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핫 피플]EPL 첼시의 세계적 미드필더 존 오비 미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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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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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축구의 힘… 사랑하는 아버지 풀어주세요”

그에게 물었다. 가족과 떨어져 있는데 외롭지 않은지. 돌아온 대답이 ‘철없는’ 질문을 한 기자를 머쓱하게 만들었다.

“거리는 상관없어요. 제가 어디에 있든 그들은 항상 저랑 함께 뛰거든요.”

○ 납치범들 몸값 1억4000만원 요구

존 오비 미켈(24·나이지리아·사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 첼시에서 활약하는 세계적 미드필더다. 기자는 지난해 1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그를 만났다. 월드컵에서 한국과 같은 조에 속한 나이지리아 대표팀의 평가전을 잠입 취재하는 과정에서였다.

미켈은 당시 나이지리아 대표팀 전력의 절반이란 평가를 받았다. 그의 첫인상은 천진난만한 아이를 떠올리게 했다. 눈빛은 순수했고 얼굴엔 장난기 가득한 미소가 있었다. 하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자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아프리카에 있는 가족을 생각하면 축구 말고 다른 생각을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조국에 대한 사랑도 가족을 매개체로 더욱 뜨거워진다”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이런 미켈이 지금 가족 때문에 가슴을 졸이고 있다. 그의 아버지가 12일 납치를 당했기 때문이다. 인종, 종교 문제 등으로 갈등이 끊이지 않는 나이지리아는 원래 납치 등 사건, 사고가 빈번한 곳. 미켈의 아버지는 그나마 안전하다고 여겨지던 북부 지역에 살았지만 납치를 당했다. 납치범들은 몸값으로 약 7만8000파운드(약 1억4000만 원)를 요구하고 있다.

미켈은 부친의 납치 소식을 들은 직후 영국 스포츠전문채널 스카이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침통한 표정을 지으며 호소했다. “왜 납치했는지 모르지만 꼭 풀어주길 바랍니다. 아버지는 나이도 많고, 어느 누구에게 해를 끼칠 만한 분도 아닙니다. 아버지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시기만을 간절히 바랍니다.”

○ 브라질에선 납치 보험을 들어라

축구 스타 가족의 납치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거액 연봉을 받는 축구 스타의 가족은 언제나 납치범의 주요 표적이 돼 왔다. 나이지리아에선 2008년에도 납치 사건이 있었다. 대표팀 수비수 출신 조지프 요보(31·터키 페네르바체)의 동생이 괴한들에게 납치된 지 12일 만에 풀려났다.

아프리카와 더불어 납치의 ‘양대 산맥’으로 꼽히는 지역은 중남미. 2007년 온두라스 대표팀의 기둥 윌손 팔라시오스(27·잉글랜드 토트넘)의 동생 에드윈이 무장괴한들에게 납치된 뒤 살해됐다. 2002년 역시 온두라스의 세계적인 공격수 다비드 수아소(32·이탈리아 칼초 카타니아)의 남동생이 괴한들에게 납치당한 뒤 2주 만에 풀려났다. ‘삼바 축구’의 본고장 브라질은 뜨거운 축구 열기만큼이나 납치 사건도 자주 발생해 축구 스타들에겐 악명이 높다.

브라질 축구의 ‘살아있는 전설’ 호마리우(45·은퇴) 아버지의 납치 사건은 특히 유명하다. 호마리우의 부친은 1994년 미국 월드컵 직전 납치됐다. 호마리우는 당시 납치 소식을 접한 뒤 기자회견을 열고 납치범을 향해 폭탄선언을 했다. “아버지를 놓아주지 않으면 월드컵에 출전하지 않겠다.”

그의 발언은 브라질 전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정부는 물론이고 유명 갱단까지 호마리우 아버지 구하기에 나섰다. 납치범들이 신변에 위협을 느꼈을까, 아니면 그들도 브라질의 월드컵 우승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일까. 호마리우의 아버지는 얼마 뒤 건강한 모습으로 발견됐고, 호마리우는 월드컵에 출전해 득점왕까지 차지하며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다.

현 브라질 대표팀의 공격수 호비뉴(27·이탈리아 AC 밀란)의 어머니도 2004년 납치를 당했다. 친척 집에서 납치된 그의 어머니는 40일 만에 아들이 거액의 몸값을 지불하고서야 풀려났다. 호비뉴 어머니의 납치 사건 이후 축구 스타의 가족을 노린 납치는 더욱 빈번해졌다. 이듬해 루이스 파비아누(31·브라질 상파울루)의 어머니가 납치되는 등 브라질 전역에서 납치가 기승을 부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브라질에선 축구 선수들을 대상으로 한 납치 보험까지 생겼다. 더불어 선수들의 유럽 진출이 가속화됐다. 유럽으로 가족들을 데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스페인의 레알 마드리드에 입단한 호비뉴는 이렇게 말했다. “브라질에서 좀 더 뛰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없었다. 납치된 어머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진 1분, 1초가 지옥 같았다.”

○ 안전지대는 없다?


그렇지만 유럽도 안전지대는 아니다. 영국 런던 경찰청은 2005년 당시 최고의 축구 스타였던 데이비드 베컴(36·미국 LA 갤럭시)의 부인이자 인기 그룹 ‘스파이스 걸스’ 출신 스타인 빅토리아 베컴을 납치하려던 용의자 9명을 체포했다. 경찰에 따르면 납치범들은 빅토리아는 물론이고 베컴의 두 아들까지 납치한 뒤 500만 파운드(약 90억 원)를 요구하려 했다. 베컴은 1999년에도 빅토리아와 큰아들을 노린 납치 모의가 사전에 발각돼 가슴을 쓸어내린 적이 있다.

동유럽 조지아에서도 2001년 유명 축구 스타의 가족을 노린 납치 사건이 발생해 이슈가 됐다. 세계적인 수비수 카하 칼라제(33·이탈리아 제노아)의 남동생이 귀가 도중 경찰 복장을 한 괴한들에게 납치된 것. 당시 칼라제는 납치범들이 요구한 금액을 줬지만 동생은 돌아오지 못했다. 그의 동생은 그로부터 5년이 지난 2006년에야 발견됐다. 싸늘한 주검으로 말이다. 동생 소식을 접한 칼라제는 “동생을 너무나 보고 싶었는데 이제야 만났다. 하지만 나는 그와 말 한마디 나눌 수 없다”며 흐느꼈다.

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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