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툭 터놓고 톡]<12>한일 정보보호협정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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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7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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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도발징후 감지 핫라인 역할” vs “日 식민지배 면죄부 주는 꼴”

《 ‘밀실 처리’ 파문을 빚은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 날선 공방이 계속되고 있다. 정부는 김태효 대통령대외전략기획관이 사퇴하고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이 사과한 만큼 이번 사태의 책임 논쟁을 중단하고 국가안보 차원에서 협정을 재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반면 야당은 절차의 잘못은 물론이고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방조하는 협정이라며 폐기를 요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17일 김황식 국무총리의 해임 건의안도 제출했다. 과연 무엇이 올바른 선택인가. 전문가들의 찬반 의견을 들어본다. 》
■ 이래서 찬성한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북한 도발 대비 등 안보 측면에서 일본과의 군사기밀 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비공개 처리 논란을 촉발한 정부의 책임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이번 사태로 주변국과의 안보협력이 위축되거나 무산돼선 안 된다는 얘기다.

○ “일본의 첨단 정보력으로 공백 메워야”

전문가들은 한국보다 몇 수 위인 일본의 정보력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정찰위성과 이지스함, 조기경보기 등 일본의 첨단 정보자산을 활용해 북한의 핵과 미사일기지 동향 등 특급정보를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희원 동국대 법대 교수는 “일본은 1997년 러시아와 중국을 포함한 동북아시아 정보를 종합 분석하는 ‘국방정보본부’를 자위대 산하에 창설했다”며 “일본의 영상·통신정보 수집 능력은 정평이 나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코끼리 우리(elephant cage)’라고 알려진 일본의 감청능력은 한반도 전역과 러시아, 중국, 남중국해까지 도달할 만큼 강력하다”고 덧붙였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일본이 보유한 20여 대의 EP-3 정찰기는 동해상에서 대북 신호정보(SIGNIT)를 샅샅이 수집한다”며 “이런 정보를 제공받게 된다면 북한의 도발징후 감지와 대책 마련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의 도발을 막고 굳건한 안보태세를 유지하려면 하나의 정보라도 더 필요하다”며 “한국의 강점인 대북 인적정보(HUMINT)와 일본의 하이테크 정보는 충분히 교환할 가치가 있다”고 봤다.

아울러 세계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미국도 주변국과 긴밀한 군사정보를 공유하는 상황에서 안보와 국익을 위한 일본과의 군사기밀 교류는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이들은 주장했다.

○ “근거 없는 확대 해석은 금물”

전문가들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협정에 대한 근거 없는 내용이 확대 재생산되면서 소모적 논쟁과 국론 분열을 초래하고 국민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교수는 “이미 24개국과 군사정보 교류협정을 맺었고, 일본을 25번째 국가로 추가하는 것인데 이를 ‘한일 군사동맹’을 맺어 북한을 압박하는 것처럼 곡해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신 대표는 “협정이 체결돼도 한국이 원치 않을 경우 일본에 군사기밀을 제공할 의무가 없다”며 “일본이 요구하면 모든 군사기밀을 다 줘야 한다는 등 왜곡된 주장이 넘쳐나 안타깝다”고 밝혔다.

협정을 체결하면 동북아 국가 간 대립을 격화시켜 한반도의 안보위기를 초래할 것이라는 지적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한 교수는 “이 협정이 한미일 3국과 북중러 3국의 대결을 격화시켜 동북아 신(新)냉전을 초래할 것이라는 주장은 단견”이라며 “오히려 역내 안보위기와 군사적 긴장에 대처할 수 있는 ‘핫라인’ ‘완충장치’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과거 냉전시대에 미국이 적대국인 소련, 중국과도 다양한 정보교류를 한 사실이 그 중요성을 잘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 “독도, 과거사 문제와는 구별해야”

한일 간 과거사와 영유권 갈등이 있지만 이 때문에 안보와 국익에 중요한 협정까지 거부해선 안 된다고 이들은 주장했다. 신 대표는 “과거사와 독도 영유권 문제는 정부가 원칙을 갖고 강력히 대응해야 하지만 정보보호협정은 별개 사안”이라며 “민족감정에 치우쳐 대안 없이 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한 교수는 “과거사와 영유권 문제 때문에 안보와 직결된 정보공유를 거부하는 것은 지나친 감정적 대응이자 정치 쟁점화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일본의 군사적 팽창 야망 등 속내를 합법적으로 들여다보고 우리 정보의 질을 높이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조속히 협정이 채결돼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일본의 핵무장 우려와 집단자위권 논란과 관련해 박 교수는 “일본은 현실적으로 핵을 보유하고 집단자위권을 행사할 만한 정치적 의지나 능력이 없다”며 “일본과 협정을 맺으면 한국이 일본의 손아귀에 먹혀들어갈 것이라는 우려는 기우”라고 말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 이래서 반대한다

