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 강박증… 7일 삼성-현대차 채용 ‘빅데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8일 03시 00분


코멘트

기업들은 脫스펙 내세우며 ‘나만의 매력’ 강조하라는데…
“그래도 믿을 것은 토익점수-자격증 數 아닌가”
취업준비생들은 더 불안

“스펙이 중요하지 않다고요? 정말 그럴까요?”

7일 오전 11시 반 삼성그룹 직무적성검사(SSAT)를 마치고 나온 취업 준비생 유모 씨(25·여)는 점심 챙겨 먹을 새도 없이 곧장 학교로 향했다. 한자자격증 스터디 모임이 오후 3시부터 있기 때문이었다. 그는 “취업까지 남은 길이 구만 리”라며 “SSAT 시험을 치렀다고 쉬는 건 사치”라고 말했다.

이날은 삼성과 현대자동차의 직무적성검사가 동시에 치러져 이른바 ‘빅 데이’라고 불린 날이다. 두 기업은 시험에 앞서 연 입사 설명회에서 ‘무(無)스펙, 탈(脫)스펙’의 원칙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날 본보가 시험을 마치고 나온 구직자 15명을 무작위로 골라 물어본 결과 스펙 없이 취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은 “기업들은 직무에 필요한 일정 조건만 갖추면 된다고 하지만 일정 조건이라는 기준 자체가 애매하다 보니 남들보다 더 눈에 띄기 위해 ‘수치’로 승부를 걸게 된다”고 입을 모았다. “스펙 대신 스토리를 만들라는 것 역시 새로운 형태의 스펙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었다.

주요 기업들이 최근 ‘불필요한 스펙 경쟁’ 없애기에 나서고 있지만 취업 준비생들의 분위기는 쉽게 바뀌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소프트웨어 및 디자인 분야 지원자를 대상으로 SSAT 없이 아예 면접만으로 채용하는 ‘창의 플러스 전형’을 진행하고 있다. 현대차는 아무런 스펙이 없어도 5분 동안 스토리텔링 방식으로 자신을 잘 홍보하는 지원자에게 면접 기회를 주는 채용 제도를 2011년 신설했다. SK그룹은 올해 들어 학점과 영어점수를 보지 않고 끼와 열정만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바이킹 챌린지’ 전형을 만들었다. 포스코 역시 올해부터 지원서류에 출신대학, 학점, 사진을 아예 기재하지 않도록 한 ‘탈스펙’ 전형을 도입했다.

하지만 주요 기업의 ‘스펙 없애기’는 구직자에게는 여전히 먼 나라 이야기다. 이날 인터뷰에 응한 15명은 평균 토익점수 846점, 평균 자격증 개수 3개, 인턴 경험 1.2회를 자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여전히 “아직 부족하다고 느낀다”며 “다른 스펙을 쌓을 예정”이라고 답했다. 이는 최근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올해 취업을 준비하는 구직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응답자 592명 가운데 82%가 “취업을 위해 스펙 쌓기 활동을 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 이유로는 ‘기업이 스펙을 안 본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자격증을 안 따면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스펙이 내 능력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방법 같아서’ 등이 거론됐다.

대기업 인사 담당자들은 “구직자들이 불안한 마음으로 무작정 쌓은 스펙은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취업 준비생들은 “비교적 균질한 대졸 지원자들을 동시에 ‘대량 공채’하는 국내 기업들이 스펙을 참고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고 한다.

글로벌 헤드헌팅 업체 러셀레이놀즈의 고준 상무는 “소수 인원을 뽑을 때는 스펙보다 잠재력을 위주로 평가할 수 있지만 대규모 공채에서는 기본 스펙을 참고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뽑으려면 영어성적과 학점을 기준으로 성실성과 역량을 평가하게 된다”고 말했다. 고 상무는 “결국 채용 구조 자체가 바뀌지 않는 한 스펙 추구 현상은 없어지기 어려울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지영 기자 jjy2011@donga.com

[채널A 영상]삼성 vs 현대차 취업 ‘빅매치’ 승자는?
[채널A 영상]달라진 2013 채용 트렌드, 스펙보다 스토리


#삼성#현대#스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