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존 자본주의’에서 길을 찾다]<2>‘사랑받는 기업’을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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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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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효율로 짜내는 이익… 그 속의 직원들은 행복할까요?

대한민국 인구의 절반인 2450만 명(2011년 11월 기준)의 직장인에게 회사는 가정 다음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상당수 직장인은 오히려 가정보다 회사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낸다. 하지만 한국의 직장인들은 즐겁게 일하지 못하고 있다.

1990년대 말 외환위기와 2000년대 말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는 동안 경쟁과 효율이 기업의 최우선 가치로 자리잡으면서, 직장인에게 일터는 물리지 않으려면 물어야 하는 냉혹한 사각의 링으로 변했다. 평생 일터의 개념이 허물어진 것은 물론이다. 성과지상주의로 내몰린 기업은 사업실적이 부진하면 구조조정의 칼을 먼저 빼들고, 주주의 이익을 위해선 종업원 등 다른 이해관계자들의 사정을 돌아보지 않는다. 이런 조직에선 일을 하면서 긍지와 뿌듯함을 느끼기 어렵다. 동아일보는 기업 경영에도 공존이나 공유와 같은 가치가 덧붙여져야 한다고 제안한다. ‘돈 잘 버는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이 돼야 회사 구성원들이 보람과 기쁨을 느끼면서 직장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업 경영에도 사회적 정당성 필요

한국 사회에선 기업을 바라보는 눈 자체가 곱지 않다. 세계적인 PR회사인 에델만이 2011년 내놓은 신뢰도 지표 조사에서 한국 기업들의 신뢰도는 세계 기업 신뢰도 평균인 58%에 훨씬 못 미치는 46%였다.

특히 대기업에 대해 높은 사회적 책임(CSR)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의 대기업은 고도 성장기에 정부의 보호를 받았고, 지금도 인력과 자본을 거의 독점하고 있다.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경제학)는 “대기업은 한국 사회의 인재들을 대부분 데려다 쓰지만 정작 그런 인재를 키워낸 것은 사회”라며 “이제는 대기업이 되갚아줄 때가 됐다”고 말했다.

국내에서 대기업들이 베이커리 사업을 하거나 대기업슈퍼마켓(SSM)을 내는 것은 소비자들의 효용을 증가시키는 효과가 있었지만 사회적 정당성이 부족해 비판을 받고 있다. 특히 기업의 CSR 경영 패러다임 자체가 변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 가운데 최근 기업의 공유가치 창출(CSV·Creating Shared Value) 활동이 각광을 받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의 경영석학 마이클 포터 교수가 주창한 CSV 경영은 종업원과 협력업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이 이뤄낸 생산성 향상이 기업 전반의 생산성 향상으로 연결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커피 회사인 네스프레소는 과거에는 값싼 원두를 어떻게 조달할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아프리카 지역의 원두 생산자들에 대한 교육과 투자를 한 후 매년 20% 이상 생산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봤다. 동시에 원두 생산자들도 이익을 냈다. 본업에 충실해 이익을 내면서도 CSR 경영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창업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한 일본 도요타자동차의 도요다 아키오 사장은 한 TV 프로그램에서 “아무리 국내 생산 여건이 어려워도 국내 생산 300만 대를 고수하겠다”며 “공익자본주의를 추구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도요타가 많은 이익을 내는 것보다 고객과 종업원, 지역 사회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 중요하다고도 했다. 라준영 가톨릭대 교수(경영학)는 “기업의 CSR는 이익을 추구하는 본업과 별개로 보면 안 된다”며 “기업들이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정규직 문제나 납품단가를 후려치는 동반성장 문제부터 해결하는 것이 진정한 CSR 경영”이라고 말했다.

○ 주식회사의 대안모델도 있다

이윤 추구에 앞서 공동체적 가치를 내세우는 협동조합이나 사회적 기업과 같은 모델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29일 국내에서도 협동조합 기본법이 통과되면서 5인 이상이 모이면 자유롭게 협동조합을 설립·운영할 수 있게 됐다. 협동조합은 이용자인 조합원이 공동으로 소유하고 1인 1표의 원리에 따라 민주적으로 운영되는 게 특징이다. 이 같은 공동체적 가치 덕분에 세계 각국에선 일찌감치 신자유주의의 폐해를 치유할 대안으로 거론돼 왔다.

