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연수]세금 파라다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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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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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본 아이덴티티’에서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은 스위스 비밀계좌를 통해 자신의 흔적들을 찾아 나간다. 맷 데이먼이 주연을 맡은 이 영화에서 볼거리 중 하나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 영업방식이다. 스위스 은행을 포함한 조세피난처들은 고객 비밀 보호와 탈세(脫稅)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한다. 조세피난처 가운데 버진아일랜드가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워싱턴에 본부를 둔 국제탐사언론인협회가 이곳에 재산을 숨겨둔 유명 인사들의 명단을 빼내 폭로했기 때문이다.

▷필리핀의 독재자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전 대통령의 딸, 이고리 슈발로프 러시아 부총리의 아내, 탁신 친나왓 전 태국 총리의 전 부인, 마하티르 모하맛 전 말레이시아 총리의 아들이 명단에 올랐다. 버진아일랜드는 중남미 서인도제도의 섬나라. 한국인이 투자한 기업이 80여 개나 있는 데다 페이퍼컴퍼니를 이용한 편법 상속이 적발된 사례도 있어 국세청도 명단 파악에 나섰다.

▷버진아일랜드는 콜럼버스가 1493년 발견한 섬이다. 얼마나 신비롭고 아름다웠으면 탐험대가 처녀 섬(Virgin Islands)이라고 불렀을까. 버진아일랜드는 영국령 30여 개, 미국령 40여 개 섬으로 이뤄져 있다. 이 중 버진 고다(‘뚱뚱한 처녀’라는 뜻)라는 섬은 불룩하게 생겼다 하여 콜럼버스가 직접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조세피난처는 버진아일랜드 말고도 바하마 버뮤다 사모아 세인트루시아 등 수십 곳이 있다.

▷영국 신문 ‘가디언’은 조세피난처들에 숨겨진 재산을 32조 달러, 약 3경5968조 원으로 추산했다. 이런 곳들은 법인세 소득세 등이 없거나 아주 적어 부자들에겐 ‘세금 파라다이스’다. 에메랄드빛 바다와 산호섬으로 유명한 휴양지들이라는 공통점도 갖고 있다. 박근혜정부가 ‘지하경제와의 전쟁’을 선포한 후 부자들 사이에 ‘화폐개혁이 가까웠다’는 소문이 퍼지고 금괴도 잘 팔린다고 한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주장했던 새 정부의 한 공직 후보자도 해외에 재산을 숨겼다는 의혹으로 낙마했으니 앞으로 버진아일랜드 명단이 어떤 풍파를 일으킬지….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재산#세금#국세청#편법 상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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