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개성공단 진입 불허]“공단주변 무장군인 늘어”… 828명 안전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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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성의 123개 입주업체 상황은

北 가는길 막히고 南 오는길만 열려 북한이 개성공단으로의 우리 측 진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한 3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발이 묶인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개성공단 근로자 2명이 귀환하고 있는 모습. 북한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남측 귀환은 허용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北 가는길 막히고 南 오는길만 열려 북한이 개성공단으로의 우리 측 진입을 금지한다고 통보한 3일 경기 파주시 남북출입사무소에서 발이 묶인 개성공단 근로자들이 답답한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다(왼쪽). 오른쪽은 개성공단 근로자 2명이 귀환하고 있는 모습. 북한은 개성공단 근로자의 남측 귀환은 허용했다. 파주=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왜 개성공단 출입이 차단되고 남북관계가 이렇게 된 줄 아느냐. 박근혜 대통령 때문에 이렇게 됐다.”

북한이 개성공단 출입제한 조치를 취한 3일 경기 파주시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CIQ)로 귀환한 김모 씨(48·여)는 북한 세관원이 소지품 검사를 하면서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세관 직원은 평소와 달리 군복을 입었으며 그 수도 1명에서 4명으로 증원됐다. 김 씨는 “개성공단 주변에서 철모를 쓰고 마른풀로 위장까지 한 무장군인들이 평소보다 많이 목격되고 있고 모든 차가 위장막을 덮은 채 운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30일 북한은 “이 시각부터 북남관계는 전시상황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또 “괴뢰역적들이 개성공업지구가 간신히 유지되는 것에 대해 나발질(헛소리)을 하며 우리의 존엄을 훼손하려 든다면 공업지구를 가차 없이 차단·폐쇄하게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역시 이날 귀환한 다른 김모 씨(33)는 “생산된 물건을 납품 기일까지 맞춰야 하는데 트럭이 들어오지 않아 싣고 나오지 못했다”며 “개성에 남기로 한 사람들이 먹을 부식도 4일까지 버틸 양밖에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사태가 장기화되면 조업 중단과 잔류인원 철수로 개성공단이 고사(枯死)하게 될 것임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두 사람은 매일 개성을 오가는 단기 체류 근로자들이다. 이들은 4일 다시 공단으로 되돌아가야 하지만 북한의 입장 변화가 없는 한 현재로서는 재방문이 불가능하다.

○ CIQ에서 방문 승인 기다리다 ‘날벼락’

북한이 남측 근로자의 귀환만 허용하고 개성공단 방문을 통제한 3일 오전 CIQ는 하루 종일 어수선한 분위기였다.

기자들의 출입이 허용된 오전 11시경 CIQ 안에는 300여 명의 근로자와 차량 180여 대가 출경(개성 방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들은 오전 8시 반부터 진행되는 방문 수속이 막히자 혹시나 하는 기대감을 갖고 3, 4시간을 CIQ 안에서 대기했다.

정부가 ‘북한이 개성공단 방문을 거부했다’고 공식 확인하자 TV로 이를 지켜보던 근로자들은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일부 근로자는 회사와 전화로 향후 일정을 조율하느라 분주했다. 개성공단으로 가기 위해 대기하고 있던 기자재 운반 차량들이 CIQ 밖으로 한꺼번에 몰리면서 이 일대 교통이 한동안 마비되기도 했다.

