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있게한 그 사람]박재갑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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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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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바위처럼 든든했던 여덟 살 위 큰형님…‘인술의 길’로 이끌어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먹고사는 게 걱정이던 시절이 있었다. 10대를 보낸 1960년대만 해도 너나없이 그렇게 어려웠다. 아버지는 항상 “배곯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5형제 중 맏이였던 재길 형이 의대에 진학했다. 사람 고치는 기술이 최고라는 아버지 바람대로였다.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은 큰형은 큰 바위처럼 든든했다. 아버지는 무뚝뚝하고 무서워 곁에는 가지도 못했고 어머니는 인자하기만 하셨기에 그 사이에서 내가 믿고 따를 언덕은 큰형이었다.

나도 따라 의대에 지원했다. 형은 내게 “의사는 우수한 사람보다 꾸준히 노력하는 사람에게 적합한 직업이다. 그러니 너에게 잘 맞을 거다”라고 했다. 하지만 대학 입시에서 1지망이었던 의대에 불합격했다. 비록 2지망이지만 서울대에 합격했으니 다니려 했다. 그런 나를 큰형이 말렸다. “인생 공부를 한다고 생각해라. 내가 주위에서 보니 경기고 출신은 스스로 잘난 척하는 사람들이 많더라. 재수하면서 너도 그런 자만을 버려라.” 내겐 하늘 같던 형의 말이었다. 미련 없이 재수를 택했다. 그리고 이듬해 목표였던 서울대 의대에 진학했다.

의대생이 됐지만 특출한 학생은 아니었다. 당시엔 고향에 내려가 개업을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서울대병원의 규모가 커지며 내게도 교수 자리가 주어졌다. 교수가 된 뒤 지도교수님의 권유에 따라 대장암 분야 공부를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지금처럼 대장암의 발병률이 높지 않았다. 주목받던 질병이 아니다 보니 내게 연구 기회가 돌아온 셈이었다.

그때부터 세포주 개발을 시작했다. 사람 조직으로부터 수립한 세포주는 살아있는 세포의 대사 작용을 연구할 수 있고 여러 실험을 해 볼 수 있어 암 연구를 위해 필수적이다. 하지만 당시 한국인 세포주는 전무했다. 노력 끝에 1984년 처음으로 한국인 위암환자의 세포주를 개발했다. 이어 대장암 세포주를 포함해 수백 종의 세포주를 개발했다. 지금은 세계에서 4번째로 큰 규모로 자리 잡은 한국세포주은행이 그렇게 시작됐다.

한창 대장암 전문교수로 활동하고 있을 때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에 지명됐다. 내가 갈 자리가 아니었다. 암 분야에서 우리에게 신 같은 존재인 김노경 교수님을 모시려 선후배들이 나섰다. 하지만 김 교수님은 오히려 8년이나 어린 후배인 나를 지목했다. “박재갑이한테 맡기면 잘할 거다.” 이 한 말씀만 하셨다고 전해 들었다.

그렇게 해서 1995년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이 됐다. 그 자리에서 ‘암 정복 10개년 계획’을 입안했다. 10개년 계획을 토대로 정부는 국가 암검진사업을 추진했고, 지역암센터도 세웠다. 암관리법이 제정되는 데도 힘을 보탰다. 국립암센터 설립도 주도했다. 새로 문을 연 국립암센터에 김 교수님을 모시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역시 맡지 않으셨다. 그래서 맡게 된 국립암센터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담배의 폐해를 수없이 눈으로 확인했다. 금연운동을 하게 된 계기였다.

돌이켜 보면 지금의 나를 만든 건 수많은 인연이었다. 어린 시절엔 큰형이 나를 이끌었다. “네가 잘난 사람이 아니다”라는 형의 말은 내 인생을 바꾼 한마디였다. 덕분에 다른 사람의 생각과 의견에 귀를 기울이는 습관이 자연스럽게 몸에 뱄다. 의대에 진학해 암을 연구하고 있는 내 삶의 궤적은 모두 주변의 조언을 살핀 결과였다. 그렇게 의지했던 형이 미국에서 의사로 생활하다 다른 병도 아닌 대장암으로 눈을 감은 건 마음속 회한으로 남아 있다.

두 번째 인연은 김노경 교수님이다. 서울대 암연구소 소장과 국립암센터 원장 모두 김 교수님이 내게 넘긴 자리였다. 김 교수님 덕분에 암정복 사업을 시작하고 지금 금연운동까지 펼치고 있다. 그 믿음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일이다.

세 번째는 현재진행형인 나의 후배들과의 인연이다. 한국세포주은행에서 세포주 연구를 이어가고 있는 후배들, 대장항문학 분야를 이끌고 있는 후배들, 서울대 암연구소와 국립암센터를 세계적인 기관으로 만든 후배들 모두 단단한 인연의 끈으로 이어져 있다. 앞으로는 이들이 주역이 돼 암 연구를 이끌어 줄 것이다.

박재갑 서울대 의대 외과학교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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