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고리원전 정전 때 ‘대체교류 발전기’ 작동법 몰라 못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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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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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상용 디젤발전기 가동 실패’ 이어 또 부실 드러나

지난달 9일 고리원자력발전소 정전 당시 발전팀장이 매뉴얼(비상운전절차서)에 나와 있는 ‘대체교류 디젤발전기(AAC)’를 돌리지 않고 곧바로 외부전원을 연결한 것은 AAC에 대한 운전요령을 제대로 숙지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AAC 작동 등 비상상황에 대한 훈련을 게을리한 것이다.

원전에 외부전원 공급이 중단되면 1차로 비상디젤발전기를 가동해야 하며, 이마저 안 될 경우 2차로 ‘최후의 보루’ 격인 AAC를 작동시켜야 한다. 사고 당시 고리원전 측은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 나자 AAC 가동 없이 외부전원 복구를 했다.

한수원 관계자는 20일 “고리원전 1∼4호기를 운영하는 24개 발전팀들이 AAC 점검을 3개월에 한 번씩만 하는데 그나마 해당 일자에 주간근무가 걸린 팀만 이를 실시한다”며 “점검기간에 AAC를 한 번도 돌려보지 못한 팀들도 있다”고 털어놨다. 이와 관련해 또 다른 한수원 관계자도 “정전 당시 발전팀장이 AAC 작동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외부전원을 바로 연결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한수원에 따르면 20일마다 정기점검을 받는 비상디젤발전기와 달리 AAC는 3개월에 한 번씩만 한 시간에 걸쳐 성능 점검을 한다. 이 때문에 고리원전에 AAC가 설치된 2006년 8월 이후 지난달 사고 직전까지 총 22차례의 정기점검만 이뤄졌다. 고리 1∼4호기를 총 24개 발전팀이 운영한다는 점과 한 팀이 중복 점검하는 경우도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정기점검 때 AAC를 한 번도 돌려보지 못한 팀들도 있는 것이다.

정전 당시 비상디젤발전기가 고장이 나 작동하지 않자 현장 직원들은 외부전원을 연결하느라 12분을 소요했다. 그러나 한수원 자료에 따르면 AAC 기동시간은 약 10분으로 정전 직후 외부전원을 연결하는 데 걸린 시간보다 2분가량 짧다. AAC를 즉각 사용했다면 전원 복구에 걸리는 시간을 좀 더 줄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와 관련해 사고 당시 발전팀장은 “AAC를 켜지 않은 것은 당시 외부전원을 확보하는 게 더 용이했기 때문”이라며 “고리원전 내 훈련센터에서 AAC를 돌려본 경험이 있다”고 해명했다.

사고 당시 한수원 관계자들이 매뉴얼을 충실히 지키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동아일보가 입수한 ‘고리원전 비상운영절차서’에 따르면 ‘비상디젤발전기를 수동으로 가압(작동)할 수 없으면 △디젤발전기를 일단 수동으로 정지(OFF)한다 △대체교류전원 디젤발전기의 차단기 배열 후 수동으로 기동한다 △가능한 소외(외부) 전원계통을 이용해 전원 공급을 시도한다고 적시돼 있다. 그러나 당시 발전팀장은 두 번째 사항(AAC 기동)을 건너뛰고 외부전원부터 연결을 시도했다.

이에 대해 한수원 측은 “해당 매뉴얼에는 ① ② ③식으로 숫자가 달린 게 아니기 때문에 꼭 순서를 지켜야 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현장 발전팀장이 이 중 상황에 맞게 선택해도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원전 전문가들의 의견은 다르다. 매뉴얼에 적시된 순서대로 기동을 하는 게 원칙이라는 것이다. 서울대 서균렬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원전에선 운전원들이 훈련을 할 때 매뉴얼에 나온 순서대로 하도록 돼 있다”며 “숫자가 붙지 않아도 ‘비상디젤발전기→AAC→외부 전원’ 순서로 전원을 복구하는 게 당연하다”고 지적했다.

김상운 기자 sukim@donga.com  
:: 대체교류 디젤발전기(AAC) ::


원자로 외부전원이 모두 꺼진 상황에서 비상디젤발전기마저 작동하지 않는 경우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발전기다. 정부와 한수원은 “우리나라 원전은 일본 후쿠시마원전에는 없는 AAC까지 갖추고 있어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비상디젤발전기와 구조가 비슷하며 원자로 4기가 AAC 한 대를 공용으로 쓸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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