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커버스토리]신은 듯 안신은 듯 자연스런 발걸음… 베어풋의 진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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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발 장점 살린 신발의 과학 어디까지 왔나

따뜻한 봄날 서울 청계천변을 달린다. 그냥 발에 모든 걸 맡기곤 한 걸음씩 떼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신발을 신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헤드(HEAD)
따뜻한 봄날 서울 청계천변을 달린다. 그냥 발에 모든 걸 맡기곤 한 걸음씩 떼었다 놓기를 반복한다. 신발을 신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촬영 협조=헤드(HEAD)
《 곧선사람, 즉 ‘호모에렉투스’는 160만 년 전에 등장했다.

인류는 직계 조상인 호모에렉투스로부터 엄청난 선물을 받았다. 바로 ‘두 발로 걷기’다. 그때까지 인류에게 이것만큼 파격적 변화는 없었다. 두 발로 걷는 것은 인간만의 특징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두뇌의 발달과 문명을 가져왔다.

두 발은 인류의 신체를 받쳐주는 주춧돌인 동시에 생존을 도와주는 소중한 존재다. 사냥감을 쫓을 때나 천적으로부터 달아날 때 인간은 두 발에 자신의 운명을 맡겼다.

언제부터인가 인류는 발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옷을 지어 입기 시작한 2만5000년 전부터인지, 훨씬 더 가까운 과거부터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어쨌든 신발의 발명은 편리함을 가져왔지만, 그로 인해 인류의 발은 자연과 격리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21세기. 인류는 다시 자연과의 조우(遭遇)를 시도하고 있다. 수천 년 동안 땅의 거친 표면으로부터 발을 보호하기에만 급급했던 인류는 다시 자연과 소통하려 하고 있다. 그런 움직임 속에서 태어난 말이 바로 ‘내추럴 풋 모션’(NFM·자연스러운 발의 움직임)과 ‘베어풋 슈즈’(맨발 걷기의 장점을 살려주는 신발)이다. 인류는 호모에렉투스가 첫 직립보행에 나서기 전처럼 자신의 발을 자연에 맡기려 하고 있다. 그것이 자연스럽고 건강에도 좋기 때문이다. 》

맨발은 가장 훌륭한 신발

인류는 100만 년 이상을 맨발로 걸었고, 겨우 1만∼2만 년 동안만 신발을 신었다. 게다가 지금과 같은 현대적인 신발을 신기 시작한 것은 겨우 100년도 되지 않았다. 인류의 신체가 맨발로 걷는 데 더 적합한 구조를 갖고 있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 당연하다. 미국 하버드대의 대니얼 리버먼 교수팀은 2010년 이를 과학적으로 입증했다. 맨발로 걷거나 달리면 신체에 무리가 덜 가고 발목과 무릎 관절의 부담도 줄어든다는 사실을 밝혀낸 것이다. 신발을 신었을 때보다 부상의 위험이 작다는 것도 드러났다. 그 결정적 차이는 맨발일 때와 신발을 신었을 때 발바닥이 어느 부분부터 땅에 닿는지에 있었다.

신발을 신은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발뒤꿈치부터 땅에 디딘다. 따라서 모든 충격이 발뒤꿈치에 집중된다. 그러나 맨발로 걷거나 달릴 때는 본능적으로 발가락 근처인 발 앞부분이나 중간부분부터 내딛게 된다. 이때는 몸무게가 자연스럽게 발바닥 전체로 분산된다. 믿지 못하겠다면 직접 신발을 벗고 달려 보라. 비록 자연이라 할 수 없는 아스팔트 위일지라도 그 차이를 단번에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또 맨발로 달리는 사람들은 다리를 보다 높이 들어올린다. 이는 발과 종아리의 근육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한다는 뜻이다. 어떤가. 신발을 벗어버리려는 유혹이 생기지 않는가.

그러나 한 가지를 잊으면 곤란하다. 인류가 맨발로 걸었던 시간이 신발을 신었던 시간보다 압도적으로 길지만, 신발을 신은 것으로 추정되는 1만∼2만 년도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신발의 마법’에서 벗어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다양한 형태·재질·기능을 갖춘 베어풋 슈즈.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다양한 형태·재질·기능을 갖춘 베어풋 슈즈.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적응의 시간이 필요하다


진화생물학자들은 “신발의 발달과 함께 인간의 발은 점차 퇴화됐다”고 말한다. 공대생들은 대학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공학용 계산기를 산다. ‘마술사’를 손에 넣은 그들은 복잡한 미적분도 삽시간에 해낸다. 그러나 몇 달이 지난 뒤에는 계산기 없이는 아주 간단한 수식도 풀지 못해 쩔쩔맨다. 계산기가 가져다 준 계산 능력의 퇴화다.

내추럴 풋 모션이나 베어풋의 개념이 도입된 뒤에도 ‘발의 퇴화’는 절대 간과해선 안 되는 요소였다. 그러면서 맨발 보행의 장점을 살리면서도 발을 보호해주는 쪽으로 기술진화가 이뤄졌다.

