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오늘의 프랑스 미술’전

  • Array
  • 입력 2011년 8월 16일 03시 00분


코멘트

韓, 동양과 서구 사이에서 : 농민의 내면-역사적 실존 등 치열한 고민의 흔적
佛,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 보는 것 넘어 ‘느낌’ 강조하는 특유의 정신 지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전에 선보인 박기원 씨의 설치작품 ‘낙하’(위)와 서용선 씨의 ‘심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전에 선보인 박기원 씨의 설치작품 ‘낙하’(위)와 서용선 씨의 ‘심문’.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중앙홀에 들어서는 순간 눈과 귀는 물론이고 마음까지 시원해진다. 바닥에 놓인 둥그런 수조에 찰랑찰랑 물이 담겨 있다. 그 속에 도자기 그릇들이 물 흐름을 따라 둥둥 떠다니고 부딪칠 때마다 투명한 음악을 만들어낸다.(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의 ‘무제’) 이어 눈을 들어보면 2층 창문을 통해 쏟아지는 빛을 받아 시원한 폭포처럼 보이는 설치작품이 시선을 붙든다. 연하고 진한 청색으로 물들인 비닐이 만드는 색의 선율과 리듬이 마음에 휴식을 준다.(박기원의 ‘낙하’)

한 공간에 자리한 두 작품은 각기 다른 전시에서 소개된 작업이다. 경기 과천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오늘의 프랑스 미술: Marcel Duchamp Prize’전(10월16일까지)과 ‘올해의 작가 23인의 이야기 1995∼2010’전(10월 30일까지). 두 전시는 한국과 프랑스의 미술후원제도를 화두로 삼아 양국의 현대미술 지형도를 비교 감상할 기회를 제공한다. 02-2188-6000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2000년 제정된 마르셀 뒤샹 프라이즈의 수상자와 후보자 가운데 16명의 작품 100여 점을 선보였다. 이 상은 컬렉터들이 자국 미술을 세계 미술무대에 알리기 위해 조직한 ‘프랑스 현대미술 국제화 추진회(Adaif)’가 만든 것. 해마다 후보 4명을 선정하고 수상자를 뽑아 퐁피두센터에서 개인전을 열어준다.

‘올해의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1995년 신설한 제도다. 작품 활동이 두드러지고 창작 의욕이 왕성한 작가를 큐레이터들의 토론과 투표로 선정한 뒤 전시를 개최해 한국의 대표작가로 조명해 왔다. 내년부터 제도 개편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련된 이번 전시는 작가 23명의 대표작 150여 점과 진솔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자리다.

○ 올해의 작가들

미술관 3, 4전시실에는 1995년 처음 선정된 전수천의 작품을 필두로 황인기 권영우 김호석 노상균 전광영 정현 이종구 서용선 정연두 등의 회화 설치 영상 조각이 자리 잡았다. 토우와 영상을 결합한 전수천, 옛 그림을 못과 레고 등 현대적 오브제로 표현한 황인기, 전통 초상화를 재해석한 김호석의 작업에는 동양정신과 현대기법의 접목을 고민한 흔적이 스며 있다. 농민의 내면을 사실주의 기법으로 파헤친 이종구, 표현주의적 역사화로 실존에 대한 관심을 파고든 서용선의 회화도 볼 수 있다.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새로운 미디어의 형식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을 엿보게 한다.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의 작품(위)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셸 블라지의 비누거품 작품.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새로운 미디어의 형식과 함께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양성을 엿보게 한다. 셀레스트 부르시에무주노의 작품(위)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미셸 블라지의 비누거품 작품.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영상작품 중 곽덕준의 ‘자화상 78’에선 재일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찾기 위한 치열한 의식이 엿보인다. 30대 작가 로서 2007년 선정된 정연두의 ‘노스탤지어’는 영상제작의 뒷이야기를 엿보는 재미를 준다. 박수진 학예연구사는 “초기 작가들은 전통과 현대의 이분법을 넘어서는 데 관심을 쏟았다면 후반으로 갈수록 일상적인 것, 자신과 연관된 문제를 파고드는 변화를 드러낸다”고 소개했다.

‘올해의 작가’ 제도는 건축(승효상), 무대미술(윤정섭), 도예(김익영 윤광조), 섬유예술(장연순) 등 다양한 장르를 끌어안고 한때 원로작가전도 병행했다. 열린 제도라고 볼 수도 있으나 작가 발굴과 후원이란 목적에 걸맞은 일관성과 정체성을 확보했는지는 앞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보인다.

○ 뒤샹의 후예들

1, 2전시실을 차지한 ‘오늘의 프랑스 미술’전은 뚜렷한 전시의 맥락을 보여준다. 오브제의 개념을 일깨운 뒤샹의 이름을 딴 상답게 참여작가들의 작품에선 포스트모더니즘의 다원성과 더불어 전통과 모더니즘에 대한 사유, 섬세한 감성이 엿보인다. 박미화 학예연구사는 “미국과 달리 전통에 뿌리를 두면서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느끼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프랑스 미술의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평화로운 바다의 금빛 풍경에 잠수함과 낡은 대포 기지를 절묘하게 연결한 로랑 그라소 영상작품과, 파괴에서 새로운 미학을 길어올린 시프리앵 가야르의 작업은 흥미롭다. 흔한 물건을 뒤섞어 산업과 예술을 접목한 마티외 메르시에, 특별한 도구를 이용해 중력을 넘어선 사진을 연출한 필리프 라메트, 균과 비누거품 등 화학반응을 이용해 시간과 함께 변하는 작품을 선보인 미셸 블라지의 작업엔 철학과 재미가 공존한다.

고미석 기자 mskoh11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