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아찌아족 한글 보급 사실상 무산 위기 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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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9일 14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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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 세계화'는 뒷전이고 정치·경제적 계산 횡행

2009년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주 부퉁 섬 바우바우 시에 위치한 까르야바루 초등학교 교실에서 기자가 ‘동아’라는 글자를 보여주자 아이들이 한글 공책에 따라 적은 뒤 소리내어 읽고 있다. 바우바우=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2009년 인도네시아의 술라웨시 주 부퉁 섬 바우바우 시에 위치한 까르야바루 초등학교 교실에서 기자가 ‘동아’라는 글자를 보여주자 아이들이 한글 공책에 따라 적은 뒤 소리내어 읽고 있다. 바우바우=신민기 기자 minki@donga.com
찌아찌아족의 한글 문자 도입이 사실상 무산될 위기에 놓였다고 CBS 노컷뉴스가 9일 보도했다. 찌아찌아족이 살고 있는 인도네시아의 바우바우시가 한글을 최초로 보급한 훈민정음학회와의 관계 단절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이미 지난 3월 바우바우시 시장은 서울시에 보낸 공문을 통해 "훈민정음학회는 더 이상 협력 파트너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며 "지난 1년 동안 협력관계가 거의 단절됐기 때문"이라고 선언한 것이다.

바우바우시는 지난 2008년 7월 한글 사용 및 한글교사 양성에 관한 양해각서(MOU)를 훈민정음학회와 체결했다. 그러나 양쪽의 의견이 충돌한 이유는 목표하는 바가 달랐기 때문이라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서울시 관계자는 "훈민정음학회가 장밋빛 그림만 제시했다"며, "한국 문화관을 짓는 등 경제적 원조를 약속했는데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글을 빌미로 '한국의 경제적 지원'에 관심 있던 바우바우시와 경제적 지원을 하지 못한 민간법인 훈민정음학회의 입장 차가 부딪힌 것이다.

바우바우시는 훈민정음학회 대신 서울시의 지원을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서울시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가 정작 한글 문자 보급을 거부하는 기색이 있어 양국의 외교 갈등으로 번질 우려가 있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다.

서울시 관계자는 "우리가 교육기관은 아니다"면서 "우리 업무 영역이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한글 문자 보급은 공식적으로 로마자를 쓰는 인도네시아의 일부 어학기관에서 문자 침탈로 보기도 하는 등 외교적 문제로 비화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미 서울시는 찌아찌아족에 대한 문화센터 지원 등을 약속한 바가 있다. 이에 기대를 걸고 찌아찌아족이 서울시에 매달리고 있는 것. 결국 훈민정음학회는 서울시가 끼어드는 바람에 원 취지가 흐려졌다는 입장이다.

찌아찌아족을 훈민정음학회에 처음 소개한 전태현 한국외국어대 교수가 지난 9월 발표한 '찌아찌아족 한글 도입의 배경과 그 의의'에 대한 논문도 정치적, 경제적 해석을 뒷받침한다.

그는 "현지 학자들 가운데는 찌아찌아족 어린이들의 한글 사용을 인도네시아 지방자체단체 시행의 결실로 보는 시각도 있다"면서 "사실 한글 도입 이후, 바우바우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가 됐고, 역사상 초유의 국제교류 관계를 맺고 있다"고 설명했다.

결국, 한글을 가르칠 교사 양성이 중단된 현재는 바우바우시에 있는 초등학교 단 3곳에서 193명의 아이들에게만 한글 교과서 수업이 이뤄지고 있는 '초라한' 성적을 내고 있다.

경제적 효과도 누리려는 '바우바우시'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한 '훈민정음학회', 구체적인 검증 없이 예산과 외교 문제로 등 돌려버린 '서울시'의 입장이 엇갈린 채 의욕만 앞선 한글의 세계화 추진이었던 셈이다.

디지털뉴스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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