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금난새]내가 아마추어 대학생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3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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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난새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금난새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어릴 적부터 제 꿈은 지휘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우리나라에는 지휘과는 물론이고 지휘를 가르쳐 줄 선생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서울예고 작곡과를 졸업한 뒤 자연스럽게 대학에서 작곡과를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대학 생활은 고등학교 때와는 달리 스스로 자기계발을 할 수 있도록 학생들에게 자율성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 시절 어떻게 하면 하고 싶은 지휘 공부를 할 수 있을까 좀 더 깊이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피아노나 바이올린을 전공한다면 악기를 사서 공부할 수 있지만, 지휘 공부를 위한 오케스트라는 살 수 없기에 저는 오케스트라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여러 대학에 진학한 예고 졸업생들을 설득한 끝에 20여 명의 학생을 모을 수 있었고, ‘서울 영 앙상블’이라는 오케스트라를 결성했습니다. 하지만 곧 난관에 부닥치고 말았습니다. 오케스트라가 연습할 장소를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입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1960년대 서울 세종로 사거리(지금의 교보빌딩 자리)에는 미국 공보원 건물이 있었습니다. 1층에는 도서관, 2층에는 작은 강당 그리고 3∼5층은 작은 방들로 나뉘어 고등학생과 대학생들의 영어 동아리 모임이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었습니다. 미국 공보원의 역할 중 하나가 영어 보급이었기 때문에 그곳은 지금의 영어학원처럼 늘 학생들로 붐볐습니다.

그들의 열정 속에 나의 옛모습 중첩

저는 1층 도서관을 자주 이용했는데 주의 깊게 보니 2층 강당이 늘 잠겨 있었습니다. 잠자고 있는 그 강당이 우리 오케스트라의 보금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미국 공보원 원장에게 면담을 요청했습니다. “서울 영 앙상블의 지휘자로 활동하는 학생인데 연습할 장소를 찾고 있습니다. 이 강당을 연습실로 쓰고 싶습니다”라고 했을 때 예상했던 대로 그는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물러서지 않고 다시 말했습니다. “우리는 연습뿐 아니라 두 달에 한 번씩 발표회를 가질 계획인데, 모차르트나 베토벤의 곡만 연주하는 게 아니라 미국 작곡가의 작품도 연주한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라고 했을 때 그는 얼굴이 밝아지면서 “That's a good idea(좋은 생각이다)”라고 외쳤습니다. 이 일로 저는 연습공간을 확보했을 뿐 아니라 지휘과도, 지휘 선생님도 없는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료들의 도움으로 지휘자의 꿈을 키워 나갈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지난여름, 동아리 오케스트라 대표 학생들이 저를 찾아왔습니다. 대략 25개의 대학에서 동아리로 활동하고 있는 오케스트라들을 한데 모아 전국 대학 연합으로 활동해 보려고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운영진은 고심 끝에 ‘우리가 단원들을 모으고 금난새 선생님께 지휘를 부탁하면 어떨까’라고 결론을 냈고 곧장 저를 찾아왔다고 합니다.

우리 세대엔 민주화 활동을 하거나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는 것이 일반적인 대학생의 모습이었지만, 시대가 변해서 오케스트라를 통해 커뮤니케이션을 하려고 하는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았을 때 저는 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 없었습니다. 그 학생들은 40여 년 전 젊은 날의 금난새의 모습으로, 저는 미국 공보원 원장의 모습으로 마주한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디션을 통해 25개 대학의 학생 100명을 선발했고, 틈틈이 연습하며 음악회를 준비했습니다. 한 곡을 연습하기 위해 20여 개의 다른 음반을 사서 나눠 듣고, 밤새워 연습하고 연구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저는 우리 음악계의 밝은 모습을 기대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 음악 교육은 독주자 중심의 교육이기 때문에 남과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교육이 부족하다고 저는 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음악을 전공하지도 않은 학생들이 오케스트라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들의 활동이 더욱 발전해 나가길 원하고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우리 음악계를 위한 신선한 제안으로 다가왔습니다.

음악 향한 도전정신, 그대들이 영웅

마침내 우리는 올 1월 예술의전당에서 ‘차이콥스키 교향곡 4번’과 ‘무소륵스키 전람회의 그림’을 여느 음악대학 오케스트라 이상으로 훌륭히 연주해 냈습니다. 음악회가 끝나고 난 후 대학생들과 저는 우리가 만든 ‘쿠코(KUCO·Korea United College Orchestra·대학생 연합 오케스트라)’ 활동을 일회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계속 이어 나가는 것에 뜻을 같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딴 사람이나, 콩쿠르에서 입상한 사람을 영웅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만약 작은 배를 타고 태평양을 건너는 젊은이가 있다면 그런 도전정신을 가진 젊은이 또한 영웅이라고 불러야 할 것입니다. 뚜렷한 자기의 전공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악을 통해 또 다른 분야의 전공자들과 함께 소통하려고 하는 쿠코 젊은이들이야말로 우리나라가 필요로 하는 진정한 영웅이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금난새 인천시립교향악단 예술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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