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나는 공부]“도와주세요” 따라갔더니…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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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 5년간 2배 증가… ‘선의’ 악용하는 등 범죄수법 지능화
불안한 부모들 ‘아무도 믿지 말라’ 교육… 사회성 떨어지는 부작용 생길수도


2010년 8월 충북 청주에서 성폭력 전과자가 초등학생을 유인해 감금하려 한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은 성폭력 범죄로 장기 복역한 고모 씨(27)로 범행 당시 출소한 지 1년이 지난 상태였다. 고 씨는 오후 1시경 지나가는 당시 11세 A 양을 발견하고 거짓말로 “도와 달라”고 요청했다. 어른인 고 씨가 도움을 요청하자 A 양은 선뜻 따라나섰다. A 양을 인근 여자화장실로 유인한 고 씨는 화장실 칸으로 들어가게 하고 문 앞을 가로막고 섰다. A 양이 울기 시작하자 놀라 도주했던 고 씨는 경찰에 붙잡혔다.

○ 12세 이하 대상 약취·유인 5년간 2배 증가

최근 유아·초등생을 유인하는 범죄수법이 더욱 지능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물리적 힘을 쓰거나 과자를 사주는 등 비교적 단순한 수법을 사용했지만 최근에는 아이의 선의를 악용하거나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법을 동원해 아이와 부모의 각별한 대비가 요구된다.

24일 ‘신나는 공부’가 경찰청을 통해 확인한 ‘2007∼2011년 12세 이하 대상 약취·유인 사건 발생 현황’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2배나 늘어났다. 2007년 45건이던 약취·유인 범죄는 2008년 102건으로 세 자리 숫자를 기록했다가 지난해는 88건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도 최근 크게 늘었다. 여성가족부가 최근 발표한 ‘2000∼2010년 아동 청소년 대상 성범죄 유죄판결 확정사건’ 자료에 따르면 성추행과 성폭행 등 성범죄는 11년간 약 5배로 늘었다. 피해자 평균연령은 12.8세로 초등생이 많다.

표창원 경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최근 발생한 약취·유인 사건의 경우 집으로 가는 아이를 따라간 뒤 우편함 속 우편물을 보고 확인한 부모의 이름을 부르며 아이를 유인하거나 아이의 책가방에 적힌 이름을 보고 아는 사람처럼 접근하기도 한다”면서 “영화, 드라마, 뉴스 등 미디어를 통해 범죄수법을 학습해 수법이 지능화되는 추세”라고 말했다.

○ 초등 고학년도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조심해야

아이들이 이런 범죄수법에 쉽게 넘어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적잖은 아이들이 갖고 있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어렸을 때부터 집과 학교에서 어른들의 말을 잘 들으며 예의바르게 행동해야 하고, 어려운 사람과 곤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주는 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아이들은 배운다는 것. 이에 따라 판단력이 좋은 초등 고학년도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며 접근하면 거절하기 쉽지 않다.

2010년 9월 임모 씨(26)는 전북 전주의 한 아파트 놀이터에서 혼자 놀던 B 양(10)에게 “휴대전화를 구경해도 되겠느냐”며 접근했다. 휴대전화를 건네받은 임 씨는 돌려주지 않으면서 휴대전화를 돌려받기 위해 따라오는 B 양을 인근 야산으로 유인해 성폭행했다. 어른의 부탁을 쉽게 거절하지 못하는 아이의 특성을 이용한 것.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법도 ‘맛있는 것을 사주겠다’는 방식에서 진화했다. 3월 서울 성북구에서 발생한 C 군(5) 납치사건이 대표적인 경우. 김모 씨(50·여)는 강아지 사진을 보여주면서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으러 가자”고 아이에게 접근했다. 당시 C 군은 초등학교 후문 앞 거리에서 친형과 동네친구 등 4명과 소꿉놀이를 하고 있었지만 C 군은 물론 함께 있던 아이들도 김 씨를 의심하지 않았다.

곽영주 실종아동전문기관 예방홍보개발팀 팀장은 “오디션 프로그램이 아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점을 이용하는 수법도 있다”면서 “길에서 가짜 기획사 명함을 건네며 ‘스튜디오 촬영을 해보자’고 접근하기도 한다. 누군가의 제안이나 호의는 보호자의 동의를 받은 뒤 따르거나 받도록 평소 부모가 철저히 지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 학부모의 딜레마…‘공포심 주면 사회성·인성발달에 안 좋을 수도’

동아일보 DB
동아일보 DB
아이에게 접근하는 방법뿐 아니라 아이를 협박한 뒤 강제로 데려가는 방법 또한 지능화되고 있다.

2010년 6월 서울에서 발생한 여자초등생 납치·성폭행 사건. 범인은 아이의 목에 흉기를 들이대며 “소리치면 죽여 버린다. 조용히 따라오라”고 협박하는 단순한 방법을 사용했지만, 아이와 이동할 때는 사람들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아이의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는 시늉을 한 것.

이런 지능적인 범죄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한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부모로서는 딜레마적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아이에게 “엄마 아빠 외에는 그 누가 접근해와 ‘도와달라’고 해도 절대로 말을 섞지 말고 뛰어서 도망쳐라. 무거운 짐을 든 할머니가 다른 패거리들과 짜고 도움을 요청할 수도 있으니 할머니들도 절대로 믿지 마라”고 신신당부하기도 하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의 예절과 사회성이 떨어지게 되는 부작용을 낳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장영희 성신여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아이에게 공포심을 심어줄 경우 선입견이 생겨 대인관계 형성에 어려움을 느끼면서 사회성이나 인성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면서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어려서 도와드릴 수 없으니 다른 분께 요청해 보겠다’고 대응하는 등 예의 차리면서 동시에 안전도 지킬 수 있는 방향으로 지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이태윤 기자 wolf@donga.com
#미성년자 약취#유인 범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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