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가 본 이 책]재정 위기 유령이 지구촌을 떠돌고 있다

  • Array
  • 입력 2011년 8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국가부도/발터 비트만 지음·류동수 옮김/256쪽·1만5000원·비전코리아

《미국의 국가부채협상 타결이 기대와는 달리 국제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하락으로 이어지면서 세계적으로 주가가 폭락했다. 향후 세계경제 불안에 대한 우려가 팽배해 있음을 단적으로 나타낸다. 그리스에 이어 이탈리아 재정위기로 확대되고 있는 유럽에 더하여 미국까지 재정위기를 겪으면서 이번에는 전 세계가 ‘글로벌 금융위기’에 이어 ‘글로벌 재정위기’를 맞는 것이 아니냐는 극단적 불안감도 표출되고 있다. 금융위기가 재정위기로 번진 것은 위기로 취약해진 민간부문을 정부가 재정을 통해서 지원하려 했기 때문이고, 무책임한 재정확대의 끝은 국가부도일 것이다.》
현재 국가부도의 위험이 큰 나라는 국가채무 비중이 높은 유럽의 일부 국가다. 이런 와중에 유럽의 원로 경제학자인 스위스 프리부르대의 발터 비트만 교수의 책이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 저자는 국가부도현상을 역사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향후 국가부도 위기의 가능성을 진단한다. 또 국가부도가 화폐개혁으로 이어질 여지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근본적인 개혁방안을 제시하고 투자자를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국가부도는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도 국가가 팽창할수록 전쟁을 위한 전비를 늘리고 그만큼 종말에 가까워지게 됐다. 1980, 90년대에는 남미가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면서 개도국이 국가부도 사태를 맞았고, 2000년대에는 선진국이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하면서 국가부도를 걱정하게 됐다.

국가부도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국가부채의 지급을 일시 중단하는 모라토리엄부터 부채협상을 통해 부채를 탕감받는 방법과 아예 상환을 하지 않는 방법도 있다. 또 국가부채는 지급하더라도 금융기관과 기업의 부채가 부도사태를 맞을 수도 있으며, 이를 넓은 의미로 국가부도라고 부를 수 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선진국의 높은 국가부채뿐만 아니라 이에 필적하는 기업부채와 가계부채를 지적하며 국가부도를 향한 카운트다운은 이미 시작되었다고 한다. 물론 개혁을 통해서 국가부도 사태를 막을 수 있으나 경제가 나쁠 때 개혁은 쉽지 않으므로 결국 국가가 지급불능 사태에 이르러야 근본적인 개혁도 진전될 것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어떤 국가가 부도 사태에 이를까. 그는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유럽연합의 고부채 국가를 후보국으로 지명한다. 유럽연합이 지불능력이 없는 회원국을 위해 개입한다면 그만큼 유럽연합 전체가 위험해질 것이므로 국가부도 사태가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미국에 대해서는 국가부도를 예상하기 힘들지만 중앙은행을 통해 자금 조달을 하는 방식을 계속한다면 언젠가 달러화의 평가절하와 함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또한 선진국 중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부채비율이 가장 높은 일본에 대해서는 국가부도 사태를 배제하지 않으면서 급격한 건전화 조치를 촉구한다.

이 책은 유럽의 원로 경제학자가 쓴 만큼 대부분 유럽의 복지재정 문제와 유럽연합의 문제에 중점을 두고 있다. 또 현실적으로 사태를 진단하고 있으나 논의가 구체적이지 못해 아쉬움을 더한다.

최근 세계경제의 비관적 시나리오를 다룬 책이 쏟아지고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 하버드대의 케네스 로고프 교수와 메릴랜드대의 카르멘 라인하트 교수가 쓴 ‘이번엔 다르다’(최재형 박영란 옮김·다른세상)를 들 수 있다. 이 책에서 저자들은 2008년 금융위기가 과잉부채 때문에 발생한 것이므로 이전의 위기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위기를 진정시키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 개입은 결국 재정위기로 번질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S&P의 미국 신용등급 하락 조치로 유럽뿐만 아니라 미국의 국가부도 사태가 염려되는 가운데 칼럼니스트 담비사 모요가 서구의 몰락에 대해 쓴 책이 ‘미국이 파산하는 날’(김종수 옮김·중앙북스)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에서도 부채 버블과 복지국가병이 서구를 몰락으로 유도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중국과 신흥국으로의 권력 대이동 과정에서 미국의 선택을 시나리오별로 논의하고 있어서 매우 흥미롭다.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바로 미국의 채무불이행 사태인데, 이 책에서 미국의 국가부도는 북한이 자주 사용하는 ‘벼랑끝 전술’이다.

2008년 9월 월가에서 시작된 금융위기가 글로벌 금융위기로 확대된 지금, 경제구조가 취약하고 부채가 많은 일부 국가의 부도 사태는 점차 현실화되고 있다. 국가부도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책을 놓고 유럽과 미국은 논전을 벌이고 있다. 위기의 원인에는 공감하면서도 대처방안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형국이다. 비트만 교수가 지적한 대로 바로 이런 이유로 국가부도의 카운트다운이 시작된 것인지 지켜보면서 매우 보수적이고 방어적인 투자 전략을 수립할 때이다.

박원암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