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윤종의 쫄깃 클래식感]마무리가 닮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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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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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콥스키-라흐마니노프의 ‘師弟 스타일’

①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②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③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끝부분 악보. 각각 ‘따따따 딴’ ‘딴 따따 딴’ ‘딴 따따따 딴’의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①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②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③라흐마니노프 교향곡 2번의 끝부분 악보. 각각 ‘따따따 딴’ ‘딴 따따 딴’ ‘딴 따따따 딴’의 서로 닮았으면서도 다른 리듬을 발견할 수 있다.
“소년은 당대 대(大)화가의 그림을 옮겨 그리며 미술을 공부했지. 얘기를 들은 화가도 소년을 찾아 격려했단다. 어느 날 화가가 갑자기 돌아가셨어. 그의 풍경화에는 ‘한낮의 반달’이 나오는 게 특징이었는데, 소년도 그를 본떠 풍경화에 한낮의 달을 그리기 시작했어. 단 선배 화가와는 달리 반달이 아니라 초승달로.”

어떤 화가의 일화냐고요? 방금 상상해낸 동화입니다.ㅎㅎ

갓 나온 프로그램 책자를 받아듭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미소가 지어집니다. “사제(師弟) 간 발자국이 뚜렷하군.” 동아일보사-예술의전당 주최로 개막한 ‘한화와 함께하는 교향악축제’의 11일 금노상 지휘 대전시립교향악단(피아노 협연 김태형) 순서입니다.

라흐마니노프는 차이콥스키가 초기에 교수로 활약했던 모스크바 음악원의 유망주였습니다. 차이콥스키는 서유럽에 라흐마니노프를 널리 소개하겠다고 약속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차이콥스키를 라흐마니노프는 정신적 버팀목으로 생각했습니다. 차이콥스키가 숨지자 그를 추모하는 피아노3중주곡을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대전시향이 연주할 곡들을 들어봅시다. 맨 끝 부분만요.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은 ‘따따따 딴’으로 끝납니다. 세 음표가 나란히 이어진 뒤 마치는 음표가 하나 더 나옵니다. 라흐마니노프 피아노협주곡 3번은 ‘딴 따따 딴’입니다. QR코드나 아래 주소로 직접 들어보세요. 매우 닮았으면서도 약간 다릅니다.

지난번 간단히 언급한 일도 있지만 차이콥스키는 긴 작품이나 악장을 ‘따따따 딴’으로 끝내기를 즐겼습니다. 교향곡 6번 ‘비창’ 3악장, 발레 ‘호두까기 인형’ 1막…. 이를테면 “들었지? 이거 내 작품이야”라며 ‘발자국’을 남겨놓는 것과 같습니다. 낙관(落款)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차이콥스키를 경모했던 라흐마니노프도 이 습관을 따라했습니다. 단 똑같지는 않습니다. 셋잇단음표가 아니라 4분음표 하나에 8분음표 두 개가 이어지는 ‘딴 따따 딴’ 리듬을 주로 사용한 것입니다. “저는 차이콥스키의 정신적 제자입니다. 하지만 똑같지는 않고 저만의 개성이 있죠”라고 말하는 듯하지 않습니까. 그의 피아노협주곡 2, 3번이 모두 이 리듬으로 끝납니다.

<음원제공 낙소스>
바로 오늘(4일) 유광 지휘 청주시향이 교향악축제에서 연주하는 라흐마니노프의 교향곡 2번은 더 재미있습니다. 차이콥스키식 마침과 라흐마니노프식 마침을 절충한 ‘딴 따따따 딴’으로 끝나거든요. ‘차이를 알겠어?’라며 씩 웃는 라흐마니노프의 미소가 보이는 듯합니다. classicgam.egloos.com/200118

유윤종 gustav@donga.com
#라흐마니노프#차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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