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父子, 한국 기술의 미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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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갤럭시-쏘나타도 기름 묻은 손에서 나와” 삼성중공업 조성인 명장-조진영 父子

열정도 부전자전 삼성중공업 조성인 부장(왼쪽)과 아들 진영 씨가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배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영 씨의 꿈은 아버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부자(父子) 명장’이 되는 것이다. 삼성중공업 제공
열정도 부전자전 삼성중공업 조성인 부장(왼쪽)과 아들 진영 씨가 거제조선소에서 건조 중인 배 위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진영 씨의 꿈은 아버지와 함께 대한민국 최초의 ‘부자(父子) 명장’이 되는 것이다. 삼성중공업 제공
1979년 가을 전북 정읍역. 까까머리 소년의 손에는 서울행 기차표 한 장만이 쥐어져 있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은 했지만 수업료 1만8000원을 내지 못해 교무실에 수없이 불려 다니느라 자존심이 상할 대로 상한 참이었다.

맨몸으로 상경한 소년이 수소문 끝에 찾아간 곳은 강북구의 작은 나전칠기 공장. 몇 달만 일하면 값비싼 장롱 만드는 기술을 배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6개월 동안 한 일은 칠이 잘 마르도록 연탄불을 가는 것뿐이었다. 밤에는 잠을 설치며 연탄을 갈고 낮에는 공사장에서 벽돌을 날랐다. 6개월의 냉혹한 서울 생활 끝에 소년이 얻은 깨달음은 밥을 굶지 않으려면 ’번듯한 기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연탄재를 나르던 중졸 학력의 소년은 30여 년 뒤 대한민국 최고의 기술자 타이틀을 따냈다. 그가 바로 대한민국 배관 명장(名匠)인 삼성중공업 기술연수원의 조성인 부장이다. 지금은 아버지의 뒤를 잇겠다는 아들도 한회사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1982년 조성인은 꿈에 그리던 배관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하지만 대기업에 입사했다는 기쁨도 잠시였다. 이번엔 가난이 아닌 학력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남들과 똑같이 자격증을 가지고 입사했지만 중졸 학력의 그에게 주어진 것은 청소와 허드렛일뿐이었다.

다시 이를 악물었다. ‘가방끈’에 연연하지 않고 다른 동료들에겐 없는 배관기능사 1급 자격증에 도전했다. 노력이 결실을 맺었다. 그는 1990년 기술연수원 교사로 발령받았다. 중졸 출신이 고졸, 대졸 출신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된 것이었다. 기술연수원은 선박 건조에 필요한 각종 기술을 가르치는 곳이다. 조선소의 모든 직원이 거쳐 가는 연수원에 대학 학위가 없는 직원이 부임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그는 연수생들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해 용접기능사, 지게차운전기능사 등 다른 자격증에도 도전했다.

그는 못 배운 한을 풀기 위해 사교육에 열을 올리는 현장의 동료들과는 다른 선택을 했다. 아들 진영 씨(29)가 중학교 3학년이 되던 해, 처음으로 단둘이 여행을 떠났다. 목적지는 전남 나주시의 한 공고 작업실. 그는 훈련에 한창인 공고생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진영아, 너 저기 있는 형들처럼 기술 배워 볼래?”

그는 자신의 손을 거쳐 탄생한 제품이 고객의 인정을 받을 때 느끼는 희열을 아들에게도 물려주고 싶었다. 아들도 아버지의 뜻을 잇겠다고 했다. 하지만 진영 씨가 부산기계공고에 입학했을 때 그의 아내는 공부 잘하는 아들을 공고에 보냈다는 설움에 앓아눕고 말았다. 다행히 진영 씨는 금속가공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 고교 3학년 때 전국기능대회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유명 산업대에서 장학금과 조교 자리까지 제안했지만 진영 씨는 대학을 마다하고 아버지가 다니는 삼성중공업에 입사했다. 대학에서 배우는 이론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몸으로 배우는 게 ‘진짜 기술’이란 확신 때문이었다.

대학에 진학한 동창들 중에는 아직 취업 걱정을 하는 친구들도 있지만 진영 씨는 9년차 직장인이다. 아버지가 일했던 선박 시운전부에서 인도를 앞둔 배를 최종 점검하는 일을 맡고 있다. 길게는 한 달씩 망망대해에 나가 건조된 배에 이상이 없는지, 여러 복잡한 기계 장치는 잘 작동하는지 꼼꼼하게 체크한다.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근면함이 큰 자산이다.

조 부장은 연수원에서 ‘호랑이 선생님’으로 유명하다. ‘연습해도 잘 안 된다’는 말을 용납하지 않고 제대로 할 때까지 혹독하게 훈련시킨다. 훈련할 때 몸에 익힌 습관과 기능이 제품 생산과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제가 여기서 쉽게 가르치면 직원들이 현장에서도 대충대충 만듭니다. 용접을 대충한다고 칩시다. 처음엔 아무도 모르고 그냥 넘어갈 수 있겠죠. 그런데 삼성중공업 배가 태평양에 나가서 쪼개지면 누가 책임집니까?” 기능인이라면 자신의 제품에 혼을 담아야 한다는 것이 조 부장의 철학이다.

완벽주의자인 아버지를 집과 일터에서 보고 자란 진영 씨도 현장 경험을 더 쌓아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대한민국 최초의 ‘부자(父子) 명장’이 되는 셈이다.

조 부장은 정년을 채우고 현장을 떠나면 회사 밖에서 후배들을 가르칠 꿈을 가지고 있다. “갤럭시 노트나 쏘나타 같은 명품이 명문대를 졸업한 사람들 머리에서만 나온다고요? 명품도 결국 기름때 묻은 기술자들 손을 거쳐야 나옵니다.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밑바닥에는 기술이 있다는 걸 힘닿는 때까지 알릴 겁니다.”

거제=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삼성중공업#조성인#조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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