첫 귀환은 평소보다 1시간 10분가량 늦은 오전 11시 50분경에 이뤄졌다. 근로자 3명이 화물 차량 3대에 나눠 타고 돌아왔다. 이어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30분 간격으로 모두 7회에 걸쳐 근로자 33명과 차량 23대가 돌아왔다. 당초 근로자 484명, 차량 371대가 개성공단으로 출경할 예정이었으나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귀환 근로자들은 “평소대로 조업하고 있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의류업체에 근무하는 노모 씨(44·여)는 “북한 군인 복장을 한 사람이 많이 보인 것 말고는 평상시와 같았다”며 “천안함 폭침 사건 같은 것을 겪어봤기 때문에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크게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하지만 심모 씨(46·의류업체 근무)는 “한번 나오면 못 들어갈까 봐 어쩔 수 없이 연장 신청을 하고 개성공단에 남아 있는 직원들도 있다”며 “내일도 차량이 들어가지 못하면 공장을 가동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걱정했다. 봉제기계를 납품하는 김모 씨(53)는 “차량 운행이 통제돼 자재 공급이 안 되고 있어 공장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우려했다. 또 김 씨는 “(마트에서 파는) 생필품은 거의 바닥나 직원들이 2, 3일이나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자칫 사태가 길어지거나 상황이 악화되면 남아 있는 직원들의 안전이 가장 큰 걱정”이라고 말했다.

○ 개성 잔류 근로자 “할 말 없다” 입조심

개성 현지에 남아 있는 사람들의 육성은 귀환자들이 밝힌 것보다 한결 무겁고 어두웠다. 서울과 직통전화가 설치된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는 물론이고 123개 입주기업도 한국 본사와 연락을 취하며 숨을 죽인 채 사태 추이만 지켜보고 있다. 이들은 언론을 상대로 현지 분위기를 전하는 것 자체를 몹시 조심스러워했다.

개성공단에 잔류한 A사 관계자는 본보와의 국제전화에서 “전화로 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분위기가 좀 삭막해졌다”는 말만 남긴 채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B사 관계자도 “왜 이곳(개성공단)으로 전화를 했나. 자세한 내용을 알지 못할뿐더러 말할 내용도 없다”고 했다. 입주업체들은 한국과 국제전화 회선으로 연결돼 있는데 통화 내용 대부분은 북한이 감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감한 얘기를 꺼낼 경우 받게 될 신변상의 불이익 우려 때문에 제대로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중견업체 C사의 관계자는 “오늘 하루만도 수차례 전화를 걸어 상황을 점검하고 있다. 아직 특별한 문제나 직원들의 동요가 있다는 말은 듣지 못했다”고 밝혔다. 문제는 사태가 장기화될 때 마땅한 대책이 없다는 데 있다. 이 관계자는 “통상 오전에 원부자재와 식료품을 실은 트럭이 개성공단에 들어가서 완제품을 싣고 오후에 귀환하는 방식으로 운영했는데 이 흐름이 막혔다.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의 원부자재 재고가 남은 상태인데 그 이후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봉제업체 D사 관계자는 “식자재를 매일 들여보냈는데 출입제한이 길어지면 직원들을 모두 귀환시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입주업체들, “화물 반입만이라도 허용해야”

개성공단기업협회는 3일 낮 긴급 임원회의를 소집했으나 뚜렷한 대책을 내놓지 못한 채 회의를 마쳤다. 이날 회의에는 한재권 회장과 부회장 등 8명이 모였다. 한 회장은 “제일 걱정되는 것은 공단에 있는 주재원의 안전이다. 식자재와 원부자재 반입을 허용할 것을 북측에 촉구한다”고 말했다. 협회 관계자는 “예전의 통행차단 때도 화물 반입은 허용한 경우가 있어 이번 사태가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환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협회는 공단 출입이 정상화될 때까지 비상근무 체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또 협회 역대 회장단과 중소기업중앙회 회장단 등 20여 명은 4일 오전 CIQ에 모여 공단 통행제한 상황을 점검하고 대책을 논의한 뒤 성명서를 발표할 계획이다.

4일 개성공단 방문이 재개될지는 미지수다. 남북출입사무소로 귀환하는 근로자 수는 4일 아침에야 확정된다. 지금까지 개성공단을 방문하거나 남한으로의 귀환을 원하는 사람은 3일 전에 명단을 북한에 통보한 뒤 출입 당일 아침에 승인을 받아왔다. 4일과 5일의 출입 희망자 명단은 이미 북한에 통보됐으나 상황이 유동적이어서 재통보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파주=조영달·조숭호·박창규 기자 dalsarang@donga.com
#북한#개성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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