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이 만난 사람/이형삼]박용성 대한체육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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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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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릉선수촌 런던 옮겨 금메달 10개 종합순위 10위 이루겠다”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평소 책과 신문 잡지를 많이 읽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막힘없이 이끌어간다. 한마디로 박학다식(博學多識)이다. ‘신문에 쓰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면 때론 솔직한 독설도 튀어나온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박용성 대한체육회장은 평소 책과 신문 잡지를 많이 읽고 사람들을 부지런히 만나 다양한 주제의 대화를 막힘없이 이끌어간다. 한마디로 박학다식(博學多識)이다. ‘신문에 쓰지 않겠다’는 조건을 달면 때론 솔직한 독설도 튀어나온다. 서영수 전문기자 kuki@donga.com
한국 선수들이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처음 참가한 여름올림픽은 1948년 런던 올림픽이다. 67명의 선수단은 배 기차 비행기를 13번 갈아타고 9개국 12개 도시를 거쳐 20일 만에 런던에 도착했다. 현지까지 쌀을 가져가 직접 밥을 해 먹으며 경기를 치렀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동메달 2개를 따 공동 32위에 올랐다. 대견한 일이었다.

올해 7월 27일, 64년 만에 런던에서 다시 올림픽이 열린다. 370명 규모의 한국 선수단은 매일 직항하는 우리 국적기로 각자 스케줄에 맞춰 ‘마실’ 가듯 런던으로 날아간다. 참으로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있다. 런던에선 대학 한 곳을 통째로 빌려 숙식과 훈련을 해결한다. 태릉선수촌을 런던으로 옮겨놓는 셈이다. 목표 성적은 ‘10-10’(금메달 10개 이상, 종합순위 10위 이내)이다. 런던 올림픽 D―99 카운트가 시작된 19일 박용성 대한체육회장(72)을 만났다. 박 회장은 “현재 167명이 올림픽 출전권을 확보했다. 250명 출전이 목표다. 아직 예선이 안 끝난 80여 명이 출전권을 따내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주최국이 배정하는 선수촌을 마다하고 대학을 빌린 것은 처음인 것 같은데….

“선수들이 사골국 같은 우리 음식을 아주 좋아하는데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는 가까운 곳이라 얼려서 공수했다. 런던까지 그렇게 할 순 없지 않나. 선수촌 밖으로 불러내 먹이는 것도 번거롭고. 연습장도 고민거리였다. 주최 측이 제공하는 연습장은 여러 나라가 나눠 쓰느라 하루 한두 시간밖에 사용할 수 없다. 그래서 주방과 식당, 100여 개의 방을 갖춘 대학 기숙사와 체육관 전부를 빌렸다. 올림픽 참가 이래 처음으로 자체 트레이닝 캠프를 차린 것이다.”

이 덕분에 선수들의 연습 파트너도 데려갈 수 있게 됐다. 유도나 펜싱처럼 일대일로 겨루는 종목의 국가대표들에겐 평소 함께 훈련하는 연습 파트너가 있다. 하지만 올림픽 출전선수가 아니면 연습장을 사용할 수 없어 지금까지는 파트너의 현지 동행이 불가능했다.

―‘10-10’은 실현 가능한 목표인가.

“확실한 걸로만 쳐서 낮춰 잡은 거다. 금메달 10개면 은·동메달 합쳐 30개쯤 될 테니 금메달 순위, 총 메달 순위 다 10위 안에 든다.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세계 13위쯤 된다니 우리 체육이 경제보다 좀 더 잘하는 것 아닌가.”

―양궁 태권도 같은 ‘메달밭’은 탄탄한가.

“안심하진 못한다. 양궁 국제대회에 가면 한국 코치 동창회에 온 것 같다. 세계 최강의 한국 양궁 코치들이 전 세계에 진출해 있기 때문에 우리 전력이 완전히 노출돼 있다. 더욱이 한국을 견제하기 위해 예선에서 한 발만 실수해도 탈락하도록 룰을 바꿔 의외성이 높아졌다. 태권도도 모른다. 갈수록 다리 기술 위주의 경기가 되다 보니 다리가 긴 유럽, 중동 선수들에게 유리해지고 있다.”

―요즘 태권도 경기는 제자리에서 껑충껑충 뛰며 발길질만 해서 재미가 없다.

