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정성희]‘네이티브 스피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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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2월 8일 2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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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의 영어 수업이 궁금했던 학부모 김모 씨. 교무실에 전화를 해서 원어민(네이티브 스피커·native speaker) 영어강사를 바꿔달라고 했다. 그때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교감의 목소리. “그 외국 놈 어디 갔노? 말이 통해야 전화 왔다는 얘기를 할 거 아이가?” 이 학부모는 원어민 강사가 학교 안에서 방치되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원어민 강사가 수업을 시작하기 전에 한국 학교 적응에 필요한 별도의 연수를 받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원어민 강사를 한 명 두는 데 월급 숙소 생활용품 지원 등 예산 4200만 원이 들어간다. 시민 세금을 썼으면 비용 대비 효과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학생들은 원어민 강사의 수업을 대체로 좋아한다. 서울시교육청이 서울대 이병민 교수에게 영어 공교육정책에 대한 성과 분석을 의뢰한 결과 원어민 강사에 대한 학생들의 수업 흥미도와 만족도가 대체로 높았다. 특히 초등학생들이 좋아했다. 그러나 원어민 수업을 들은 학생들이 ‘외국인과의 대화에 자신감이 생겼다’고 응답하는 비율은 낮았다. 주 1회 원어민 수업으로 회화실력을 높이기는 어려울 것이다. 특히 고등학생들은 원어민보다는 당장 성적을 올리는 데 도움이 되는 한국인 교사를 원했다.

▷서울시교육청이 고등학교 원어민 강사 225명의 인건비 40여억 원을 삭감한 내년도 예산안을 서울시의회에 제출했다. 이 예산안이 통과되면 영어중점학교로 지정된 일반고와 국제고 등 30개교를 뺀 나머지 고교들은 원어민 강사를 두지 못한다. 영어학원을 다닐 능력이 없는 저소득층 학생이 손해를 보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영어실력 향상을 위한 수준별 이동수업, 한국 영어교사 역량 강화, 자기주도적 학습 강화 같은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다.

▷서울 경기 등 대도시권에서는 학원을 통해 영어를 접한 아이들이 많아 원어민 강사의 필요성이 덜하지만 농어촌 지역에선 원어민이 학생들의 영어 접근성을 높이는 데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다. 문제는 강사 수급이다. 원어민 강사들이 대학을 갓 졸업한 청년들이라 농촌 근무를 기피해서다. 일률적인 원어민 강사 정책보다는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정책이 필요할 것 같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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