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무쇠의 사업가와 여린 숙녀의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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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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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북부와 남부’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영국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된 산업혁명은 영국을 세계 최대의 부강국으로 만들었다. 산업혁명의 혜택은 이루 다 나열할 수 없는 것이었지만, 산업혁명이 야기한 극심한 사회적 갈등과 병폐, 그중에도 노동자들의 고통과 희생은 아직도 영국민에게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그래서 작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의 주제도 산업혁명 상처의 치유였다. 복지국가를 이룩해서 산업혁명 전선에서 상처받은 노동자를 국가가 치유하고 보듬어 모든 국민이 함께 행복한 나라를 만들었다는 자랑 혹은 자기 변호였다.

‘북부와 남부’(North and South·1855년)의 저자 엘리자베스 개스켈의 남편은 19세기 최대의 산업도시 맨체스터(이 소설에서는 밀튼-노던으로 지칭됨)에서 급진주의적 기독교 교파인 유니테리언 교회의 목사로 봉직했다. 국부(國富) 창출의 현장이면서 인간 고통의 전시장이었던 이 대도시에서 사업가와 노동자, 노동운동가들을 폭넓게 만나면서 빈민 구제와 교육 활동을 했다. 개스켈은 이런 남편을 뒷받침하면서 산업화에 수반되는 사회문제를 폭넓게 파악했다.

한편 개스켈은 4남매를 기르면서 6편의 장편소설과 수십 편의 중·단편 소설, 그리고 샬럿 브론테의 전기, 자신의 육아일기, 시사 문제에 관한 글들을 발표했다. 장편소설 중에서 두 편은 산업소설이었는데, 첫 장편 ‘메리 바튼’(Mary Barton·1848년)에서는 악덕 기업가로 인해 고통받는 노동자의 처지를 집중 조명했다. 그리고 네 번째 장편인 ‘북부와 남부’에서는 기업가와 노동자의 입장을 공히 조명하면서 양자 간의 화해와 상생의 방안을 제시하려 노력했다. 이 작품에서는 또한 기업가와 노동자를 포괄하는 북부의 산업세력과 남부의 전통 농경귀족들의 서로에 대한 편견과 불신도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는 ‘신사’가 전통적으로 영국의 가치를 대표하는 존재였다. 그러나 영국이 세계 제일의 부강국이 된 데는 노동자 출신 기업가들의 힘이 컸다. 이에 따라 ‘자수성가’의 이력이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전통 상류사회는 자수성가의 신화에 냉담했고, 대체로 기업가를 돈을 위해서라면 영혼을 파는 모리배로 간주했다.

자수성가의 전형인 손튼은 아버지로부터 빚과 불명예를 유산으로 받고 열네 살 때부터 노동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했다. 그의 강인한 어머니는 그의 15실링 주급 중 3실링씩을 저축해 그가 조그맣게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자본을 마련해 주었다. 또 그가 법적으로 변제 책임이 없는 아버지의 빚을 필사적으로 갚는 것을 본 어느 채권자가 그의 사업에 출자해 기업을 확장할 수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모범 기업가로 자부하지만 목사의 딸인 마가렛이 모든 기업가를 이윤밖에 모르고 노동자를 착취하는 무뢰한으로 생각하는 데에 큰 모멸감을 느낀다. 그래서 자기는 ‘신사’가 가장 바람직한 존재가 아니고 온전한 ‘인간’(man)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선언한다. 기실 그는 썩 훌륭한 인간이었지만 깨닫고 극복해야 할 점이 적지 않았고, 이 과정에 마가렛의 자극이 큰 역할을 한다. 마가렛 역시 북부 기업가들의 결단과 추진력, 그리고 비전에서 새로운 가치를 발견하고 종전의 개념을 수정하고 시야를 넓힌다.

손튼은 의회가 석탄의 완전연소장치 설치를 의무화하기 전에 자발적으로 도입해서 고용인들의 건강도 보호하고 경제적인 이득도 보고 있다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토록 스스로에게 엄격함으로써 성공했기 때문에 가난하고 비참한 사람은 게으르고 의지가 박약해서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라고 단정하는 비정함도 지니고 있다.

그 비정함은 마가렛을 통해 여러 사람을 만나게 되면서 녹아내린다. 딸이 방직공장에서 섬유 보푸라기를 오래 흡입해 폐질환으로 죽은 노조 지도자 히긴스, 병든 아내와 여덟 명의 어린 자녀 때문에 파업 중 작업에 복귀했다가 동료들에게 배반자로 몰려서 자살한 부쉐의 유가족…. 손튼은 자기 공장의 노동자들과 자주 만나며 인간적으로 친해짐으로써 그들과 이익공동체를 이룬다.

손튼과 마가렛의 애정곡선은 아이러니로 가득하다.