“발(跆)과 주먹(拳)을 다 쓴다고 해서 태권도인데 지금은 거의 ‘태도(跆道)’가 됐다. 발만 쓰니까 박진감이 없고 지루하다. 권투는 맞고 쓰러져 열 셀 동안 못 일어나면 진 거고, 유도는 화끈하게 상대를 메다꽂으면 이긴다. 태권도는 격파시범은 인상적이지만 실제 경기에선 그런 다이내믹함이 없다. 흥미 요소를 높이기 위해 룰을 개선하려 애쓰고 있다.”

―태권도가 올림픽에서 퇴출될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올림픽을 더 재미있게 만들기 위해 2020년 대회부터 기존 종목(골프와 7인제 럭비를 뺀 26개 종목) 중 1개를 빼고 8개 대기 종목 중 1개를 넣기로 돼 있다. 태권도가 위험하다고 단정할 순 없지만 미리 대비할 필요는 있다. IOC(국제올림픽위원회)는 TV 시청률을 중시하므로 태권도 경기를 ‘TV 프렌들리’하게 만들어야 한다. 베이징 올림픽 때 쿠바 태권도 선수가 관중 앞에서 심판을 구타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있었는데 이런 악재가 터지지 않도록 경기 운용도 잘해야 한다.”

8개 대기 종목 중엔 한국이 베이징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야구도 있다. IOC는 ‘야구를 하는 나라가 적고, 야구를 안 하는 나라에서 올림픽을 개최할 경우 야구장을 짓는 건 낭비’라는 이유로 야구를 퇴출시켰다. 그러나 런던 올림픽에 여자 권투가 들어가면서 전 종목에서 남녀 경기가 치러지게 된다. 야구는 여자 소프트볼과 짝을 이뤄 올림픽 재진입을 노리고 있다. 야구와 소프트볼은 내야를 늘리고 줄여 쓰면 되니까 경기장 문제도 해결된다.

―2016년 올림픽에선 골프가 신설된다. 우리 선수들이 선전(善戰)할 것 같다.

“국제골프연맹은 남녀 각 60명을 출전시키되 세계 랭킹 1∼15위는 자동 출전, 16∼60위는 한 나라에 최대 2명씩 출전시키자는 안을 내놨다. 이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여자 8명, 남자 3명이 출전권을 얻게 된다. 여자 선수들은 금·은·동을 휩쓸 수도 있다. 다만 우리 선수들은 국제대회에서 첫째 날부터 셋째 날까지 잘 치다가 마지막 날 무너지는 경우가 많다. 평소 ‘몸 만들기’에 소홀하기 때문인 듯하다.”

―태릉선수촌에선 어떻게 몸을 만드나.

“선수들이 하루 평균 5200Cal를 먹는다. 보통 성인의 2배다. 그만큼 먹고도 체중이 늘지 않는다. 운동으로 그 열량을 다 태워 없애니까. 헬스클럽에서 한 시간 내내 운동해 보라. 기껏해야 200∼300Cal 태운다. 선수들이 훈련받는 걸 부모가 보면 당장 그만두라며 끌고 갈 거다. 너무 힘들어 엉엉 울면서 훈련받는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면 얼마나 보상을 받나.

“운동은 자기가 좋아서 하는 거다. 올림픽 금메달 연금이 월 100만 원, 은메달 75만 원, 동메달 52만 원이다. 우리나라 최저임금이 월 87만 원인데 돈 때문에 운동한다는 건 말이 안 된다. 태극마크 달고 세계대회 한 번 휩쓸어 보겠다는 성취욕 때문에 한다. 88올림픽 때까진 포상을 많이 해 줘 운동으로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는 선수도 더러 있었다. 이제 그런 시대는 지나갔다.”

박용성 회장은 체육인이자 기업가(두산중공업 회장), 교육자(중앙대 이사장)이다. 1982년 대한유도협회 부회장으로 체육계와 인연을 맺었다. 1981년 88서울올림픽 유치가 결정되자 정부는 기업인들에게 경기단체장을 나눠 맡겼다. 이건희 삼성 회장은 레슬링, 정몽구 현대 회장은 양궁, 이명박 현대건설 회장은 수영을 떠맡았다. 유도는 배종렬 한양 회장이 맡았는데 기업이 어려워지자 박 회장 몫이 됐다. 1995년 국제유도연맹 회장에 선출됐고 체육계 진출 20년 만인 2002년엔 IOC 위원이 됐다.

“당시 기업인들이 경기단체를 나눠 맡지 않았다면 우리 스포츠가 경제 수준보다 훨씬 뒤처졌을 것이다. 정부가 그렇게 관리한 덕분에 가장 성공적인 올림픽을 치렀다. 88올림픽이 동유럽 공산권 몰락에 기여했다는 시각도 있다. 동유럽 사람들이 한국의 역량을 지켜보고 ‘우리 시스템이 잘못된 거 아니냐’며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말이 있다.”

