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가야 멀리 간다/대기업-中企 동반성장]<1>한국형 모델 찾기-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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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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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車가 인정한 삼송 벨트, 이젠 GM과 수출상담

《 전자화학소재를 만드는 중소기업 리켐은 설립 초기인 2008년 17억 원의 적자를 냈다. 외국에서 소재를 들여와 국내 기업에 납품하다가 아예 소재 제조에 나선 게 2006년이었으니 경험과 기술, 장비 모두 부족했다. 제조는 생각만큼 쉽지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08년에 금융위기까지 터졌다.
적자가 나자 다른 기업에서 제의를 받고 나가려는 연구원도 생겼다. 이남석 리켐 대표는 “딱 2년만 참아 달라”며 나가려는 직원을 붙잡았고 3년 후인 2010년 리켐을 매출 420억 원의 회사로 키워냈다. 비결을 묻자 이 대표는 “LG화학과의 상생관계 덕분이었다”고 답했다.
한국의 대·중소기업 관계에도 희망은 있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얘기할 때 ‘납품단가 후려치기’나 ‘기술 빼가기’와 같은 부정적인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게 현실이지만 상생을 위한 노력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
충남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에 있는 LG화학의 협력업체 ‘리켐’의 금산공장에서 5일 작업 중인 직원들과 함께한 이남석 사장(가운데). 금산=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충남 금산군 추부면 추정리에 있는 LG화학의 협력업체 ‘리켐’의 금산공장에서 5일 작업 중인 직원들과 함께한 이남석 사장(가운데). 금산=장선희 기자 sun10@donga.com
동아일보와 중소기업중앙회가 국내 주요 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 현황을 취재한 결과 ‘한국형 동반성장’은 신뢰 관계 구축을 통해 공동기술 개발과 함께 해외에 진출하는 특성을 보였다. 이들 기업은 동반성장을 위해 상생의 걸림돌을 없애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 기술개발 도와주며 ‘윈윈’

동반성장은 상호작용이다. LG화학은 2차전지 핵심 원재료의 안정적 수급과 품질 유지를 위해 국산화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리튬 2차전지 전해액을 만드는 리켐과 손을 잡았다. 2006년부터 공동 개발 프로젝트가 진행됐다. 리켐이 전해액을 만들면 LG화학은 이를 시험했다. 고가의 테스트 장비를 갖추기 어려웠던 리켐은 자기 제품이 배터리에 잘 적용이 되는지, 성능은 잘 나오는지 알 길이 없었다. 리켐은 LG화학의 테스트 결과를 바탕으로 수정을 거듭했고, 2009년 12월 본격적으로 생산에 들어갔다. 현재는 양사가 20개 품목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있다.

2006년 미국에서 애플의 ‘아이폰 출시’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할 때였다. 반도체 검사장비 업체인 ‘윌테크놀러지’도 스마트폰 개발에 필수적인 모바일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스마트 기기에서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에 해당하는 부품)용 검사장비 개발을 시작했다. 주위에선 “뭘 믿고 사업성도 없는데 뛰어드느냐”고 말렸다. 윌테크놀러지가 믿는 건 삼성전자였다. 삼성전자가 당시 스마트폰의 미래 청사진을 제시했고 부족한 자금 26억 원까지 빌려줬다. 사업이 쉽지는 않았다. 2009년 한때 자금 압박으로 창업멤버 6명을 내보내야 했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 삼성전자 스마트폰의 큰 성공에 힘입어 윌테크놀러지는 창사 10년 만에 연 385억 원대의 매출을 기록했다.

○ 해외진출 길도 터줘

동반성장은 믿음이다. 내수시장에서 검증을 받은 중소기업은 대기업의 도움으로 해외진출에 나서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은 대기업을 믿고 따르며 실력을 쌓고, 대기업은 실력이 충분히 쌓인 중소기업을 믿고 추천하는 형식이다.

통신장비업체인 ‘CS’가 해외에 진출하는 데는 SK텔레콤의 도움이 절대적이었다. CS는 가정용 소형 중계기를 SK텔레콤에 납품해 왔는데 2008년 일본 소프트뱅크가 거래처를 찾고 있을 때 SK텔레콤에서 CS의 제품을 적극 추천했다. 국내 중계기 시장이 포화상태였던 때라 해외 진출이 CS에는 중요한 도약의 계기가 됐다.

