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영희]가까이 다가온 독립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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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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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서울대의 언론정보연구소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범학문통합연구소가 공동으로 개화기 신문인 ‘독립신문’의 전체 기사를 전산 텍스트로 구축하고, 현대의 표기법으로 변환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옛 표기법의 원문 텍스트와 현대어 표기 텍스트를 한 화면에 병렬 배치한 병렬코퍼스(parallel corpus)로 원문과 현대어 표기를 함께 읽을 수 있게 한 것이다. 또한 조사하려는 단어를 입력하면 인터넷상에서 모든 관련 기사가 검색되고, 바로 컴퓨터 화면에서 확인할 수 있도록 하여 ‘독립신문’의 접근과 활용을 편리하게 했다. 신문의 날을 앞둔 4일 한국정보화진흥원 회의실에서는 이와 같은 작업 과정과 활용사례를 소개한 ‘독립신문 전산DB 구축과 활용’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작업은 독립신문 논설의 필자가 과연 누구인가 하는 의문에서 시작되었다. 지금까지 독립신문 논설의 필자 판별은 대부분 당시 상황이나 논설의 내용 등을 보고 추정한 간접적 저자판별 방법이어서 정확하다고 보기 어려웠다. 그래서 객관적이고 계량적인 문체 분석방법으로 독립신문 논설필자 판별 작업을 수행한 것이다. 분석 결과 서재필의 경우에는 비교적 명확한 패턴이 나타나지만 주시경은 그렇지 않은 양상을 보였다. 따라서 1896년 4월 7일 독립신문 창간을 기점으로 1898년 5월 서재필이 미국으로 가기 전의 독립신문 논설 대부분은 서재필이 집필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었다.

독립신문 논설 전산자료를 활용해 독립신문에서 신문의 공공성 개념을 뜻하는 단어로 “공변(되다)”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음을 확인한 것도 뜻깊은 일이었다. 공정성과 정확성의 두 가지 의미를 강조한 이 단어는 조선시대에는 거의 사용하지 않은 개화기의 독특한 표현이다. 또한 조선시대에도 사용했던 언론(言論)이란 단어에 오늘날의 저널리즘의 의미가 추가되어 사용하기 시작한 것도 확인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언론보다 더 많이 사용한 간쟁(諫諍)은 저널리즘 의미로 사용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연구들을 계기로 독립신문 전체 기사를 전산화하고, 현대어 표기법으로 변환하는 작업으로 확대한 것이다.

독립신문 기사를 현대어 표기로 변환하는 작업은 2011년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에서 시작했다.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홍윤표 명예교수가 제공한 1차 전산자료를 원문과 대조하면서 교정과 정리 작업을 진행했다. 이 작업 과정에서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의 도움을 받았다.

이번 독립신문 전산DB 구축과 현대어 표기 변환은 컴퓨터 텍스트를 활용한 언론사(言論史) 연구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매우 크다. 신문은 그 시대의 생활상을 가장 생생하게 보여주는 자료이다. 앞으로 대한매일신보를 비롯한 개화기 주요 신문들도 전산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작업은 옛 신문의 활용도를 높여 연구자에게는 물론이고 콘텐츠 산업에도 다양한 소재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대한 정부당국의 정책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이번에 개발된 독립신문 전산DB는 보완작업을 거쳐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홈페이지와 연결해 일반에 공개할 예정이다.

김영희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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