―선거의 해라서 그런지 ‘기업 때리기’ 바람이 분다.

“선거 때마다 그랬지 않나. 이젠 기업 스스로 배싱(bashing·때리기)의 대상이 되지 않게끔 노력해야 한다. 대마불사(大馬不死)도 옛날 얘기다. 나쁜 짓을 해놓고 과거처럼 고위층에 부탁해서 덮을 수도 없지 않은가. 투명성과 정직성이 기업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정부의 시장 개입이 지나치다고 보는가.

“재벌 딸들이 빵집 하는 걸 막는다고 동네 빵집이 살아나겠나. SSM(대기업슈퍼마켓)의 일요일 영업을 막으니 토요일에 일찍 문을 열고 반값 세일을 한다. 소비자들이 토요일에 거기 가서 사지, 재래시장에 왜 가겠나. 동네상권에도 득이 안 되고 소비자에겐 불편만 준다. 정부는 물이 자연스럽게 흐르도록 하면서 다른 데로 새나가는 걸 막고 물에 빠진 사람이 있으면 구해주는 정도만 해야지 아예 물줄기를 바꾸려고 해선 안 된다.”

―아나톨 칼레츠키의 ‘자본주의 4.0’에서 강조하는 정부 규제와 시장 자율의 균형이 쉬운 일은 아닌 듯하다.

“금융부문 규제는 꼭 필요하다. 정부가 감시하고 지도하고 규제할 영역은 분명히 있다. 다만 적절한 수준에서 해야 한다. 정부 역할은 큰 틀의 룰을 정하는 것이다. 정부는 전쟁을 해야지 전투를 할 생각은 말아야 한다. 전투는 기업이 잘한다.”

―정치권의 경쟁적 복지 확충은 어떻게 보나.

“최고의 복지는 일자리 창출이다. 퍼주기 복지로는 일자리를 해결할 수 없다. 산업사회에서 서비스업사회로 가는 마당에 서비스업 규제를 이렇게 많이 두고서 어떻게 일자리를 만들겠나.”

―두산중공업에서 발전(發電)부문 비중이 가장 큰데 후쿠시마 사고 이후 조성된 탈(脫)원전 기류가 영향을 미치진 않는가.

“일본의 전기요금이 우리보다 훨씬 비싼데 원전 발전을 중단하면 코스트가 더 높아져 기업경쟁력이 나오겠나. 후쿠시마 원자로는 우리 것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두산중공업은 원전보다 화력발전 비중이 더 크다. 세계적으로 화력발전 수요도 증가하고 있다. 클린 에너지라는 말은 좋지만 생산단가가 높아 전기료를 몇 배나 올려야 하기 때문에 현실성이 없다. TV 아침 뉴스에서 ‘오늘은 바람이 안 불어 전기를 못 만드니 밥은 미리 해두라’고 예고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라.”

두산그룹은 2008년 중앙대를 인수하고 박 회장이 재단이사장에 취임했다. 그는 “중앙대를 이름만 빼고 다 바꾸겠다”며 개혁 드라이브를 걸었다. 경영대를 확대하는 등 실용학문 위주의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77개 학과를 47개 학과로 통폐합하는 구조조정이 뒤따랐다. 그는 ‘선택과 집중’ ‘제대로 가르치기’ ‘쓸데없는 것 안 가르치기’를 성과로 들었다.

“학과 통폐합하고 학사제도 바꾸는 학교시스템 개혁에는 단돈 10원도 안 썼다. 두산에서 가져온 돈은 전액 시설 개선에 들어갔다. 다른 대학들은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을 안 하고 있다는 거다. 개혁은 누구나 할 수 있는데도 못한다. 총장 임기가 4년이고 재단도 적극적으로 못 나서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개혁을 한 건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원죄(原罪)가 없어서다.”

그가 전교생에게 의무화한 4가지 필수 과목은 영어, 기초회계학, 한자, 역사다. 사회에 진출한 후 실생활에서 꼭 필요한 지식이라는 생각에서다. 역사는 특히 우리 근현대사에 초점을 맞춘다.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아류에서 벗어나 제대로 가르치자는 거다. 우리가 잘한 것만 가르치자는 게 아니라 사실을 가르치자는 거다. 대학까지 나와서 ‘6·25 남침은 확실치 않다’는 따위의 소리를 해서야 되겠나.”

이형삼 논설위원 hans@donga.com
#박용성#대한체육회장#태릉선수촌#올림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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