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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페북서 못다한 말 여기선 맘놓고 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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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톡-페북서 못다한 말 여기선 맘놓고 하세요”

동아일보입력 2012-09-04 03:00수정 2012-09-04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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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새 SNS ‘밴드’ 만든 이람 본부장
공유에 지친 사용자 위해 최대한 쉽고 은밀하게 만들어
싸이월드, 네이버 블로그 등 친숙한 인터넷 서비스를 만들었던 이람 NHN 네이버서비스2본부장. NHN 제공
“‘카스’를 쓰면 ‘시월드’에서도 보여 어쩔 수 없이 행복한 척해야 한다는 사람들이 많아요.”

암호 같았다. “카스 맥주를 마시고 수족관에 가면 가식을 떤다고요?” 바보같이 되물었다. 이람 NHN 네이버서비스2본부장은 웃으며 설명해줬다. “카카오스토리를 쓰면 시댁 식구들도 내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힘든 소리는 못하고 행복한 가정의 모습만 보여줘야 한다는 뜻이에요.” 카카오스토리는 카카오톡을 만드는 카카오가 내놓은 인기 있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사람들은 누구나 괴로운 순간이 있다. 삶에 지쳐 차라리 쓰러지고 싶다는 생각이 하루에도 몇 번씩 들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수다를 떤다. 저녁에 모여 왁자지껄 떠들며 맥주잔을 기울이기도 하고, 카페에 동료들과 앉아 직장 상사에 대한 불만도 나눈다. 현실의 소셜네트워크다.

하지만 인터넷의 소셜네트워크는 다르다. 모든 게 하나의 아이디(ID)로 연결된다. 페이스북에서 배우자에게 하소연과 짜증을 풀어놓다보면 시부모도 그 내용을 본다. 학부모 모임에서 담임선생님 욕이라도 하려면 이중삼중 복잡한 설정을 공부해 들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실수로 트위터에 자신의 부적절한 사진을 올려 정치 인생에 막대한 타격을 입은 정치인도 있고, 페이스북에 올린 의견이 바깥으로 확산돼 법복을 벗은 법관도 있다. 인터넷의 소셜네트워크는 현실과 많이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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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와중에 새로운 SNS ‘밴드’가 나왔다. 이람 본부장의 작품으로, 지난달 8일 처음 서비스가 시작됐다. 한 달도 채 안 된 2일 현재 가입자가 72만 명에 이른다. 큰 홍보도 없이 입소문만으로 끌어들인 가입자 수다.

밴드의 가장 큰 특징은 폐쇄성이다. 이 본부장은 ‘1학년 5반’, ‘사사과 91학번’, ‘Exconnect’(NHN 임원 모임) 등 자신이 가입한 밴드를 보여줬다. 서비스 이름도 밴드지만 그 속의 모임 이름도 밴드다. 그런데 이런 밴드는 아무리 검색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람’으로 검색해도 마찬가지다. 밴드에는 아예 검색 기능이 없다. ‘우리끼리 모임’이니 찾아보지도 말란 얘기다.

기존에 이런 식의 SNS는 없었다. 트위터는 모든 게 공개돼 있고, 페이스북도 사용자 검색이 가능하다. 오히려 ‘알 수도 있는 사람’이라며 알 만한 사람을 추천한다. ‘카카오톡 친구가 된 시어머니’ 앞에서 24시간 말조심해야 하는 카카오스토리와도 다르다.

SNS의 특징은 개방과 공유다. 내 정보를 공개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며 일상을 나눈다. 하지만 이 본부장은 거꾸로 생각했다. “SNS에 지쳐요. 말 실수할까봐 조심스럽고, 친구들과 수다 떨고 싶지만 주위 사람들이 ‘네이버 임원이 저런다’고 할까봐 두렵거든요.”

이람 본부장이 실제로 ‘밴드’를 사용하는 모습. 학부모 모임, 가족들과 사진을 나누는 모임, 직장 모임, 서비스 통계를 바로 보고받는 모임 등이 있다. 공적, 사적 용도로 모두 사용하지만 절대 서로 섞이지 않는다는 점이 밴드의 특징이다. NHN 제공
올해 39세인 이 본부장은 1999년 싸이월드를 만든 창업 멤버다. 20대에는 ‘어려운 홈페이지’가 싫어서 20대 여성이 쉽게 쓸 만한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만들었다. 이후 싸이월드는 한때 가입자가 3000만 명을 넘을 정도로 한국 대표 SNS가 됐다. 2003년 NHN으로 옮긴 뒤에는 네이버 블로그를 만들어 국내 1위 블로그 서비스로 성장시켰고, 카페하면 ‘다음 카페’였던 시절 네이버 카페를 다음과 맞먹을 정도로 키워냈다. 한국의 대표적인 인터넷 서비스 가운데 상당수가 그의 손을 거쳤다.

밴드에는 별 특별한 기능도 없다. 사용법은 극단적으로 단순하다. 스마트폰 앱을 내려받은 뒤 이름과 전화번호, 생일을 입력하고 ‘밴드 만들기’를 누르면 끝이다. 전화번호가 아이디(ID)가 되고, 자기 이름과 생일을 입력한 뒤 전화기 주소록에서 친구를 초대하면 된다. 메뉴는 게시판과 사진첩, 채팅방, 일정, 주소록이 전부다. PC에서도 못 쓴다. 오직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이 본부장은 “최대한 비공개로, 최대한 쉽게 쓰도록 일부러 PC도 피하고 기능도 뺀 것”이라며 “화려한 기능을 갖춘 새 서비스가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데 지친 사람들을 위한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신규 가입자의 60∼70%는 이미 쓰고 있는 친구의 초대로 가입한다. 불필요한 부분을 모두 뺐더니 오히려 쓸만하다며 추천하는 것이다. 이 본부장은 “세상 모든 아줌마들도 쉽게 쓸 수 있는 서비스라면 해외에서도 통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밴드#S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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