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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 연 박현준 “1회 초 볼넷 주고 500만원…빚 줄여준다기에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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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입 연 박현준 “1회 초 볼넷 주고 500만원…빚 줄여준다기에 또”

동아일보입력 2012-03-12 03:00수정 2012-03-12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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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커 직접 찾아갔다… 협박받는 김성현 도우려”
“네.”

이 한마디뿐이었다. 기자가 LG의 스프링캠프가 열린 2월 중순 일본 오키나와를 찾았을 때 경기 조작 연루설이 나돌던 투수 박현준(26·사진)은 극도로 말을 아꼈다. “넌 아니지”라고 물으면 짧게 “네”라고만 답했다.

그러나 그는 대구지검에 소환된 2일 혐의를 시인했다. 그의 말을 믿었던 팬들은 배신감에 등을 돌렸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 그에게 선수 자격 일시정지 처분을 내렸다. 구단은 이튿날 전격 퇴단 조치를 내렸다.

지난해 13승을 거두며 LG의 에이스로 떠올랐던 그는 이렇게 하루아침에 ‘범죄자’가 됐다. 그렇지만 검찰 발표로는 이해되지 않는 의문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전도유망한 투수가 왜 그런 짓을 했고 드러날 줄 알면서 왜 자신의 계좌로 돈을 받았으며, 보름 넘게 거짓말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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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박현준과 만남을 수차례 추진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수소문 끝에 11일 전북 전주에 있는 그의 집을 찾아갔다. 그는 수척해진 얼굴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시내의 한 카페에서 박현준으로부터 지난 1년간 벌어졌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그는 사진 촬영은 극구 사양했다.

▼ “야구 못하게 될까 두려워 계속 거짓말” ▼

―마음고생이 심했을 거 같다. 그동안 근황은….

“꿈을 꾸는 것 같다. 그냥 멍하게 지내고 있다. 아는 형이 하는 배달 일을 이틀 정도 돕기도 했다. 마스크를 한 지는 3일 됐는데 어제 문득 거울을 보다 ‘내가 왜 이렇게 살고 있나’하는 생각에 가슴이 답답했다.”

―왜 경기 조작에 손을 댔나.

“(같은 혐의로 구속된 팀 후배) 김성현(23)이랑 2010년 대륙간컵에 함께 참가하면서 친해졌다. 지난해 5월 같이 밥을 먹던 중 성현(당시 넥센 소속)이가 경기 조작 브로커로부터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성현이가 경기 조작에 실패하면서 손해 본 돈을 물어내라는 것이었다. (넥센) 구단에 알리겠다는 협박에 성현이가 무척 힘들어했다.”

―그렇다고 박현준 선수도 경기 조작에 뛰어들었다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시 성현이 아버지가 몸이 아파 수술을 했다. 성현이는 ‘수술비와 약값이 없어 경기 조작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협박 얘기를 듣고는 너무 화가 나 성현이를 통해 브로커와 먼저 통화를 한 뒤 직접 만나 항의했다. 그랬더니 브로커가 ‘성현이가 돈을 다 갚아야 된다’고 했다. 내가 같이 하면 성현이가 하루라도 빨리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나도 하겠다’고 했다. 멍청하고 바보 같은 생각이었다.”

―지난해 8월에 두 차례 경기 조작을 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아니다. 5월 24일 잠실 두산전에서 처음 했다. 조건은 상대팀보다 먼저 볼넷을 내주는 거였다. 1회 초 처음 두 타자를 잡고 3번 타자 김현수에게 볼넷을 내줬다. 브로커가 그 대가로 성현이한테 500만 원을 주기로 했는데 전화를 해 보니 안 받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브로커에게 ‘돈을 달라’고 했다. 사흘 후 내 계좌로 500만 원을 보냈다.”

[채널A 영상]두산전 장면 보니, 어이없는 볼들에 포수조차 놀라…

―계좌로 받으면 문제될 거라는 생각은 안 했나. 그리고 500만 원은 어떻게 했나.

“6월 초에 약값에 쓰라며 성현이한테 500만 원을 줬다. 성현이는 안 받겠다고 했지만 억지로 건넸다. 계좌로 받으면 문제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다.”

박현준의 지난해 연봉은 4300만 원으로 결코 많은 액수가 아닌 데다 프로야구 선수는 10개월에 걸쳐 월급 형식으로 나눠 받기 때문에 당시로서 500만 원은 박현준이 선뜻 후배 아버지 약값으로 쾌척하기에는 거금이었다.

―그 후에도 경기 조작을 했나.

“6월 9일 잠실 한화전에서 한 차례 더 했다. 브로커에게서 먼저 연락이 와 ‘이번에는 성현이의 빚을 줄여주겠다’고 했다. 1회 초 선두타자 강동우에게 볼넷을 내줬다. 이후로는 경기 조작 의뢰가 오지 않았다. 성현이도 (7월 31일) LG로 트레이드된 뒤에는 경기 조작을 안 한 것으로 안다.”

―경기 조작이 잘못된 행동이라는 생각은 안 했나.

“잘못했다. 생각이 짧았다. 성현이로부터 처음 얘기를 들었을 때 내가 돈을 빌려서라도 브로커에게 갚도록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게 가장 후회된다.”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린 뒤에도 계속 거짓말을 했다.

“지난달 중순 ‘야구에도 경기 조작 사건이 있었다’는 뉴스를 봤다. 바로 기자들에게 전화가 오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나도 곧 잡혀 가는 건 아닐까’ ‘아니야. 나는 안 걸릴 거야’라는 생각이 교차했다.”

―2일 조사를 받으러 대구지검에 들어갈 때까지 혐의를 부인했다.

“‘내가 했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지만 용기가 없었다. 한 번 거짓말을 한 뒤 이를 돌이킬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야구를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게 너무 두려웠다.”

박현준이 자신이 경기 조작을 처음 했다고 고백한 지난해 5월 24일 잠실 두산과의 경기 모습. 그는 이날 1회초 2사 후 두산 김현수에게 연속해서 볼을 던져 볼넷으로 내보냈다. 동아일보DB
―검찰 조사에서 오전까지 협의를 부인하다가 오후에 갑자기 시인을 했다던데….

“오전까지 계속 아니라고 했다. 증거물로 (500만 원이 찍힌) 계좌를 보여줬을 때도 빌린 돈이라고 답했다. 그런데 점심을 먹으러 가기 전 검사님이 ‘팬들과 부모님께 정말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느냐’고 했다. 30분 정도 혼자 있으면서 곰곰이 생각했다. 더는 거짓말을 할 순 없었다. 자백하기로 마음먹고 내 인생에서 야구를 내려놓기로 했다. 정말 슬펐다.”

―한순간의 실수 때문에 큰 대가를 치러야 할 상황인데….

“내가 한 행동은 스포츠 선수로서 절대 해선 안 될 짓이었다. 어떤 변명도 용서받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잘못을 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어떤 처분이든 달게 받겠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팬들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하지만 정말 야구팬과 팀 동료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하고 싶다.”

―부모님도 마음 아프실 것 같다.

“부모님의 얼굴을 차마 못 보겠더라. 그래서 요즘 집에 안 들어가고 친구 집에서 지낸다. 아버지는 당신이 운영하는 호프집 내부 장식을 온통 못난 아들 사진으로 장식해 놓았는데…. 사건이 난 뒤엔 가게 문을 열지 않고 있다.”

전주=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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