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러 주지사선거 ‘무늬만 직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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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출직관리 10% 추천 받고 대통령 조사 거쳐야 출마
야당후보 도전 사실상 막혀

지난해 민주주의 개혁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 이후 부활한 러시아 지방선거가 실제로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철저하게 관리 통제하는 가운데 치러진 것이라고 시사주간 타임이 최근 폭로했다.

러시아 지방선거는 14일 전국적으로 실시됐다. 푸틴 대통령이 2004년 9월 세베로오세티야 수도 블라디캅카스 인근 베슬란 학교에서 테러공격이 발생한 것을 계기로 주지사 직선제를 폐지한 뒤 8년 만이었다. 지난해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 직면한 푸틴 대통령이 유화책으로 주지사 직선제 부활을 약속한 결과였다. 동시에 ‘지자체 여과제’라는 법안도 함께 부활시켜 후보가 해당 지역 선출직 관리 10%의 지지를 확보해야만 등록할 수 있고 대통령은 입후보자를 직접 조사할 수 있게 했다.

문제는 푸틴 정부가 이 제도를 활용해 집권 통합러시아당 소속 현직 주지사들의 재선을 도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번 선거에서 실질적 야당 역할을 하고 있는 공산당과 정의러시아당 후보는 등록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군소 야당인 자유민주당과 러시아애국당만 후보를 내는 상황이 벌어졌다.

노브고로드 주지사 선거에 출마하려던 올가 에피모바 공산당 예비후보는 “(지지를 호소하기 위해 만난) 모든 관리에게서 ‘미안하지만 주지사 측 사람들이 먼저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결국 후보 등록을 못했다. 반면 이 지역에서 선출직 관리를 한 명도 배출하지 못했던 애국당 후보는 등록에 성공했다. 율리야 보로넨코 애국당 선거전략가는 “통합러시아당 소속인 세르게이 미틴 현 주지사 선거캠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선거를 열흘 앞두고 지역 블로그 사이트인 ‘스마트피플포럼’에는 미틴 주지사의 선거 전략이 담긴 43쪽짜리 문서가 폭로되기도 했다. 이 문서에는 여과제를 활용해 유력한 경쟁 후보의 입후보를 막는 ‘경쟁 없는 선거 시나리오’의 세부적인 지침이 담겨 있었다.

실제로 이번에 선거가 치러진 5개 주에서 모두 현직 주지사가 압도적인 표차로 재선에 성공했다. 미틴 주지사의 고문인 알렉산드르 주콥스키 씨는 이 모든 것이 “크렘린(대통령궁)의 뜻”이었다고 말했다.

한편 모스크바의 권위 있는 정치경제 정책연구소 ‘전략개발센터’는 24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푸틴 정권에 대한 국민의 신뢰 추락과 불만 증대, 새로 닥쳐올 경제위기 등으로 러시아가 심각한 혼란을 맞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하일 드미트리예프 전략개발센터 소장 등 보고서 작성자들이 9, 10월 두 달간 전국의 다양한 계층을 상대로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66%는 푸틴 정권과 시민사회를 옥죄는 법률 개정 등에 부정적 태도를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또 최근 몇 달 사이 푸틴에 대한 태도는 ‘부정적’에서 ‘적대적’으로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러시아#주지사선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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