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껑도 못연 주민투표]오세훈,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8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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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으론 졌지만… 청와대-黨 반대에도 벼랑끝 승부… 예견된 패배
정치인으론 승리… 보수 아이콘으로 우뚝… 차차기 입지 탄탄해져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패배한 오세훈 서울시장이 2000년 정치에 입문한 이후 11년 만에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서울시의회의 무상급식안 통과 이후 시장직까지 걸고 승부수를 던졌지만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당분간 정치무대 뒤로 사라지게 됐다.

그는 이번 투표에서 승부사로서의 모습을 마음껏 보여줬다. 올해 초에는 참모들의 반대에도 주민투표를 강행했고, 과감하게 대선 불출마도 선언했다. 21일에는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필사적인 반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투표 결과에 시장직까지 걸었다. 평일에 33.3%의 투표율을 기록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의견은 애당초 그의 고려 대상이 되지 못했다.

“밥 먹는 문제까지 잘살고 못살고를 구분해선 안 된다”는 야당의 주장에도 “밥 한 끼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복지틀을 결정하는 문제”라고 맞받아치며 싸웠다. 그 사이 그가 속한 한나라당은 끊임없이 좌(左)클릭하며 그를 외로운 처지로 내몰았다. 결국 오 시장은 실패가 예상되는 상황에서도 ‘보수의 가치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자신을 내던졌다.

그는 이제 시장직을 잃고 대선까지 출마하지 못하게 돼 자칫 ‘정치 낭인’이 될 처지가 됐다. ‘셀프 탄핵’이란 말도 나왔다. 투표 패배로 타격을 입게 된 한나라당도 그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크지 않았던 당내 정치적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는 상황이다. 대권을 꿈꾸는 그로서는 치명상을 입은 것이나 다름없게 된 것이다.

그러나 차차기 대선이 열리는 2017년을 기준으로 보면 ‘정치인 오세훈은 잃은 것보다 얻은 게 많다’는 것이 정치권의 해석이다. 그는 지난해 재선(再選) 이후 줄곧 야당이 장악한 시의회와 자치구에 둘러싸여 ‘반식물 시장’으로 지내왔다. 그가 초선 시절 짜 놓은 시정의 틀은 견제에 밀려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내년 대선 출마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대선후보로 추대될 정도의 당내 기반이 없는 데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세론은 더 강해져 시장직을 내놓고 경선에 뛰어드는 것이 가능했겠냐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돌파구를 찾았다. 올해 초부터 그가 주도한 주민투표는 국가적 이슈였다. 투표가 진행되는 기간 내내 언론의 관심은 그에게 집중됐다. 여야의 어떤 대선후보도 오 시장만큼 주목을 받지 못했다.

물론 그가 내년 총선과 대선으로부터 자유로운 위치에 있었다는 것도 결단을 쉽게 했던 배경으로 꼽힌다. 선거를 앞둔 여당에서는 박 전 대표를 포함해 누구도 야당의 무상복지 시리즈를 견제하지 못했고 그 결과 새로운 보수정당의 수요까지 생겨났다. 그가 이런 틈을 파고들면서 ‘보수의 대안’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효과를 거둔 셈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오 시장과 박 전 대표의 엇갈린 행보를 빗대 “오 시장은 남는 장사였고, 박 전 대표는 손해 본 장사였다”고 말했다. 결국 보수 진영은 그를 ‘실패한 서울시장’이 아니라 ‘보수의 새 희망’으로 기억할 가능성이 크다.

장기적으로 그에게는 정치권으로 복귀할 수 있는 여러 무대가 있다. 빠른 감은 있지만 당장 내년 총선이 복귀 무대가 될 수 있다. 한나라당이 위기에 몰리면 그를 정치 상품화할 유혹을 느낄 수 있다. 총선 이후 재·보선에서도 그를 향한 러브콜이 이어질 수 있다. 차차기 대권을 바라보고 있는 그에게 입각 제의가 갈 수도 있다. ‘서울시장 오세훈’은 패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정치적 승리’를 거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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