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없는 기부… 예수님이 벌써 오셨나]12년째 몰래… ‘전주의 천사’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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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 추정 男 주민센터 전화… 지폐-저금통 5024만원 남겨

“천사가 오셨나 봐요.”

20일 낮 12시 10분경 전북 전주시 노송동주민센터 사회복지도우미 임영희 씨(32·여)가 전화를 받고는 동료 직원들에게 이렇게 외쳤다. 40대로 추정되는 남성이 전화를 걸어와 “주민센터 인근 우리세탁소 옆 도로에 주차된 승용차 밑에 돈 상자가 있으니 가져가세요”라고 말하자 ‘그분’임을 직감했다.

상자 속에는 노란 돼지저금통과 지폐 다발이 들어 있었다. ‘어려운 이웃 도와주십시오. 힘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고 적힌 쪽지도 들어 있었다. 액수는 5만 원권을 100장씩 고무줄로 묶은 지폐 10다발(5000만 원)과 돼지저금통에 담긴 동전 24만2100원 등 모두 5024만2100원.

주민센터 측은 성금을 전달한 시점과 방식, 전화 목소리 등을 두루 살펴볼 때 해마다 세밑에 노송동주민센터에 나타나는 ‘얼굴 없는 천사’라고 결론지었다. 지난해보다 9일 빨랐다.

얼굴 없는 천사의 선행은 2000년 이후 12년간 한 번도 빠짐없이 이어지고 있다. 그는 2000년부터 성탄절을 전후해 전주지역 달동네인 노송동주민센터에 해마다 적게는 50여만 원에서 많게는 8000여만 원까지 12년 동안 13차례(2002년에는 두 차례)에 걸쳐 모두 2억4744만6120원을 보냈다.

그의 선행이 매년 계속되면서 그가 누구인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갔지만 전화 한 통으로 돈이 놓인 장소만 알려주고 사라져 신원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수년 전부터 언론사가 주민센터 인근에서 며칠씩 잠복하기도 했지만 얼굴 없는 천사를 찾는 데 실패했다. 전주시는 익명을 원하는 기부자의 뜻을 살려 신원을 추적하지 않기로 했다. 얼굴은 숨겼지만 그의 따뜻한 마음은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

전주=김광오 기자 ko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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