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현오석 경제팀의 MB정부 탓, 그땐 뭐하고선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1일 03시 00분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어제 KBS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지난 정부의 경제 전망과 관련해 “상황을 잘 파악해서 전망했더라면 예산을 편성할 때 재정 정책이 다른 모습일 수 있지 않았겠느냐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9월 이명박(MB) 정부가 올해 경제가 4.0% 성장할 것으로 가정하고 너무 낙관적인 예산안을 짠 것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이석준 재정부 제2차관도 “성장률 하락으로 올해 12조 원 정도의 세입 차질이 예상된다”는 경고까지 내놨다.

현 부총리와 이 차관은 MB 정부에서 각각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과 재정부 예산실장의 중책을 맡았던 인사들이다. 현 부총리는 2011년 KDI 원장으로 재직할 때 2012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3.9∼4.1%로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2%에 그쳤다. 당시 성장률 전망치를 높이기 위해 MB 정부의 치적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효과를 무리하게 부풀려서 끼워 넣었다는 의혹을 받았다. 이 차관은 6개월 전 MB 정부의 장밋빛 예산안 작성을 진두지휘한 예산실 책임자였다. 그런 인사들이 반성은커녕 새 정부로 말을 갈아타자마자 전임 정부에 책임을 돌리고 있다니 낯이 간지럽지 않은가.

MB 정부는 ‘균형재정 유지’라는 목표에 매달려 4.0% 성장을 가정한 예산을 내놨다가 세수 부족을 초래했다. 박근혜 정부는 뒷감당이 어려워지자 성장률 전망치를 민간 연구기관과 외국계 투자은행보다 낮은 2.3%로 끌어내리고 추경 카드까지 꺼냈다. 그동안 대형 악재가 없었는데도 정부는 6개월 만에 성장률 전망치를 1.7%포인트나 떨어뜨려 경제 정책에 대한 신뢰를 스스로 실추시켰다. 지난 정부는 임기 막판 치적 쌓기를 위해, 새 정부는 임기 초 경기 부양 카드를 쓰기 위해 ‘성장률 놀음’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박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 5년간 135조 원을 마련하겠다는 계산은 3%대 성장을 전제로 한 것이다. 2%대 저성장 기조가 굳어진다면 공약 재원을 마련할 길도 막막해진다. 현오석 경제팀은 남 탓하기 전에 경제 정책에 대한 불신과 불확실성부터 털어내야 한다. 그제 고위 당정청 워크숍에서는 창조경제의 개념과 증세 없는 복지 재원 등에 대한 비판이 터져 나왔다. 성장엔진에 불을 댕길 수 있는 창조경제의 각론을 제시하고 이행이 어려운 복지공약은 솎아내는 게 새 경제팀이 먼저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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