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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 판사 탈락했던 그가 대법관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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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이라 판사 탈락했던 그가 대법관 오른다

동아일보입력 2012-06-06 03:00수정 2012-06-06 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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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신 울산지법원장
5일 대법관 후보로 임명 제청된 김신 울산지방법원장. 대법원 제공
김신 대법관 후보(울산지방법원장)는 1983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한 이후 부산고법과 부산지법, 울산지법 등 부산고법 산하 각급 법원에서만 줄곧 근무해 온 지역법관(향판)이다. 김 법원장이 국회 동의를 거쳐 대법관이 되면 조무제 대법관이 2004년 퇴임한 이후 맥이 끊겼던 향판 출신 대법관이 새로 나오는 셈이다.

김 법원장은 어린 시절 소아마비를 앓아 오른쪽 다리에 보조기를 해야 걸을 수 있는 장애인 법관이다. 이 때문에 학창시절 주변의 차별과 냉대로 마음고생이 심했다. 하지만 김 법원장은 고교 재학 때 신문에서 ‘장애인 판사 탄생’이란 기사를 우연히 접하고 판사의 꿈을 키워 나갔다. 당시 기사는 박장우 현 법무법인 미래 대표변호사(63)가 197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했을 때 보도된 내용이다. 그는 각고의 노력 끝에 1976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한 데 이어 1980년 22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였다. 사법연수원을 수료하고 판사에 지원했지만 1982년 8월 대법원은 김 법원장 등 4명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판사 임용에서 탈락시켰다. 법관이 법정에서 주로 재판을 하지만 현장검증 등 활동성이 요구되기 때문에 장애인은 판사 임용이 어렵다는 게 탈락 이유였다.

그러나 김 법원장 등 4명의 장애인이 법관 임용에서 탈락한 사연은 장애인 단체와 언론 등을 통해 외부로 알려져 사회적으로 큰 파문이 일기도 했다. 당시 탈락한 4명은 “인격의 결함이 있다면 몰라도 신체장애를 이유로 임관을 거부하는 것은 납득할 수 없다”며 “연수원에서의 수습과정을 통해 판사의 직무를 충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자신해 지원했던 것”이라고 항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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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법원장도 당시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동정한다거나 하는 감정적 차원에서 문제를 생각하지 말아 달라. 국민이 마지막으로 믿고 기대는 곳이 사법부가 아닌가. 이러한 사법부가 이처럼 비합리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결국 김 법원장은 탈락 5개월 만에 부산지법 판사로 임용됐다. 대법원은 그로부터 30년 만에 김 법원장을 대법관에 임명제청하면서 과거의 논란 많았던 역사를 바로잡고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존중이라는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 셈이다.

피나는 노력의 결과 김 법원장은 민사를 비롯해 형사, 행정, 파산 등 다양한 재판 업무에서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고위법관으로 승진했다. 장애를 딛고 법관으로 성공한 김 법원장의 인생역정은 장애인들에게 희망의 상징이 되고 있다.

김 법원장은 강직하고 비타협적인 성향이어서 주위에서 ‘외골수’라는 평을 듣기도 한다. 특히 형사 판결에서 피고인의 유죄가 인정될 경우 상대적으로 중형을 내린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재산 신고액이 4억3000만 원에 그쳐 후배들로부터 조무제 전 대법관 이후 대표적인 ‘청빈 법관’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번에 대법관 후보로 추천되면서 많은 선후배들이 전화를 걸어 축하했지만 “대법관직에 연연하지 않는다”는 담담한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울산지법 직원들은 김 법원장에 대해 “모든 직원에게 늘 자상했고 울산의 상징인 태화강 일대를 산책하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고 말했다.

주요 판결로는 부산고법 행정1부 부장판사로 재직하던 올 2월 현 정부가 추진한 ‘4대강 사업’에 대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거치지 않는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어 위법하지만 사업 취소는 해선 안 된다”는 ‘사정판결(事情判決)’을 내려 주목을 받았다. 사정판결은 원고의 청구가 이유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처분을 취소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현저하게 부적합하다고 판단될 때 내리는 판결이다.

김 법원장은 이날 동아일보 기자와의 통화에서 “언론 보도나 주위 반응을 보면 사회적 약자를 배려할 것이라는 기대가 많은 것 같다. 나 스스로 실제 그런 입장을 경험한 만큼 법이 허용하는 테두리 안에서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또 “법관 임용에서 탈락했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법원이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한 기대를 한 번도 저버린 적도 없다”고 덧붙였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김신#대법관#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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