한일 정보보호협정 체결에 반대하는 전문가들은 협정이 추진 절차는 물론이고 그 내용에서도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특히 “우리가 나서서 일본의 재무장을 도와줄 이유가 없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 “협정 명칭과 절차, 내용까지 문제”

박명림 연세대 정치학과 교수는 “정부가 협정의 명칭에서 본질을 담고 있는 ‘군사’ 용어를 생략해 은폐를 기도하고 철저히 비공개로 추진한 것은 정부 스스로 내용의 휘발성과 민감성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라고 지적했다. 이장희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조약의 명칭은 그 조약의 전체 성격을 상징한다”며 “군사기밀 공유 협정을 맺으면서 ‘군사’라는 단어를 쓰지 않은 것은 국민 몰래 통과시키려는 숨은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청회 한 번 열지 않고 차관회의를 생략했으며 국회 비준동의를 받지 않은 절차상 문제도 지적됐다.

이들은 이미 24개국과 비슷한 성격의 정보보호 협정을 맺었지만 한일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이번 협정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침략국인 일본은 평화헌법 9조에 따라 재무장할 수도, 군대를 보유할 수도, 전쟁을 할 수도 없는 나라”라며 “그런 점에서 한일 정보협정은 일본의 위헌적 재무장과 식민지 범죄행위에 대해 면죄부를 주는 반평화적, 반역사적 협정”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도 “일본은 한국 식민 역사의 불법성과 범죄성을 한 번도 인정하지 않았다”며 “과거사도 해결하지 않은 일본이 최근 핵무장과 집단자위권을 가져 군국화하려는 마당에 이를 도와주겠다는 것은 대통령 탄핵감”이라고 말했다.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5월 일본을 방문해 협정 체결하려다 취소했던 정부가 갑자기 ‘6월 내 서명’으로 급물살을 탄 배후에는 미국이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정부는 미국의 압력이 없었다고 부인하고 있지만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6월 14일 한미 외교-국방장관 회담(2+2회담) 성명에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가 명시돼 있다”며 “그동안 위키리크스(폭로 전문 웹사이트)로 드러난 미국 전문 등으로 미뤄 봐도 2+2회담에서 한일 군사협력 논의가 없었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박 교수는 “미국은 지금까지 한국과 일본 사이에 주권, 안보 갈등이 불거질 때 한 번도 한국 편을 든 적이 없다”며 “만약 미국의 압력이 없었는데도 협정 체결을 서둘렀다면 더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 “폐기만이 해법이다”

정부는 한일, 한중 군사협력을 병행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덜겠다는 계획이다. 김성환 장관은 11일 국회 답변에서 “한중, 한일 정보보호협정을 동시 체결하는 방안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정 대표는 “한중 군사협정이 누구를 가상의 적으로 상정해 체결될 수 있겠느냐”라며 “전형적인 물타기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도 “명목상으로는 한일, 한중 협정을 동시 체결하면 균형이 잡힐 것 같지만 침략국가인 일본과 군사협정을 맺는 것에 대해 동아시아 국가들로부터 합의를 먼저 이끌어내지 못하면 무의미한 일”이라고 말했다.

한일 정보협정을 맺어도 실리가 많지 않다는 지적도 나왔다. 정 대표는 “일본은 2009년, 2011년 북한의 장거리로켓 발사를 포착하지 못했고, 정보분석 능력도 미국에 비해 걸음마 수준”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일본이 북한의 영공과 영해를 근접해 대북 정보를 수집하는 과정에서 빚어질 수 있는 한반도 주변의 충돌사태 등 역효과가 크다고 그는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일본과의 대북 정보의 공유 과정에서 이미 취약해진 한국의 대북 인적정보가 더 위험해질 수 있는 만큼 협정을 폐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도 “일본에서 제공받는 대북 정보가 미국에서 받는 것 이상의 양질이라고 기대하기 어렵다”며 협정 체결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교수는 “협정을 체결하면 일본은 ‘미일 신방위지침’에 명시된 주변사태 개입을 한반도까지 확대할 것”이라며 “냉전식 이념외교, 진영외교로 회귀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 협정은 폐기돼야 한다”고 말했다.

조숭호 기자 shcho@donga.com
#한일 정보보호협정#찬반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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