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부 → 악의 화신 → 패셔니스타… 장희빈, 시대의 욕망을 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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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명의 배우 통해 본 장희빈상 변천사

‘장희빈과 인현왕후 얼굴이 바뀐 거 아냐?’

8일 시작하는 SBS 월화 사극 ‘장옥정, 사랑에 살다’에서 장희빈과 인현왕후를 맡은 여배우를 놓고 이런 얘기가 나온다. 장희빈 역의 김태희(33)는 선한 눈매에 도톰한 입술이 천생 인현왕후이고, 인현왕후로 나오는 홍수현(32)은 찢어진 눈매에 얇은 입술이 전형적인 ‘장희빈상(像)’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장희빈상이 따로 있을까. 장희빈의 초상화는 전해져 내려오는 것이 없다. 다만 그 외모를 묘사한 기록이 숙종실록에 이렇게 남아 있다. “나인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숙종 12년·1686년 12월 10일) 문화평론가들은 영화와 드라마 속 장희빈은 17세기 장희빈을 그대로 복원한 것이 아니라 시대 상황이나 대중의 욕구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그려진 것이라고 말한다.
9명의 배우 통해 본 장희빈상 변천사



1960년대 장희빈은 전통적인 현모양처를 요구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거부하다 비극적으로 죽는 인물로 표현됐다. 정창화 감독이 연출한 ‘장희빈’(1961년)의 김지미(73), 임권택 감독 연출작인 ‘요화 장희빈’(1968년)의 남정임(1945∼1992)은 전형적인 요부의 이미지로 이런 캐릭터를 소화해냈다.

1981년 MBC ‘여인열전-장희빈’에서 이미숙(53)이 연기한 장희빈은 더욱 교활해졌고 관능미도 배가됐다. 군사 정권 시절 경직된 사회에서 생겨난 선과 악의 이분법이 투영된 과장된 이미지라는 해석이다. 강진주 퍼스널이미지연구소장은 “이미숙은 허스키한 목소리로 앙칼지게 외치면서 날카로운 팜파탈의 이미지를 많이 부각시켰다”고 분석했다.

경제 활황 속에 자기중심적인 X세대가 열풍을 일으키고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기 시작한 1990년대 장희빈은 욕망으로 똘똘 뭉친 인물이었다. 전형적인 미인상과는 거리가 먼 정선경(42)이 SBS ‘장희빈’(1995년)의 타이틀 롤을 따낸 것은 이런 배경에서였다. 정선경은 사극과는 어울리지 않는 개성파 장희빈을 연기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선악의 이분법과 ‘악녀 장희빈’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장희빈의 다면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를 조명하기 시작했다. 김혜수(43)가 연기한 KBS2 ‘장희빈’(2002년)은 고고하고 우아하면서도 정쟁이 치열한 궁궐에서 살아남기 위해 처절하게 분투하는 여성이었다. MBC ‘동이’(2010년)에서 이소연(31)이 맡은 장희빈은 사약을 받아 마실 때도 품위를 잃지 않는 지성미 넘치는 인물이었다. 배국남 문화평론가는 “악이 또 다른 선이고 선이 또 다른 악일 수 있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요소가 장희빈 캐릭터에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2013년 ‘장옥정, 사랑에 살다’ 속 장희빈에 대해 박광현 제작PD는 “장희빈이 지밀나인(몸종)이 아닌 침방(針房)나인으로 궁에 들어갔다는 기록을 토대로 패셔니스타의 면모를 새롭게 보여줄 계획이다. 김태희가 서울대 의류학과 졸업생인 점도 캐스팅 과정에서 고려했다”고 밝혔다.

김헌식 문화평론가는 “2006년 드라마 ‘황진이’의 황진이가 종합예술인으로 그려졌듯 이번 장희빈은 자아를 실현하는 현대 여성의 모습으로 그려질 예정”이라며 “사극 인물은 대중의 욕망을 반영하기 때문에 장희빈의 캐릭터도 시대에 따라 계속 변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주영·김윤종 기자 aimhig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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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희빈#김태희#시대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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