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부인 사망’ 남편 영장 재신청… 전문가 2인이 말하는 사건규명 열쇠는…

  • Array
  • 입력 2011년 2월 22일 03시 00분


코멘트
《 ‘만삭 의사 부인 사망 사건’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경찰이 남편 A 씨(31)에 대해 다시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함에 따라 한 차례 영장을 기각했던 법원이 이번에는 어떻게 판단할지 주목된다. 이 사건은 △시신의 상태 △현장에 남은 흔적 △사망 추정 시간 등을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동아일보는 21일 국내 대표적 법의학자인 이윤성 서울대 의대 법의학교실 교수(58)와 강력사건을 20여 년간 다뤄 본 박충근 전 대구지검 서부지청장(55·변호사)의 견해를 들어 봤다. 》
■ 이윤성 서울대 법의학교수 “목 양쪽 피하출혈 강하게 눌린 증거”

이윤성 교수(사진)는 “사건현장을 정확히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단정할 수 없다”고 말을 아끼면서도 경찰이 용의자로 지목한 남편 A 씨의 해명에 대해 “좀 특이하다. 남의 DNA가 내 손톱 밑에서 발견될 이유는 ‘특별한’ 경우를 빼고는 거의 없다”고 밝혔다(A 씨는 부인의 손톱에서 자신의 DNA가 발견된 데 대해 “아토피가 있는 피부를 아내가 긁어준 것”이라고 해명해 왔다).

이 교수는 “의사이기 때문에 아토피를 긁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남에게 시켜 가면서까지 피부를 긁었다는 해명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다”며 “사건 당시 A 씨의 팔을 찍은 사진이 있다면 전문가들이 어떻게 생긴 상처인지 정확히 구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숨진 부인의 목 양쪽에 피하출혈 흔적이 발견됐다는 경찰 발표에 대해선 “목에 센 힘이 가해진 것이 확실하다”고 분석했다. 그는 “1987년 고문으로 숨진 박종철 군의 목에도 혈흔이 있었다”며 “욕조 턱에 목이 강하게 눌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단순히 목이 구부러진 채 숨진 사람에게는 발견될 수 없는 흔적이라는 것.

이 교수는 “사망 시간을 추정하는 직장(直腸)온도 변화 검사는 현장에서 되도록 빨리 해야 오차가 적다”고 지적했다. 사망 후 12시간 정도가 지나면 사망 추정 시간에 서너 시간의 오차가 생기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많이 떨어진다는 설명이다. 경찰은 시신을 영안실로 옮긴 후인 지난달 14일 오후 8시 반경에야 직장온도 변화 검사를 했다. 범행 추정시간(오전 3시∼5시 40분)으로부터 15시간가량이 지난 뒤였다. 초동수사에서 중요한 단서를 놓쳤다는 비판이 나올 수 있는 대목이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강력수사통 박충근 前검사 “사망 추정 시간은 결정적 증거 안돼”

박충근 변호사(사진)는 “타살은 명백한 것 같다”고 밝혔다. 그는 “미끄러져 머리를 부딪치면 피가 욕조에 흩뿌려지듯 튀고 사망 원인도 뇌출혈이 된다”며 “욕조에 누운 부인의 모습이나 목 눌림 흔적, 이불에 남은 혈흔 등에 비춰 볼 때 침대에서 살해돼 욕조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언론 보도대로 설골(舌骨)이 부러졌다면 두 엄지손가락으로 목을 세게 누른 것”이라며 “넘어지거나 미끄러지면 두꺼운 설골이 손상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변호사는 “남편의 팔에 생긴 상처와 부인의 손톱에 남은 DNA, 부부의 옷에 각각 남은 혈흔 등은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 있었다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며 “남편의 혐의 유무는 제3자가 외부에서 침입했을 가능성을 면밀하게 짚어본 뒤에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파트 입구의 폐쇄회로(CC)TV에 남은 기록과 CCTV로 잡히지 않는 사각지대 유무, 현관문 손잡이 상태, 실내외에 남은 발자국 등을 세밀하게 조사해야 한다는 것.

또 그는 “시신의 체온을 근거로 하는 사망 추정 시간은 상대적으로 기온이 높은 실내에서는 오차가 생길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이를 결정적 증거로 삼으면 수사가 어려워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 사건은 ‘김기웅 순경 사건’과 비슷하지만 당시보다 객관적인 증거들이 더 잘 확보된 것 같다”고 밝혔다. 김기웅 순경 사건은 1992년 11월 김 순경이 함께 여관에 투숙한 애인의 살해범으로 몰렸다가 진범이 붙잡혀 누명을 벗은 사건. 당시 경찰은 부주의하게 범행 현장의 창문을 열어놓아 시신 온도가 떨어져 사망 추정 시간을 잘못 계산했고 이 때문에 김 순경이 범인으로 지목됐었다.

최창봉 기자 ceric@donga.com

▼ 경찰 “국과수 타살증거 보강했다”
남편측 “강압수사 인권위 진정”

만삭 의사 부인 박모 씨(29)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 마포경찰서는 피의자로 지목한 남편 A 씨(31)에 대해 21일 살인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이달 4일에도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법원이 “사고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기각한 바 있다.

경찰 관계자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최근 보낸 의견서에 사인을 ‘손에 의한 목졸림 질식사’로 확인한 점, ‘사고사일 가능성이 없다’고 한 점 등을 영장에 부각시켜 기재했다”고 설명했다. 오른쪽 눈에서 흐른 피가 눈두덩 아래쪽을 타고 눈초리 쪽으로 중력을 거슬러 흘러내린 자국도 이번 영장에서 타살 증거로 새로 추가된 내용이다. 경찰은 이 핏자국을 근거로 A 씨가 아내 박 씨를 욕조가 아닌 다른 곳에서 살해한 뒤 사고사로 위장하기 위해 욕조에 옮겨놓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한편 A 씨는 18일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한 경찰 조사에서 모든 혐의를 강하게 부인했다. A 씨의 변호인은 “경찰이 영장실질심사의 개요를 설명하지 않거나 실질심사 일시, 장소를 고지해 주지 않는 등 절차를 제대로 지키지 않은 채 억지로 혐의를 적용하려 한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원주 기자 takeoff@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