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도발 철통 방어하되 ‘말 폭탄’ 겁먹을 이유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8일 03시 00분


북한이 “4월 10일 이후에는 안전을 보장할 수 없다”며 평양 주재 24개국 대사들을 불러 철수 방안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사정거리 3000∼4000km인 무수단 탄도미사일 2기를 동해 쪽으로 옮겨 이동식 발사 차량에 탑재한 뒤 어딘가로 숨긴 북한의 행동도 심상치 않다. 개성공단은 우리 측 인원이 북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5일째 차단해 전체 123개 가운데 13개 업체가 공장 가동을 중단했다. 지난해 12월 12일 장거리 로켓을 발사한 뒤 위기를 고조시켜 온 북한의 도발적 행동과 협박이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다.

북한은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무력 도발을 기도할 것인가, 아니면 이번에도 한미의 양보를 끌어내기 위한 벼랑 끝 전술을 구사하는 것인가. 국가 안보에 대해서는 항상 최악의 사태까지 대비해야 한다. 현재로서는 북한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기에 모든 유형의 도발에 대비하는 유비무환(有備無患)의 자세가 더 필요하다. 정부와 군은 섣불리 예단하지 말고 평화를 지키기 위해 한시라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된다.

치고 빠지는 기습 도발에 또 당해선 안돼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북한이 6·25전쟁 이후 최악의 상황으로 남북 및 대외관계를 몰아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북한이 전투근무 태세 명령을 내리고 미국과 남한에 핵 공격을 위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김정일은 위기를 고조시키다가도 국제사회의 압박이 강해지면 대화에 응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첫 핵실험을 했지만 두 달 뒤 6자회담에 나와 이듬해 2월 핵시설 불능화를 핵심으로 한 2·13 합의를 했다. 김정은 집권 이후의 북한은 다르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자동 제재를 경고했지만 북한은 무시하고 로켓 발사에 이어 올해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위기를 고조시키는 가속 페달만 계속 밟고 있는 모습이다.

김정은은 아버지 김정일의 사망 1주기(12월 17일)와 생일(2월 16일)을 앞두고 기념적 성격의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단행했다. 북한이 4월 10일을 언급했기 때문에 이번에도 김일성의 101회 생일인 15일 무렵에 무수단 미사일을 시범 발사할 가능성이 있다. 김장수 대통령국가안보실장은 어제 “10일을 전후해 미사일 발사 도발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이 미국령 괌까지 타격할 수 있는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할 경우 주변국에 미칠 충격은 상당히 클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도발하면 정치적 고려 없이 강력하게 대응하라”고 우리 군에 지시했다. 미국은 핵잠수함, B-52와 B-2 전략폭격기를 한반도에 보내고 탄도미사일 탐지 전용 레이더 SBX-1을 서태평양에 배치하면서 북한 도발을 저지하기 위해 전례 없이 강력한 무력시위를 하고 있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 행동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다. 시진핑 시대의 중국은 북한의 도발을 무조건 감싸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압박을 통해 북한의 도발을 저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그 길을 택해야 한다. 12일부터 시작되는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의 한중일 순방은 북한에 경고를 보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군사전문가들 사이에선 북한의 핵 공격과 전면전(全面戰) 수행 능력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핵 공격이나 전면전 도발을 하면 북한 정권은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전면전까지는 못 가더라도 치고 빠지는 기습도발을 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3년 전에는 서해에서 잠수정으로 천안함을 공격했지만 이번에는 동해에서 기습 도발을 노릴 수도 있다. 서해 도서를 공격하거나 휴전선에서 국지 도발을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해서는 안 된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 당시 옥포해전에 나서기 전 부하들에게 “가벼이 행동하지 말고 태산같이 침착하고 무겁게 행동하라”고 지시했다. 우리의 대비가 침착하고 단호해야 북한의 도발을 억제할 수 있다.

유엔 세계식량계획(WFP)의 대북 식량 지원은 2월 6140t에서 3월 4000t으로 급감했다. 북한의 잇단 도발로 국제사회의 지원 열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북한에 4, 5월은 고통스러운 춘궁기에 해당한다. 북한 주민은 머지않아 “인민이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게 하겠다”던 지난해 김정은의 다짐이 빈말이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김정은은 북한 밖에서 핑계를 찾아 내부 결속을 노리는 외부 도발을 시도할 가능성이 크다.

北 전면전 도발은 자살행위

북한발(發) 위기가 지속되면서 출구전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다.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정치인들도 있다. 지난주 코스피가 연중 최저치로 떨어지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했다. 한반도의 긴장이 심화할 경우 한국에 있는 생산기지 이전 가능성을 밝힌 댄 애커슨 GM 회장의 발언은 북한의 위협을 심각하게 여기는 외국의 시각을 보여준다. 그런 반면에 북한은 평양 시민을 동원해 봄맞이와 김일성 생일잔치 준비를 하는 등 ‘말 폭탄’과는 상반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위기를 해소할 수 있다면 대화에 나서야 한다. 하지만 북한에 “협박이 통한다”는 인상을 주어서는 안 될 것이다.

[바로잡습니다]

‘北 도발 철통 방어하되 말 폭탄 겁먹을 이유 없다’ 제하의 사설에서 ‘2년 전에는 서해에서 잠수정으로 천안함을 공격했지만’은 ‘3년 전’의 잘못이기에 바로잡습니다.
#북한 도발#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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