그들이 처음 만날 때 손튼은 자부심이 드높은 성공한 사업가였지만 사업가를 ‘신사’로 보지 않는 마가렛은 그를 외계인 보듯 한다. 손튼은 자신의 인격과 자기 일의 가치에 대한 소신이 확고하지만 마가렛 앞에서 자신이 투박하고 촌스러운 인간으로 느껴지는 것을 어쩔 수 없다. 한편 자기 아들이 영국 최고의 신랑감이라고 확신하는 손튼 부인은 아들이 무일푼인 주제에 고고한 마가렛을 연모하는 것이 너무나 원통하다. 그리고 마가렛은 손튼에 대한 반감이 호감으로 변한 후에도 자기가 그의 재산을 노린다는 오해를 받을까 봐 몸을 사린다.

오로지 기업가가 되기 위해 태어난 것 같은 강철의 사나이 손튼이 마가렛에게 간절한 사랑을 호소하는 절절한 말은 독자의 가슴을 울린다. 병약한 어머니와 심약한 아버지를 위해 집안의 기둥이 되어야 했던 여린 마가렛이 나중에 존재를 숨겨야 하는 오빠 때문에, 손튼이 품게 되었을 오해 때문에 여러 해 괴로워하는 모습은 독자를 안타깝게 한다. 그래서 이 소설은 당대의 사회문제에 대한 치열한 분석이면서 또한 낭만적 독자도 행복하게 해 준다.

● 북부와 남부 줄거리는


시골 마을에서 영국 국교회 목사로 봉직하던 헤일 씨는 중년에 신앙적 갈등으로 목사직을 사임한다. 그리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고전을 공부하고 싶다는 어느 젊은 사업가의 개인교수가 되기 위해 거대한 공업도시 밀튼-노던으로 이사한다.

그의 생도가 된 사업가 손튼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노름빚을 지고 자살한 이후 소년가장으로 어머니와 동생을 부양했고, 지극히 소자본으로 시작한 사업이 크게 성공해 30세의 젊은 나이에 그 도시의 유력 기업가 반열에 끼게 되었다. 성공한 사업가로서 숨 가쁘게 바쁜 와중에도 모자라는 소양을 보충하고 싶어 할 만큼 물질에 매몰되지 않은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그때까지 여성을 눈여겨보지 않았으나 헤일 씨의 딸 마가렛의 우아함에 크게 마음의 동요를 느낀다. 허약 체질의 헤일 부인은 밀튼-노던 시의 오염된 공기 때문에 건강이 몹시 나빠진다.

얼마 후 밀튼-노던 시 노동자연합이 총파업을 결의한다. 파업에 대해 질문을 받고 손튼은 노동자들이 경기 변동으로 인해 임금 삭감이 불가피하다는 걸 모르고 선동가들에 휘둘려 자기 무덤을 파고 있다고 선언한다. 마가렛은 분개해서 왜 기업주가 노동자들에게 형편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느냐고 반박한다.

파업의 열기는 곧 온 도시를 삼킨다. 마가렛이 병든 어머니를 위해 손튼의 어머니인 손튼 부인의 물침대를 빌리러 손튼의 집을 방문했을 때, 분기가 오른 노동자들이 그의 집 앞까지 밀려들었다. 손튼은 걱정하는 어머니와 여동생에게 “군대 출동을 요청했으니 20분만 견디면 된다”고 말한다. 마가렛은 또 한 번 분노해서 군대의 진압에 의해 희생자가 나지 않도록 남자답게 군중 앞에 나가 그들을 설득해서 해산시키라고 촉구한다.

손튼은 문을 열고 나가 독이 오른 군중 앞에 선다. 손튼을 향해 나막신을 벗어 던지려는 군중을 본 마가렛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마가렛은 자신이 손튼을 폭도의 제물로 내몰았다는 생각에 뛰쳐나가 그의 앞을 막아선다. 마가렛은 군중 속에서 날아온 돌에 맞아 피를 흘리며 기절하고, 손튼은 군중 가운데로 들어가서 그들의 요구를 절대 들어줄 수 없으니 나를 죽이려면 죽이라고 하지만 군중은 피 흘리는 여자를 보고 당황해서 흩어진다.

손튼은 목숨을 걸고 자신을 구해 준 마가렛에게 애절한 구혼을 하지만 마가렛은 잔인할 정도로 냉랭하게 거절한다. 파업의 위기를 넘기고 손튼의 사업은 번창했으나 몇 해 뒤 정도(正道) 경영을 고집하던 손튼은 업계의 비리에 가담하지 못해서 도산한다.

손튼에 대한 감정이 반감에서 연정으로 변했으나 표현하지 못하고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밀튼-노던을 떠난 마가렛은 아버지의 친구가 그녀에게 큰 유산을 물려주어 부자가 된다. 마가렛은 도산한 손튼에게 그의 사업에 출자하겠다는 사업적 제안을 하고, 그녀의 마음을 읽은 손튼은 감격의 청혼을 한다.

※다음 회에는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스’가 소개됩니다.

서지문 고려대 교수·영문학
#엘리자베스 개스켈#북부와 남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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