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포커스/로저 코언]카다피 독재의 공모자들

  • Array
  • 입력 2011년 3월 11일 03시 00분


코멘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하워드 데이비스 런던정경대(LSE) 총장이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자 사임했다. 그는 석 달 전 카다피 원수에게 학사모를 씌워주기도 했다. 아랍 독재자들과 서방 기득권 세력이 어떻게 얽혀 있는지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아랍권 민주화 시위에 미국과 유럽이 한발 물러서 있다는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서방에서 그동안의 아랍 정책이 잘못됐었다고 인정했다는 이야기는 잘 들리지 않는다. 서방 세계는 오랫동안 아랍 대중보다 카다피 원수나 이집트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 같은 독재자 편이었다.

리비아의 유명 소설가 히샴 마타르는 최근 자전적 소설 ‘실종의 해부학(Anatomy of a Disappearance)’을 펴냈다. 소설에 따르면 전직 외교관인 작가의 부친은 1990년 이집트 카이로에서 납치된 뒤 소식이 끊겼다. 아들은 부친이 돌아가셨는지, 돌아가셨다면 ‘언제 어디서 어떻게’ 가셨는지를 알기 위해 백방으로 묻고 다녔지만 수도 트리폴리 정치범 수용소에서 봤다는 사람 외엔 만날 수 없었다.

리비아와 이집트의 독재자는 자신들의 자리를 지키는 데 서로 협력했다. 서방 세계 역시 이들의 정권을 유지해주는 대가로 이득을 취했다. 이집트는 아랍 세계 소식을 전하는 훌륭한 정보원이기도 했고 서방의 목소리를 아랍권에 전하는 대변자이기도 했다. 리비아는 석유와 천연 자원을 앞세워 서방을 유혹했다.

독재자들에게 영어 ‘사라지다(disappear)’라는 낱말은 오직 ‘없애다’라는 뜻의 타동사일 뿐이었다. 카다피 원수와 무바라크 전 대통령은 반대 세력을 붙잡아 탄압했고 그들의 이름을 영원히 지워버렸다. 붙잡힌 이들은 문자 그대로 사라질 뿐이었다. 묘비명도 없이 쓸쓸히 죽어갔다. 이름 없이 모래 위를 뒹구는 해골들은 한때 정의를 부르짖던 지성인이었다. 민주주의와 자유를 신봉한다는 이유로 죽어야 했다. 카다피 원수는 1996년 6월 ‘아부 살림’ 수용소에서 1000명이 넘는 정치범을 처형했다. 마타르의 아버지도 그중 한 명이었을까.

마타르는 미국 유명 잡지 ‘더 뉴요커’와의 인터뷰에서 “지금이야말로 미국인들은 자기들 손으로 뽑은 각료들이 앞장서 무바라크 전 대통령 같은 독재자들을 30년 넘게 묵인해 왔다는 사실을 되짚어 봐야 할 때”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가 처음 시작됐을 때 조지프 바이든 미국 부통령조차 “무바라크 대통령은 독재자가 아니다”라고 했었다.

내가 리비아 사태에 서방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방이 이처럼 도덕적 파산 상태이기 때문이다. 미국이나 유럽은 아랍인들의 자유에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들을 돕는다며 군대를 보낸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서방 군대가 없으면 카다피를 무너뜨릴 수 없다는 건 오만한 발상이다.

영국 역사가 티머시 가턴 애시는 책 ‘사실은 파괴적이다(Facts are Subversive)’에서 반(反)나치 저항 시인 체스와프 미워시의 시를 인용했다. ‘시인은 잊지 않는다/한 사람을 죽일 수 있지만 다른 이가 곧 태어난다/네 말과 행동은 기록될 것이다.’

그렇다. 시인은 잊지 않는다. 카다피 원수의 무자비함도 기록될 것이고 마타르 아버지에게 생긴 일도 알게 될 날이 올 것이다. 그러니 죽은 자들의 이름을 잊지 말고, 어떤 범죄가 언제 일어났는지 기록하자. 그리고 서방 역시 독재자의 공모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리비아 정부는 언젠가 진실 앞에 무너질 것이다. 그것도 가까운 시간 안에 말이다.

로저 코언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