사회적 기업은 이윤 추구에 앞서 사회 서비스 제공과 취약계층의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국가와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부분을 ‘기업’이라는 모델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다. 바람직한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의 종업원들이 높은 생산성을 보인다는 연구 결과도 적지 않다. ‘위대한 기업을 넘어 사랑받는 기업으로’의 저자인 라젠드라 시소디어 미 벤틀리대 교수에 따르면 종업원과 지역 사회에 대한 정의를 실천하는 기업이 일반 기업보다 기업가치가 9배나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 “직원 모두가 주인” 금융위기때도 감원 ‘제로’ ▼


■ 스페인 재계 10위 ‘몬드라곤’

리조트 같은 회사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시에 있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본사. 산기슭에 지어진 본사에서 협동조합의 리더들은 눈앞의 이익보다 구성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일터 만들기에 주력한다. 몬드라곤 제공
리조트 같은 회사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의 몬드라곤 시에 있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본사. 산기슭에 지어진 본사에서 협동조합의 리더들은 눈앞의 이익보다 구성원들의 행복을 추구하는 ‘인간적인’ 일터 만들기에 주력한다. 몬드라곤 제공
“기업이 호텔이라면 협동조합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스페인 최대의 협동조합 몬드라곤에서 일하다 은퇴한 호세 마리 라라멘디 씨는 요즘 협동조합의 가치를 설파하느라 바쁘다. 복잡하고 불확실해지는 세계에서 윤리적 가치의 회복이 필요할 때 가족과도 같은 분위기에서 일하는 협동조합의 정신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몬드라곤의 주요 조합 중 하나인 스페인 최고의 유통업체 ‘에로스키’의 그룹 대표를 지낸 라라멘디 씨는 지난해 11월 스페인 북부 몬드라곤에서 기자와 만나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협동조합의 가치는 더욱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전국적으로 20% 수준의 실업률을 보이는 스페인이지만 몬드라곤 지역의 실업률은 협동조합의 활성화 덕분에 절반 수준인 10%에 머물고 있다. 협동조합들은 경기가 나빠져도 조합원을 해고하지 않는다. 조합에 일이 없으면 조합원에게 교육을 한 뒤 다른 조합에서 일할 수 있도록 돕는다. 1956년 돈 호세 마리아 신부가 설립한 협동조합으로 출발한 몬드라곤은 금융과 제조업, 유통업 분야의 협동조합 120개가 모여 만들어진 그룹이다. 스페인 재계 10위권 규모로, 그룹 산하에는 대학도 있다.

라라멘디 씨의 말대로 협동조합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빛을 발했다. 몬드라곤 자동차 부품조합들은 세계경기 침체로 경영환경이 악화됐는데도 조합원을 단 한 명도 해고하지 않았다. 그 대신 본사와 지사 종업원 전체가 연봉을 10% 감봉하면서 버텼다. 당시 중국과 브라질, 인도 등 세계 5곳에서 짓고 있던 몬드라곤 자동차 부품공장 완공에 전력을 다한 덕분에 금융위기 이후 자동차 부품조합들이 완성차업체에 부품을 어렵지 않게 댈 수 있었다. 자동차 분야 협동조합을 총괄하는 오스카 고이티아 씨는 “이때를 계기로 자동차업체들 사이에서 몬드라곤에 일을 맡기면 믿을 만하다는 인식이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처럼 협동조합은 어려운 시기에 더욱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 몬드라곤 임직원들의 한결같은 이야기이다.

몬드라곤 협동조합 조합원들은 1년에 한 번 총회에서 투표를 한다. 경영 전반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표출할 수 있기 때문에 회사를 자기 집처럼 여긴다고 한다. 몬드라곤에서 태어나 몬드라곤대를 졸업한 뒤 몬드라곤 제조업 분야 협동조합에서 일하고 있는 호킴 라스피우르 로페스 매니저는 “우리는 몬드라곤 협동조합 시스템에 자부심을 갖고 있지만, 일도 하지 않고 혁신도 하지 않으면서 살아남을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기술력에 있어서도 뒤처지지 않는다. 매년 매출의 8% 정도를 변함없이 연구개발(R&D)에 쓰고 있으며 자동차 사업부는 콘셉트 카까지 만들 정도로 기술력이 뛰어나다. 한 기계 조합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에 공작기계를 납품할 정도로 제조업 분야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협동조합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해외 진출국에서 협동조합 조직을 강화하는 것은 몬드라곤에도 어려운 도전이다. 조합원 전체가 참여하기 때문에 의사결정이 다소 느리다는 점도 일반 기업과는 차이가 나는 부분이다.

몬드라곤=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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