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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조지형 교수의 역사에세이]핵폭탄 투하, 평화 위한 선택 맞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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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조지형 교수의 역사에세이]핵폭탄 투하, 평화 위한 선택 맞나요

동아일보입력 2013-02-28 03:00수정 2013-02-28 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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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평양전쟁 끝낸 원자폭탄
1945년 8월 6일 오전 8시 16분 일본 히로시마 시내에 원자폭탄 ‘리틀보이’가 투하됐다. 반경 1.6km 이내의 모든 물체가 파괴됐고, 8만 명이 즉사했다. 원폭이 폭발한 후의 시내 모습.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히로시마 시내에 공습경보가 울렸습니다. 1945년 8월 6일 오전 7시를 조금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시민들은 방공호로 대피하기 위해 바삐 움직였습니다. 레이더를 살펴보던 일본 정부는 미 공군의 비행기가 몇 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1시간 뒤에 공습경보를 취소했습니다. 폭격편대가 아닌 정찰기쯤으로 보였던 겁니다. 시민들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습니다.

미군 정찰기는 오전 7시 반경 히로시마에 도착하여 폭탄 투하에 적합한 기상상태인지 확인했습니다. 그리고 8시 16분에 폭격기가 원자폭탄을 투하했습니다. 리틀보이(Little Boy)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은 9470m 상공에서 44초에 걸쳐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600m 상공에서 폭발했습니다. 공습이 없다고 믿었던 시민들에게는 날벼락이었겠죠.

원자폭탄은 TNT 16kt에 해당하는 폭발을 일으켰습니다. 1kt은 TNT폭약 1000t의 폭발력을 의미합니다. 폭발한 상공 지점의 온도는 섭씨 4000도까지 치솟았습니다. 핵무기가 폭발한 지상 지점(그라운드 제로)에서 반경 1.6km 이내의 모든 물체가 파괴됐습니다. 11km² 이내 지역에서는 모든 것이 불타버렸습니다.

히로시마 인구의 약 30%에 해당하는 8만 명이 즉사했습니다. 이 중 6만 명이 민간인이었습니다. 그리고 방사능으로 인한 백혈병과 간암 등으로 1945년 말에 10만 명이, 그리고 5년 후에 약 20만 명이 죽었습니다. 한동안 미국은 원폭 방사능으로 사람이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고 치료를 거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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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는 태평양전쟁 중에 미국의 공습을 받지 않았던 도시였습니다. 재래식 폭탄에 의한 폭격 효과와 원자폭탄에 의한 폭격 효과를 비교하기 위해 미국이 의도적으로 남겨둔 곳입니다. 히로시마는 편평한 지역이라 원자폭탄의 효과를 정확하게 측정할 만한 곳이기도 했어요. 또 일본 남부 지역을 지휘하는 군사령부가 있던 군사 중심지였고, 군사 물자를 실어 나르는 주요 항구 중 하나였습니다.

리틀보이는 64kg의 우라늄235로 제작됐습니다. 원래 히로시마 상공 580m에서 폭발하도록 설계됐고, 공식적인 폭발력은 13kt으로 예상됐습니다. 하지만 실제 폭발은 조금 달랐죠. 그리고 바람이 불어서 예상보다 240m 빗나간 병원 상공에서 터졌습니다.

히로시마뿐 아니라 나가사키에도 원자폭탄이 투하되자 일본은 8월 15일 조건 없는 항복을 선언했습니다. 태평양전쟁이 끝난 겁니다. 미국은 원자폭탄이 아니었다면 일본의 결사항전으로 50만∼100만 명의 미국 병사가 전사했을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일제의 잔인한 식민통치, 인체실험, 무차별 학살, 비인도적인 잔혹행위, 강제노동, 군위안부 성노예 동원에서 우리 민족을 해방했으니 원자폭탄이 고맙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네요.

하지만 역사는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아요. 미국의 공식 주장과 달리 역사가들은 태평양전쟁이 계속됐다면 미국 병사 50만∼100만 명이 아니라 6만 명 정도 더 죽었을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원자폭탄으로 죽은 히로시마의 20만 명, 원자폭탄 덕분에 목숨을 잃지 않은 6만 명의 미국 병사. 무엇이 더 좋은 선택이었을까요.

만주와 중국의 일본 육군은 여전히 강력했고 일본 공군은 인간폭탄의 가미카제 전술로 결사적으로 저항했습니다. 일본의 해군과 공군은 사실상 완전히 붕괴상태였습니다. 미국은 원자폭탄을 투하하지 않아도 1945년 말 이전에는 태평양전쟁이 끝난다고 예상했습니다. 일본은 평화협정의 중재자 역할을 해달라고 7월 중순 소련에 요청했습니다. 다만 무조건 항복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습니다.

미국은 왜 원자폭탄을 히로시마에 투하했을까요? 많은 역사가는 소련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참가하여 중국에 배치된 일본 육군을 무찌르고 전쟁에서 승리하리라 기대했어요. 포츠담회담에서도 미국은 소련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회담 중간에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은 원자폭탄 실험에 성공했다는 보고를 받았어요.

트루먼 대통령은 소련의 도움 없이 일본을 무찌를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전쟁 후의 세계질서를 수립하는 데 소련을 배제하거나 적어도 소련의 영향력을 많이 줄일 수 있다고 봤지요. 그래서 미국은 소련이 태평양전쟁에 참가하려던 8월 8일보다 이틀 전에 원자폭탄을 투하했어요. 전례 없는 새로운 무기를 과시함으로써 소련의 도움이 별로 중요하지 않음을 보여준 겁니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에서는 민간인을 포함해 각각 40만∼50만 명이 죽었습니다. 소련에서는 2300만 명이 사망했습니다. 소련이 전쟁 승리에 상당한 공헌을 했지요. 그 대가로 소련은 동유럽을 자신의 세력권 아래에 두려고 했습니다. 미국은 원자폭탄의 위력을 통해 소련의 이런 팽창을 저지하려고 했어요.

미국의 지도자와 과학자들은 원자폭탄을 독점적으로 사용하면 세계가 평화롭게 된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5년이 지나지 않은 1949년에 소련이 원자폭탄을 보유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습니다. 작년 기준으로 전 세계에 1만7000개 이상의 원자폭탄이 있다고 합니다. 세계는 더 평화롭게 됐을까요?

조지형 이화여대 사학과 교수
#히로시마#원자폭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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