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릭 슈밋 Google CEO, 국내 언론과 첫 화상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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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3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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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의 대명사 한국, 인터넷 본인확인제는 모순”

《 그에게는 화려한 성공신화가 없다. 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취직해 최고경영자(CEO)가 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를 흔한 경영학석사(MBA) 출신의 전문경영인 비슷하게 여겼다. 스포트라이트는 미국 스탠퍼드대 기숙사에서 세계 최대의 인터넷기업을 만들어낸 젊은 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에게 쏠리곤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
“다른 곳에서라면 5년이 걸렸을 일을 한국에서는 1년 반 만에 해냈습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밋은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놀라운 ‘속도’에 감탄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는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진행됐다. 왼쪽이 슈밋.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다른 곳에서라면 5년이 걸렸을 일을 한국에서는 1년 반 만에 해냈습니다.” 구글의 최고경영자(CEO) 에릭 슈밋은 15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놀라운 ‘속도’에 감탄했다고 했다. 이번 인터뷰는 미국 캘리포니아 구글 본사와 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진행됐다. 왼쪽이 슈밋. 이종승 기자 urisesang@donga.com
2001년 구글의 CEO가 된 46세의 에릭 슈밋은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회사를 질주하는 20대의 어린 창업자들과 비교해 결코 적지 않은 기여를 하며 오늘의 구글을 만들었다. 구글은 자신의 경영방식을 로마사 수업 시간에나 쓰이던 ‘삼두정치(triumvirate)’로 묘사했다. 지난 10년간 슈밋은 시가총액 기준으로 마이크로소프트(MS)나 애플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기업으로 구글을 키우며 기대를 뛰어넘는 실적을 거뒀다.

그는 단순한 전문경영인도 아니었다. 젊은 시절 슈밋은 열심히 개발한 기술을 세상에 무료로 공개해 ‘모두가 함께 경쟁하며 더 큰 발전을 이뤄야 한다’는 철학자에 가까운 기술자였다. 비즈니스를 이해하고 조직을 이끌 연륜을 갖춘 ‘어른’이 필요했던 구글의 창업자에게 이런 슈밋은 최고의 동반자였다. 젊은 창업자들 또한 열심히 만든 제품을 누구나 무료로 쓰도록 완전히 공개해야 한다는 급진적인 꿈을 꾸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동아일보는 15일 국내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슈밋과 단독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그는 미국 캘리포니아 마운틴뷰의 구글 본사에 앉았고, 기자들은 한국의 구글코리아 사무실에서 질문을 던졌다.

―최근 구글이 부쩍 한국 이야기를 많이 한다. 이유가 무엇인가.

“한국에서 지금까지 500만 대 이상의 안드로이드폰이 팔렸다는 얘기를 듣고 엄청나게 놀랐다. 이는 한국인이 새로운 기술을 받아들이는 속도를 보여주는 지표다. 초고속인터넷과 온라인게임 등 한국은 그동안 수많은 혁신을 성공시켰는데 이는 한국인의 삶과 문화, 치열함 등이 그만큼 강렬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구글은 다른 곳에서라면 5년이 걸려야 했을 성장을 한국에서 지난 1년 반 동안 이뤄냈다.”
▼ “페이스북은 미래의 경쟁자, 현재의 경쟁자는 MS” ▼

―최근 한국에서는 스마트폰 게임을 판매하기 전에 심의를 받게 하거나 인터넷에서 꼭 본인확인을 거치게 하는 등의 규제로 혁신이 어렵다는 얘기도 나온다.

“제도에 대해서는 나보다 한국인이 잘 알 테니 나는 일반적인 얘기를 하고 싶다. 한국의 여러 제도가 창의력을 가로막는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뭔가를 잘못한다면 정부는 잘못이 벌어진 뒤 범죄자를 잡으면 된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스마트폰 프로그램을 미리 심의하거나(게임 사전심의제), 인터넷에 글을 올리는 사람이 누구인지 사전에 확인하는 등(제한적 본인확인제)의 제도를 운영한다. 이건 정부가 ‘우리는 사후에 범죄자를 잡을 능력이 없다’고 선언하는 셈이다. 재미있는 건 한국이 최근 ‘혁신의 대명사’처럼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초고속인터넷과 온라인게임 등의 분야에서 한국이 보여준 혁신 덕분에 생긴 이미지다. 그런데 이런 혁신을 이끄는 나라의 법이 한국인의 세계적인 성공을 가로막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밖에 있는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최근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의 기업들이 구글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진다고 걱정한다.

“더 구체적으로 말해 달라. 사람들은 구글과의 경쟁을 두려워하는 기업들을 얘기하지만 우리는 늘 소비자만 생각하고 제품을 만들었다. 이런 경쟁은 구글이 없어도 늘 존재한다.”

―삼성전자 같은 제조업체도 구글이 휴대전화와 TV 시장 등을 독식할까 봐 두려워한다.

“삼성전자는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다. 삼성전자가 만들어낸 안드로이드폰은 지금까지의 안드로이드폰 가운데 최고 수준이었다. 또 삼성전자는 우리의 TV 및 AV 사업에서도 협력하기로 동의했다. 꼭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구글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안드로이드 운영체제(OS)나 구글TV용 OS를 모두 공짜로 개방한다. 공짜로 뭘 주는 사람한테 화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 아닌가.”

―구글의 경쟁자는 요즘 페이스북으로 보인다.

“아니다. 우리의 경쟁자는 MS다. 그들은 ‘빙’이란 검색엔진을 만들었고 괜찮은 서비스라 사용자가 많다. 페이스북과는 직접적인 경쟁을 벌이지 않고 있다. 페이스북 사용자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구글을 더 많이 이용한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하지만 미래에는 분명히 페이스북이 우리의 경쟁자가 될 것이다. 그건 사용자가 마음을 쏟는 시간을 붙잡는다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놓는 데 있어서의 경쟁이라고 본다. 하지만 아직은 경쟁자가 MS다. 이런 상황이 한동안 지속될 것이다.”

슈밋은 4월 4일 CEO 자리에서 물러나 대외협력과 제휴를 담당하는 회장 역할을 맡는다. 창업자 가운데 한 명인 페이지가 구글의 CEO에 올라 신제품 개발에 주력할 예정이다.

―페이지가 CEO가 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새 CEO가 될 페이지는 캘리포니아 사무실에 1년 내내 틀어박혀 신제품만 들여다보게 됐다. 난 그동안 세계를 돌면서 많은 경험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제휴를 맺을 것이다. 참 좋은 역할배분 아닌가. 빨리 역할을 바꾸고 싶다.”

―외부와의 협력이라는 점에서 이번 동일본 대지진에서 구글이 보여준 ‘사람 찾기 서비스’ 등은 훌륭했다.

“우리는 늘 기술로 사람들의 삶을 더 낫게 만들고자 했다. 이번에도 가슴 아픈 재난 앞에서 구호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하는 웹사이트를 열었고, 도왔다.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그건 일본 자위대와 각국의 구조대, 자원봉사자 등이 현장에서 벌이고 있는 구조활동이다.”

김상훈 기자 sanhkim@donga.com
김선우 기자 subli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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