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것엔 있는데… 버려진 컷이 궁금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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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객과 만나지 못한 장면들

①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류승룡)는 이화여대 무용학과 97학번의 단체 점퍼를 입고 나온다. 관객은 용구가 왜 이 점퍼를 입었을까 궁금하다. 고물상 아주머니가 아빠에게 주라며 예승(갈소원)에게 이 점퍼를 선물하는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간다. ② ‘신세계’의 소금창고에서 내부의 적을 죽이고 셔츠에 피를 잔뜩 묻힌 정청(황정민·왼쪽)이 자성(이정재)과 마주한 장면. 이 장면 이후 둘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잘렸다. 뉴 제공
① ‘7번방의 선물’에서 용구(류승룡)는 이화여대 무용학과 97학번의 단체 점퍼를 입고 나온다. 관객은 용구가 왜 이 점퍼를 입었을까 궁금하다. 고물상 아주머니가 아빠에게 주라며 예승(갈소원)에게 이 점퍼를 선물하는 장면이 편집 과정에서 잘렸다는 사실을 알면 이해가 간다. ② ‘신세계’의 소금창고에서 내부의 적을 죽이고 셔츠에 피를 잔뜩 묻힌 정청(황정민·왼쪽)이 자성(이정재)과 마주한 장면. 이 장면 이후 둘이 대화를 나누는 부분이 잘렸다. 뉴 제공
《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촬영장에서 날것으로 담겼던 장면들은 편집실에서 명품이 된다. 편집을 거치며 보다 탄탄한 이야기와 캐릭터가 만들어진다. 편집은 삭제가 아닌 재창조의 과정인 셈이다. 하지만 감독과 스태프, 배우가 고생하며 찍은 장면들 중 관객과 만나지 못하고 버려진 컷은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러닝타임 2시간 14분인 ‘신세계’의 1차 편집본은 3시간 반이었다. 제작사와 박훈정 감독은 이 편집본이 지루한 부분 없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업영화의 상영시간에 맞추느라 최종 편집을 거치며 ‘엑기스’만 살아남았다.

박 감독에게 자른 부분 중 가장 아까운 장면을 꼽아 달라고 했다. 폭력 조직의 2인자인 정청(황정민)이 소금창고에서 조직에 침투한 경찰을 ‘숙청’하고 난 뒤의 장면이었다. 관객은 정청이 피 묻은 손을 빗물에 씻는 장면까지만 봤다.(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영화를 안 본 독자는 읽지 마시길.)

피를 씻고 난 정청은 담배를 빼 문다. 자성(이정재)에게 담배를 권하자 자성이 묻는다. “나 괜찮은 거요?” 정청은 답한다. “안 괜찮지, 이 ×××아.” 자성이 경찰이라는 사실을 정청이 알고 있다는 것을 얼핏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야기 흐름을 고려해 컷!

‘건축학개론’에서 승민(엄태웅)의 약혼녀 은채(고준희)는 서연(한가인)이 승민의 첫사랑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1차 편집본에서는 알고 있었다. 빠진 장면의 대사는 이렇다.

“어떤 사이야?”(은채) “옛날에 내가 서연이를 많이 좋아했었어.”(승민) “그게 다야?”(은채) “응, 그게 다야.”(승민) “응, 그럼 됐어.”(은채)

이 장면은 영화 마지막에서 은채와 승민이 행복한 모습으로 비행기를 타는 장면과 맞물려 필요한 장면이었지만 아쉽게도 빠졌다. 이 장면을 비롯해 고준희가 출연한 컷이 많이 잘렸다. 제작사 명필름은 미안한 마음에 그를 조연이 아니라 특별출연으로 엔드 크레디트에 소개했다.

‘7번방의 선물’에서는 간통죄로 교도소에 들어온 만범(김정태)이 예승이(갈소원)를 음흉하게 바라보다가 방 식구들에게 몰매를 맞는 장면이 있었다. 하지만 부정(父情)을 감동적으로 그린 영화에 적절하지 않다는 이유로 삭제됐다.

각본을 쓴 이환경 감독이 못다 한 이야기도 있다. 바로 예승 엄마에 관한 부분이다. 원래 시나리오에는 예승이 엄마와 용구(류승룡)의 로맨스가 있었다. 다리를 다쳐 무용을 포기한 예승이 엄마는 나이트클럽에서 춤을 추다 주방보조로 일하는 용구를 만난다. 두 사람은 결혼해 예승이를 낳았지만 불이 나 예승이 엄마가 죽는다. 이 장면은 지난해 가을 촬영 때 태풍이 부는 등 여건이 좋지 않아 찍지 못했다.

편집회의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장면도 있다. 임권택 감독의 아들인 권현상은 하마터면 ‘타워’에 출연하고도 스크린에 얼굴을 못 내밀 뻔했다. 그는 극 중 환경미화원 아주머니의 아들로 나오는데, 이 모자의 출연 장면을 통째로 빼자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제작진은 여러 번의 사전 시사회를 거쳐 모자의 이야기가 감동적이라는 관객 반응을 확인하고 이들을 ‘살려줬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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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신세계#건축학개론#7번방의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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