기존 러닝화와 베어풋의 차이는 ‘드롭(Drop) 차’와 ‘토 박스(Toe Box)’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다. 드롭 차는 발가락과 발꿈치 높이의 차이를 말한다. 신발 앞부분 굽의 높이가 7mm이고, 뒷부분 굽 높이가 20mm라면 그 차이인 13mm가 드롭 차가 된다. 이 정도가 전형적인 러닝화에서 나오는 수치다. 드롭 차가 큰 신발을 신으면 몸이 앞으로 쏠려 발꿈치부터 디디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반면 ‘맨발로의 회귀’를 표방하는 베어풋은 드롭 차를 최대한 줄여 신발을 신은 사람이 발 앞쪽이나 중간부터 내디딜 수 있도록 유도한다. 사람의 발은 땅에 닿으면 발의 너비가 8.1%, 길이가 2.4% 늘어난다. 기존의 러닝화는 이 같은 발의 변형을 거부했다. 발의 움직임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특히 신발의 앞쪽 끝부분(토 박스)에 딱딱한 재질의 소재를 이용하거나 여러 겹을 붙였다. 이는 앞으로 달려 나가는 추진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하지만 베어풋은 발의 모양이 최대한 자연스럽게 펴지도록 신축성이 좋은 소재를 토 박스에 사용한다.

패턴이 절제된 합성 소재나 메시 소재(그물망처럼 생긴 원단)가 그것이다. 요즘엔 아예 발이 땅을 디뎠을 때 신발 밑창이 고양이 발처럼 늘어나게 한 제품도 등장했다.

▼ 美운동화 시장 40%가 베어풋… 맨발 느낌으로 뛰기 열풍 ▼

절묘한 조화로 승부수


현재의 베어풋 신발은 여러 차례의 시행착오 끝에 탄생한 작품들이다. 너무 맨발 보행의 느낌에만 충실했던 초기 제품의 한계를 벗고, 내추럴 풋 모션을 추구하되 기존 러닝화의 장점도 수용하며 균형점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고양이 발’ 같은 최신 기술을 지속적으로 접목했다.

특히 2010년 이후 베어풋 시장의 트렌드는 ‘극한의 배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맨발과 완전히 똑같은 상태를 추구했던 기존 베어풋보다 드롭 차를 늘렸다. 토 박스에서는 최대한 자유로운 발의 변형을 보장하되 보호기능을 더 강화했다.

러닝화의 가장 큰 문제는 일반인에게 단거리 육상선수에게나 필요할 법한 직진성을 제시했다는 것이었다. 드롭 차를 크게 늘린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대로 초기의 베어풋은 ‘미니멀리즘’(맨발 느낌을 추구하는 경향)만 추구하다 보니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이물감을 해결하지 못했다.

최근 시장에서 각광 받고 있는 베어풋 제품들의 드롭 차는 8∼11mm정도다. 이것은 지면과 발 사이의 거리를 어느 정도 유지시켜 주면서도 발을 내딛을 때 발바닥 중간 부분부터 닿게 하는 수치다.

최신 베어풋 신발을 만들기 위해서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다수 투입됐다. 우선 솔(sole), 즉 밑창이 어느 정도 두께를 가지면서도 발의 움직임에 따라 유연하게 변할 수 있도록 했다. 그 덕에 요즘의 베어풋 슈즈는 예전에 비해 밑창이 꽤 두껍지만 한손으로도 충분히 반으로 접힌다. 일부 제품에서는 신발 밑창에 고탄성 EVA(스펀지와 비슷한 압축가공수지)를 채용해 반발탄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런 제품들의 무게는 260mm 기준으로 280g 정도다. 전통적인 베어풋(200g 이하)보다는 무겁지만 보통의 러닝화(350g 안팎)보다는 가볍다.

제품의 발전에 따라 세부 카테고리가 점차 늘어나고 있기도 하다. 탄성을 부각시킨, 러닝화에 가까운 베어풋 신발이 있는가 하면 미니멀리즘을 보다 강조한 것도 있다. 국내 시장에서 베어풋 시장 개척에 가장 적극적인 헤드의 경우 ‘베어풋 E-소프트’ ‘베어풋 미니멀리즘 웹’ ‘베어풋 매트’ ‘베어풋 스프링’ ‘베어풋 H2X’(순서대로 러닝화의 성격이 강해짐) 등 영역별 제품군을 다양하게 구비하고 있다.

베어풋 E-소프트나 미니멀리즘 웹은 주로 걷기 운동을 하는 소비자들을, 스프링이나 H2X는 달리기 마니아들을 각각 타깃으로 하고 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

신발의 미래는 어디로


신발은 발을 보호하기 위해 처음 탄생했다. 그리고 인류는 점차 신발의 기능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보다 빨리, 보다 높이, 보다 멀리 가기 위해 신발의 구조를 혁신했고 고기능 소재를 채용했다. 그러다 문득 자연으로의 복귀를 선언했다. 신발의 기능보다는 발 자체의 기능에 더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 그로 인한 변화의 속도는 매우 빠르다. 미국에선 베어풋 제품들이 러닝화 시장의 40%를 차지하고 있다. 또 ‘진공발포’(진공 상태에서 성형하는 방법) 등의 신기술도 속속 적용되고 있다.

그렇다면 차세대 신발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기광 국민대 교수(체육학)는 “발을 보호하기 위해 태어난 신발은 앞으로도 그 역할을 충실히 할 것”이라며 “다만 발 자체의 기능에 좀 더 주목하는 것은 물론이고 소비자 개인의 신체와 취향, 이용 환경을 모두 반영하는 ‘개인 맞춤형’으로 진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김창덕 기자 drake0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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