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이원국 이원국발레단 예술감독

  • Array
  • 입력 2012년 4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방황하던 시절 ‘발레의 길’로 인도하신 어머니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발레리노로 살아온 25년, 내 인생의 지난날을 되돌아보면 많은 추억,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수많은 사람이 떠오른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는 청소년기에 길고도 처절한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숨쉬는 것조차도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께 죄송스럽다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나는 우연히 어머니의 권유로 발레라는 예술을 접하게 됐다. 앞서 어머니는 방황하는 내게 많은 길을 안내했다. 피아노, 서예, 수영, 그림, 보디빌딩, 축구…. 어느 것도 한 달을 버티지 못하고 그만뒀다. 왜 이런 것을 하라고 했냐며 홧김에 집을 나가기도 했다. 쉽게 포기하고는 부모님 탓으로 돌리는 게 어리석은 행동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스스로 통제가 안 됐다. 한편으론 ‘언젠가는 성공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 드려야지’ 하는 마음도 자리 잡을 무렵이었다.

1986년 어머님을 따라 부산의 정금화무용학원에 들어갔다. 남자가 몸에 달라붙는 타이츠를 입어야 한다는 것, 장남인 나를 떠받들어 주던 집안 분위기와 달리 여성을 배려해야 하는 무용이라는 장르, 늦은 나이에 발레를 시작해 굳은 몸을 푸는 것도 힘겨웠지만 마음의 민망함과 어색함이 더 컸다. 처음엔 친구들에게 차마 “나 발레 한다”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렇지만 발레는 운명이었다. 내가 상상치도 못했던 운명이 느닷없이 내 앞에 나타나선 나를 다른 어느 것도 생각하지 못하도록 사로잡았다. 처음엔 어머님의 마지막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아들로서 그 바람을 들어드려야겠다는 마음이었지만, 발레학원에 들어섰을 땐 ‘작심삼일이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랬던 내 인생이 단숨에 바뀌었다. 실의에 빠져 있던 삶이 새롭게 시작됐다. 세상이 다르게 보였다.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어려움을 겪어도 굴하지 않고 앞만 보며 달렸다. 칭찬을 받기 시작했고, 성취감을 느끼게 됐다. 발레를 함으로써 얻은 자신감과 책임감이 인생을 달음박질하도록 채찍질하기 시작했다. 인생의 행복을 깨달았고, 행복은 희생과 노력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법처럼 발레에 빠져들었고 실력도 점점 늘었다. 어느 날 정금화 선생님께 갈고닦은 공중 2회전을 보여드렸다. 그랬더니 선생님은 “국립발레단은 세 바퀴 안 돌면 못 들어간다”는 말씀으로 나의 자신감을 송두리째 날려버렸다. 그 후로 밥 먹는 시간도 줄여 가며 연습에 몰두했다. 1987년 정 선생님의 소개로 김긍수 선생님(전 국립발레단장)을 만나 김 선생님께 배우게 됐다.

1989년 동아무용콩쿠르 대상을 수상했고 1995년 키로프발레단과 함께 ‘백조의 호수’ 공연을 했다. 당시 문훈숙 선생님(현 유니버설발레단장)과 함께 남녀 주역으로 무대에 서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다. 국립발레단에서 활동할 때는 ‘발레리노의 교과서’라는 명예로운 별명도 갖게 됐다.

해마다 12월 ‘호두까기인형’ 공연 즈음에는 발레단을 떠나는 사람과 들어오는 사람이 정해진다. 차이콥스키의 음악에 맞춰 떠나는 사람들과 들어오는 사람들이 한무대에서 어우러져 슬픔과 기쁨을 안고 공연하게 된다. 2004년 발레단을 떠날 때 나 또한 그랬다.

나는 매주 월요일 서울 대학로 성균소극장에서 갈라 공연을 한다. 관객을 기다리면서 공연을 위해 사랑하는 우리 단원들과 매일 소중한 땀을 흘린다. 노원문화예술회관 상주단체인 이원국발레단의 단장으로서 연출가, 안무가, 사업가, 무용수를 겸직하는 것이 나의 일이다. 이 모든 것은 8년 전부터 나와 함께해 온 단원들의 피와 땀으로 이뤄진 것이다.

동아무용콩쿠르 대상, 키로프발레단과의 공연, 우리나라 대표 발레단에서 활동한 것…. 흔히 인생엔 세 번의 기회가 온다는데 어쩌면 나는 세 번의 기회를 다 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나를 있게 한 모든 분들에게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감사를 드리며, 앞으로도 한국 발레를 세계에 알리는 데 앞장서면서 발레리노로서 무대에 남을 것을 소망한다. 끝으로 나를 위해 어떤 희생도 두려워하지 않았던 어머님께 뼛속 깊이 존경과 사랑을, 감사를 전합니다. 사랑해요.

이원국 이원국발레단 예술감독
#이원국#발레#어머니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