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arrative Report]“겨울연가 속 따뜻한 나라 살아보니 너무 추워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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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학 꿈 이룬 몽골 女대학원생 바양자르 갈양(가명)씨…
고단한 서울생활 1년간,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다

불현듯 9년 전 일이 머리를 스친다. ‘유진 씨는 결혼하면 어떤 집에 살고 싶어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얼마나 멋질까. 유진 씨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나오는 여자 주인공 정유진.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서로의 마음이 가장 좋은 집이잖아요.’ 아! 이 대사, 정말 사무치게 마음에 와 닿는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그에게 드라마처럼 다가왔다. 2002년 여름, ‘겨울연가’를 수십 번도 넘게 봤다. 주인공들의 애절한 사랑과 가슴 절절한 대사에 감정을 쏟다 보면 눈물이 절로 나왔다.

한국 드라마가 몽골에 들어오기 전에는 주로 중국이나 러시아 드라마가 몽골 안방을 차지했다. 중국 드라마는 말을 타고 싸우는 장면이 많았고, 러시아 드라마의 소재는 대부분 전쟁과 혁명이었다.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하지만 겨울연가 등 한국 드라마는 달랐다. 젊은이들의 사랑이 아름다운 풍광 속에 잔잔하게 펼쳐졌다. 드라마를 보노라면 ‘한국이라는 나라도 꼭 저렇겠지’ 하는 상상이 17세 소녀의 마음속에 새록새록 피어났다.

한국에 대한 동경은 그를 한국어 전공으로 이끌었다. 몽골인민대에서 4년간 열심히 한국어를 배웠다. 몽골에 진출한 한국 회사에서 아르바이트도 했다. 어눌하던 한국말이 눈에 띄게 늘었다. 2010년 2월, 그는 25세의 숙녀가 돼 마침내 한국 땅을 밟았다. 오랫동안 꿈속에서만 그리던 바로 그 나라에 도착한 것이다. 모 한국대학의 석사과정에도 등록했다.

정겹고 애틋하던 마음은 대학원에서 공부한 지 얼마 안 돼 산산이 부서졌다. 한국인 동료들에게 함께 공부하자고 말을 꺼낸 것이 화근이었다. 한국인 대학원생들은 자신을 동류(同類)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부 모임에 잘 끼워주지 않으니 외톨이가 되기 일쑤였다. “몽골말을 배워서 어디다 쓰니?” 한국인 대학원생이 무심코 던진 말은 비수가 되어 깊은 상처를 만들었다. ‘이런 게 아니었는데…. 난 정말 한국이 좋은데….’

대학원 생활 내내 한국인 학생들이 별생각 없이 불쑥불쑥 건넨 말은 아물어가던 상처를 자꾸 덧내기만 했다. ‘몽골에서는 집에서 학교까지 말 타고 갔니?’ ‘잠은 게르(몽골 전통가옥)에서만 잤어?’ 이런 말까지는 참을 수 있다고 해도 ‘디지털카메라를 본 적이 있느냐’고 물어왔을 때는 분한 마음을 누를 길이 없었다. 부모님이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산부인과 의사와 엔지니어로 일해 경제적으로 큰 어려움 없이 살았기 때문에 이런 취급을 받을 것이라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에서 ‘나’라는 존재는 함께 공부하는 동기가 아니라 이름조차 생소한 아프리카 난민이나 다름없었다.

올 여름 그는 한국에 온 지 1년 넘게 잊고 지내던 이름, 바양자르 갈양(가명)을 되찾았다. 어느 날 지인이 한 은행에서 몽골어 통역 자원봉사자를 구하고 있다고 알려준 것이 계기가 됐다. 대학원을 졸업한 뒤 한국 회사에서 일하고 싶었기 때문에 미리 경험하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해 선뜻 나섰다.

우리은행이 지난해 8월 광희동지점에 만든 ‘몽골 근로자를 위한 작은 쉼터’. 몽골인이라면 누구든지 이곳에 비치된 몽골어 서적, 음악 CD, 영화 DVD를 빌릴 수 있다. 우리은행 제공
우리은행이 지난해 8월 광희동지점에 만든 ‘몽골 근로자를 위한 작은 쉼터’. 몽골인이라면 누구든지 이곳에 비치된 몽골어 서적, 음악 CD, 영화 DVD를 빌릴 수 있다. 우리은행 제공
물어물어 찾아간 서울 중구 광희동의 우리은행 광희점 주변은 중앙아시아를 뚝 떼어다 옮겨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광희동 골목골목은 저마다 몽골거리, 러시아거리, 우즈베키스탄거리로 불렸다. 1990년대 초 한국과 러시아가 수교한 뒤 러시아인들이 이곳에 자리 잡기 시작했고, 이후 몽골인 카자흐스탄인 우즈베키스탄인 등이 차례로 모여들어 자연스럽게 중앙아시아촌이 꾸려졌다. 지금은 재활용품 무역업에 종사하는 몽골인들이 광희동에 거주하는 외국인 중 가장 많다.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해 일요일에도 문을 여는 우리은행 광희점에서 바트뭉흐 씨는 누구보다 활기차게 일한다. 스트레이트파마를 한 찰랑거리는 머리와 아이라인을 곱게 그린 가는 눈매, 청바지를 입고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그의 모습은 영락없는 한국 20대 여성이다.

