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김연경’ 김희진 “특별한 선수 되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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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6월 15일 16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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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이 싫었다. 결국 죽음으로 향하는 인생, 특별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시는 것을 보고 그런 깨달음을 얻었다는 게 쉽게 믿기진 않지만 그는 그때가 분명히 기억난다 했다. 아이는 이제 키 186cm, 몸무게 75kg의 당당한 체격을 지닌 배구 선수가 됐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막내 김희진(21·기업은행) 얘기다.

지난달 23일 도쿄. 한국은 숙적 일본을 꺾고 런던 올림픽 본선 진출 티켓을 사실상 예약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이후 22연패 끝에 얻은 통쾌한 승리였다. '월드 스타' 김연경(24)이 버티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지만 1세트에서만 8득점하며 깜짝 활약한 김희진이 없었다면 결과는 알 수 없었다. 김희진은 지난 주 부산에서 열린 월드그랑프리 1차 예선에서 터키와 일본을 상대로 잇달아 팀 최다 득점을 기록하며 벤치를 지킨 김연경과 황연주(26·현대건설)를 대신해 한국의 공격을 이끌었다.

"막내인 제가 올림픽 예선 일본전에 투입될 줄은 몰랐어요. 1세트 뒤진 상황에서 감독님이 저를 부르셨을 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죠. 부담 같은 건 없었어요. 뭔가 꼭 보여주겠다는 생각만 했죠."

부산에서 태어난 김희진은 초등학교 5학년 때 육상(높이뛰기) 선수로 운동을 시작했다. 배구 관계자들은 운동 신경이 뛰어나고 키가 큰 그를 눈여겨봤다. 김희진은 6학년 때 서울로 올라와 배구에 입문했고 배구 명문 중앙여중과 중앙여고를 거치면서 대형 선수의 가능성을 확인했다. '고교 최대어'로 통했던 그는 신생팀 기업은행에 입단했고 2011~2012시즌 프로에 데뷔했다. 많은 이들이 김희진을 신인왕으로 꼽았지만 영광은 팀 동료 박정아에게 돌아갔다.

"솔직히 기대 안했어요. 대표팀에서는 공격수를 맡고 있지만 구단에서는 센터를 하다 보니 관심을 덜 받잖아요. 저는 아무렇지 않았는데 부산에서 올라와 시상식에 참석하신 부모님은 많이 실망하셨죠. 저도 그 일 때문에 죄송했는데 일본과의 올림픽 예선 이후엔 제게 '잘 해 줘서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김희진의 장점은 강한 파워. 하지만 프로 데뷔 해였던 지난 시즌에는 스피드와 섬세한 기술이 뒤진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외국 선수만큼 스파이크를 강하게 때리고 싶었어요. 하지만 어쩌다 보니 (김희진은) 세게만 때린다는 인식이 생긴 것 같아요. 그런 점을 바꾸고 싶었습니다. 최근 대표팀에서 선배들을 보면서 많이 배우다 보니 제가 보기에도 여러 가지가 많이 나아진 것 같아요(웃음). 예전에는 득점만 많이 하면 좋은 건 줄 알았는데 이제는 달라요. 블로킹이나 수비도 잘해 팀에 여러모로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연경이 언니나 남자부 삼성화재 석진욱 선배님처럼요."

최근 그에게는 종종 '제2의 김연경'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그에 대한 소감이 어떠냐고 묻자 김희진은 펄쩍 뛰었다.

"너무 부담스러워요. 닮고 싶은 선배지만 지금은 비교하는 것 자체가 무리죠."

김희진은 평소 머리를 짧게 깎고 다닌다. V리그 시상식 때도 소년 같은 모습으로 등장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외모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어요. 머리도 짧은 게 편했고요. 남자 같다는 말 때문에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초월했어요. 배구만 잘 하면 되잖아요."

평범하게 살기 싫지만 아직은 자신이 평범한 선수라는 김희진. 하지만 특별한 선수가 되고 싶다는 그의 바람은 이미 절반쯤 이뤄진 듯 하다.

포산=이승건기자 w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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