 군인들의 책임으로 떠넘긴다. 막상 100년 만에 초(超)거인이 벽을 무너뜨렸을 때, 그들은 비탄에 잠긴 채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는다.

이런 모습, 왠지 익숙하지 않은가. 요즘 외신을 보면 그들은 현재 남한의 풍경이 참 신기한 모양이다. 북쪽에서 저렇게 엄포를 놓는데 별다른 동요가 없기 때문이다. 이게 과연 대한민국의 전쟁 억제력에 대한 자신감에서 나온 것일까. 수십 년째 듣던 소리인지라 그러려니 하는지도 모르겠다. 다만 협박에 단련되는 것과 무뎌지는 건 큰 차이가 있다. 탄탄한 대비는 차선이라도 거머쥐지만, 뭉툭한 허술함은 최악을 보장한다. 그들이 거인은 아니다. 하지만 진격조차 못할 거란 예단은 금물이다.

정양환 문화부 기자 ra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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