2일에도 오전 10시 은행 문을 열자마자 몽골인 근로자들이 물밀듯 몰려들었다. 이들은 대부분 주중에 밤늦게까지 일하고, 토요일에도 근무하는 날이 많기 때문에 평일에는 거의 은행 일을 보지 못한다. 더구나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인들은 대부분 한국말을 잘하지 못한다. 숫자나 존댓말 표현을 특히 어려워한다. 외모는 한국인과 비슷하지만 입을 여는 순간 언어 장애인이 된다. 몽골인들은 오랫동안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 살았기 때문에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나 절차를 잘 알지도 못한다. 몽골어와 한국어에 능통한 바트뭉흐 씨의 존재가 보석처럼 빛나는 이유다.

우리은행 직원 옆에서 몽골인 고객의 사연을 전달하는 바양자르 갈양(가명)씨의 눈에는 동포들의 애처로움이 그대로 드러나 보인다. 충남에 있는 한 인쇄공장에서 일하는 바트빌디 닥와 씨(31)는 3년 전 한국으로 건너왔다. 5월까지는 아내와 함께 지냈지만 임신한 사실을 알게 되자 가족이 있는 몽골로 돌려보내고 지금은 홀몸 신세다. 닥와 씨는 월급의 대부분인 150만 원을 한 달도 거르지 않고 몽골로 보내고 있다. “12월에 출산할 아기가 아들이라는데 내년까지는 몽골에 돌아갈 수 없어요. 아기가 태어날 때 아내 옆에 있어 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죠.” 닥와 씨가 붉게 충혈된 눈으로 자신의 처지를 전할 때 바트뭉흐 씨의 눈시울도 함께 뜨거워진다.

2년 전 몽골에서 온 가나 푸르비 씨(30)는 경기 용인시의 한 박스공장에서 일한다. 푸르비 씨는 월급 170만 원에서 100만 원을 떼어 울란바토르에 사는 아내와 여덟 살 난 아들에게 부친다. 푸르비 씨는 버스와 전철을 몇 번씩 갈아타고 광희점에 오지만 힘들다거나 불편하다는 표정을 짓지 않는다. 광희점이 일요일에도 문을 연다는 사실을 몰랐을 때는 몽골에 들르는 지인 편에 돈을 부쳤기 때문이다.

몽골인 근로자 중에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광희점을 찾는 이들이 적지 않다. 닥와 씨도 태어날 아기 소식이 궁금하고 아내 얼굴이 떠오르면 광희점을 찾는다고 했다. 몽골어 통역은 물론이고 2층 휴게실에서는 컴퓨터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몽골 책과 음반, DVD도 빌릴 수 있어 고향에 온 듯한 기분마저 든다고 한다.

바양자르 갈양(가명)씨는 광희점에 있노라면 9년 전 보았던 드라마 겨울연가 속의 한국이 꿈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대학원에 다니며 겪었던 모욕적인 기억도 이곳에만 오면 말끔하게 사라지는 듯하다. 하지만 아직도 몽골과 몽골인을 무시하는 한국인들을 만나면 공부 그만두고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하다. 5월 인천국제공항 출입국관리소에서 겪었던 일도 그중 하나다.

몽골에서 부모와 알고 지내던 이웃이 사업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입국에 필요한 서류를 제대로 갖추지 못해 공항에서 발이 묶였다.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몰랐던 그 이웃은 다급한 마음에 바양자르 갈양(가명)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둘러 달려간 그에게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다짜고짜 황당한 말을 퍼부었다.

“너 어떻게 불법 체류자를 알아? 진짜 학생 맞아? 이런 사람들 입국 도와주고 돈 버는 거 아냐?” 출입국관리소 사무실에 들어가자마자 다짜고짜 쏟아지는 직원의 폭언에 눈물부터 나왔다. 눈물을 본 직원은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윽박질렀다. “바른 대로 말해. 울긴 왜 울어? 누가 너 때렸어? 그런 일로 질질 짤 거면 몽골로 돌아가!” 출입국관리소 직원은 그를 불법 체류자와 미리 짜고 한국 입국을 도와주는 브로커로 취급했다. 몽골에서부터 알고 지내는 이웃이고, 나는 학생일 뿐 이런 일로 돈을 버는 사람이 아니라고 사정해도 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혐의는 풀렸지만 이웃은 몽골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겨울연가를 보면서 동경하던 따뜻한 나라, 한국의 이미지도 그 순간 송두리째 날아가 버렸다.

그는 지금도 드라마에 나오는 한국인과 실제로 만나는 한국인의 태도가 너무 달라 고개를 저을 때가 많다. 드라마에서는 모두 친절하고 항상 존댓말만 하던데, 현실 세계에선 ‘이게 웬일인가 싶은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래서 바트뭉흐 씨는 마음 한구석에 이런 질문을 담고 다니며 속 시원하게 답을 줄 한국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한국인들은 항상 한국이 몽골보다 선진국이라고 강조하더군요. 석 달간 광희점에 온 몽골인 중에서는 자기 앞에 수십 명의 손님이 기다리고 있어도 ‘빨리 처리해 달라’고 소리치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어요. 그런데 얼마 전 제가 찾은 한 은행 지점에서는 40대의 한국인 아주머니가 짜증을 내면서 ‘바빠 죽겠는데 왜 이렇게 줄이 긴 거야. 빨리빨리 일처리 좀 할 수 없어요?’ 하고 소리치더군요. 그런 게 선진국인가요?”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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