‘삼송’은 1979년부터 현대자동차에 안전벨트를 납품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현대차는 미국 등지로 수출되는 차의 벨트는 해외 업체 것을 사용했다. 국내 업체 수준이 해외 업체에 못 미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삼송은 현대차가 요구하는 품질 수준에 맞추다 보니 이제는 자연스럽게 폴크스바겐, GM, 아우디 등 세계적인 자동차업체들과 수출 상담을 하고 있다. 삼송과 오랜 거래 관계를 맺은 현대차는 1년 이상 테스트를 거쳐 ‘에쿠스’ 등에 삼송의 안전벨트를 적용했다. 여기서 나온 데이터가 해외 자동차업체에 안전성을 입증하는 자료로 사용되고 있다. 김지태 삼송 상무는 “현대차는 부품 국산화에 대한 열의를 가지고 협력업체에 대한 기술교육 시스템 등을 갖췄고, 협력업체들이 이를 충실히 따르고 있다”고 말했다.
▼ KT의 ‘코치’ 받은 리보텍, 품질점수 6배 뛰었다 ▼


○ 대기업 온기가 1차 협력사서 2, 3차로

삼성전자에 반도체 검사장비를 납품하는 ‘윌테크놀러지’ 김용균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직원들. 삼성전자가 기술개발 자금지원을 해줘 서로 ‘윈윈’ 관계가 됐다. 수원=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삼성전자에 반도체 검사장비를 납품하는 ‘윌테크놀러지’ 김용균 대표(오른쪽에서 두 번째)와 직원들. 삼성전자가 기술개발 자금지원을 해줘 서로 ‘윈윈’ 관계가 됐다. 수원=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동반성장은 베풂이다. 대기업이 현금 결제, 기술 공동 개발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해도 그 온기가 1차 협력업체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 시리즈에 등장하는 기업들 중 상당수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인센티브를 1차에서 그치지 않고 2, 3차 협력업체로 확대하려는 확고한 의지를 갖고 실천했다.

KT는 벤더 코칭(Vendor Coaching) 제도를 통해 1차 협력사에 대한 동반성장 정책이 2차 협력사로 이어지도록 제도화했다. KT가 1차 협력사에 업무 프로세스 등의 노하우를 알려주면, 1차 협력사가 2차 협력사와 그 노하우를 공유하는 것. KT로부터 품질 관리 노하우를 전수받았던 ‘MTI’는 지난해 12월부터 올해 6월까지 KT의 2차 협력사인 ‘리보텍’에 벤더 코칭을 실시했다. 정리되지 않은 작업장에서 생산하다 보니 불량률이 적지 않았던 리보텍은 벤더 코칭 실시 전 품질관리 점수가 15점(100점 만점)이었지만 올해 6월 90점으로 껑충 뛰었다. 김창희 리보텍 이사는 “전에는 자재 관리가 제대로 안 돼 부품이 있는 줄 모르고 또 사는 경우가 있었다”며 “우리는 비용절약 등의 효과를 거뒀고, KT로서도 공급받는 부품의 질이 좋아지니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 납품단가 현실화

동반성장은 오너의 의지다. 중소기업의 납품 단가 현실화 문제는 풀기 어려운 숙제다. 하지만 대기업이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어렵지 않게 문제가 풀리기도 한다. 한화의 협력업체인 제일정밀은 김승연 한화 회장의 관심으로 납품 단가 등 풀기 어려운 자금 문제를 해결했다. 지난해 8월 김 회장은 인천 남동공단의 제일정밀을 찾아 환차손으로 손해를 본 제일정밀을 지원하라고 지시했다. 한화는 환차손으로 인한 손해를 지원하기 위해 6억 원을 무이자로 빌려주면서 거래관계를 면밀히 분석한 뒤 구매파트에서 구리가격 상승을 반영해 납품단가를 15% 올려줬다. 오너의 의지가 동반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일화다.

주현 산업연구원 중소·벤처기업연구실장은 “대기업들이 낮은 원가로만 경쟁해 세계시장에서 정상에 오를 수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중소기업을 원가절감의 대상으로 여기던 데서 발전해 중소기업의 혁신과 기술개발 역량 등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며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장기적인 미래에 대한 전망을 갖고 동반자로서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 특별취재팀 ::

▽팀장
김상수 차장 ssoo@donga.com  

▽팀원
김선우 정효진 유덕영 김상훈
김현수 김상운 한상준 장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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