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경영 지혜]정치권에 줄대는 기업들 재무성과 평균이하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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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이 정치권에 벌이는 로비 활동은 정말 효과가 있을까? 퇴직한 고위 관료를 사외이사로 영입하면 언젠가 도움이 될까? 이런 질문을 하면 순진하다거나 현실을 모른다는 식의 핀잔을 듣기 쉽다. 기업을 키우다 보면 정관계와의 관계 쌓기는 피할 수 없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기 때문이다. 한국만 그런 것도 아니다. 미국에서는 선거 때마다 기업과 각종 로비 단체가 막대한 정치자금을 합법적으로 제공한다. 그만큼 정치적 투자가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그런데 정치적 투자가 장기적으로는 기업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문제만 키운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미국에서 발표됐다. 밖에만 신경 쓰다가 기업 내부가 썩는다는 결론이다.

미국 텍사스 주 라이스대의 하다니 교수와 슐러 교수는 1998년부터 2008년까지 미국 943개 주요 기업의 활동을 조사했다. 그 결과 이들 중 약 44%가 정치인에 대한 기부, 중앙정부나 지방정부를 상대로 한 로비 활동, 정치적 캠페인 지원, 퇴직 관료 영입(임원 혹은 사외이사) 등의 정치적 투자를 한 것으로 파악됐다. 금액으로 따지면 5조 원이 넘었다. 주목적은 회사에 유리한 법안을 만들거나 필요한 사업 허가를 취득하는 데 도움이 되는 인적 네트워크를 쌓기 위해서였다.

상식대로라면 이런 기업일수록 재무적 성과도 좋게 나와야 한다. 그런데 재무제표를 들여다보니 정치적 투자를 한 기업들의 주가와 영업이익 성장률은 오히려 평균 이하였다. 다른 변수들을 고려해 따져보더라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진은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우선 정치적 투자 활동에 집착하는 기업일수록 사업에 실패해도 정부나 정치권에서 살려줄 것이라 오해하고 무리한 투자를 하기 쉽다. 아니면 애초에 경영에 자신이 없는 회사라서 정치권에 줄을 대려는 것일 수도 있다. 게다가 이런 식의 로비 활동은 주주들의 감시 밖에서 진행되기 때문에 기업 내에 도덕적 해이를 불러오게 된다. 즉, 회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영자 개인의 돈벌이를 위해, 혹은 퇴직 후 자리 마련을 위해 로비를 하게 된다. 정치적 투자가 긍정적인 경영 성과로 이어진 곳은 정부 규제가 특별히 심한 업종인 정유, 통신, 보험, 에너지 기업들뿐이었다.

이 연구 결과는 미국뿐 아니라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기업은 로비 활동에 큰 기대를 걸지 말아야 한다. 설령 로비를 하더라도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 특히 정부 관료의 영입은 매우 신중히 평가해야 하며 득보다 실이 클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둬야 한다.

류주한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 jhryoo@hanyang.ac.kr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재무성과#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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