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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강국이 앓고 있다]<6>무너지는 ‘유럽 취업공장’ 스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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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강국이 앓고 있다]<6>무너지는 ‘유럽 취업공장’ 스페인

동아일보입력 2011-02-01 03:00수정 2011-02-07 1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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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유로 무제한 진료’에 실업수당 ‘펑펑’… 20% 高실업까지 겹쳐 곳간은 ‘텅텅’ 《 지난달 24일 오후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립취업센터(Officina de Empleo) 대기실. 시민 100여 명이 손에 번호표를 쥐고 순서를 기다렸다. 안내화면에서는 순서를 알리는 빨간 숫자들이 쉴 새 없이 깜빡였다. 석 달 동안 실직자로 지냈다는 우고 가르세스 소로야 씨(37)도 특별실업수당을 받기 위해 이곳을 찾아왔다. 특별실업수당 420유로(약 63만 원)를 매달 받아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그는 “어차피 새 직장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실업수당이나 계속 받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
2년 전만 해도 스페인의 실업수당은 신청자의 57%가 받을 수 있었고 외국인 근로자들도 신청할 수 있었으나 지난해 실업률이 20%를 돌파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지난해 11월 실업수당 신청건수가 410만 건에 이르자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스페인 총리는 “실업수당 지급을 내년 2월 중단하겠다”며 모라토리엄을 선언했다.

○ 복지 빨간불에도 노조에 양보

실업수당 예산 부족에 대한 빨간불은 2009년부터 켜져 있었다. 실업수당 보험료는 근로자 월급을 기준으로 고용자에게서 5.5%, 근로자에게서 1.55%씩 걷는데 당시 이 보험에 가입한 근로자 67만 명이 보험료를 내지 않았다. 그러나 스페인 정부는 2008년 금융위기로 재정이 바닥난 상태에서도 두 차례에 걸쳐 특별회계법을 밀어붙여 실업급여 적자를 계속 지원했다. 스페인의 실업수당은 실직 후 6개월간은 월급의 70%, 그 이후엔 60%가 지급된다.

이같이 넉넉한 조건은 2002년 사회보험 개혁 당시 스페인 노조가 만들어 놓았다. 사회복지 예산이 36억 유로 흑자였던 당시 노조 대표들은 “거주기간을 12개월에서 6개월로 줄이는 등 노동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야 한다”며 정부를 압박한 끝에 협상을 성공리에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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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은 지금의 실업수당이 더 이상 줄지 않기를 바랐다. 디자인 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비정규직 상점 판매원으로 일하다 해고된 소니아 트네나 씨는 “옛날의 실업수당은 꿈같은 얘기”라며 “지금은 단 하나의 혜택이라도 절실하다”고 말했다.

○ 이웃나라 모방하고 개혁은 하지 않고

1970년대 들어 30여 년간의 독재정치에서 벗어난 스페인은 연금과 무상의료, 출산장려금 등의 적극적인 복지정책을 도입했다. 정치인들은 부유한 이웃나라를 모델로 삼아 “평생 일한 국민의 노후를 보장하겠다”며 연금과 무상의료 등의 복지정책을 들여오는 데 앞장섰다.

1979년 노사정(勞使政)이 모여 ‘젊어서 세금을 낸 만큼 늙어서 받아가는 식’의 연금제도에 합의했다. 레이 후안카를로스 공립대 프란시스코 호세 블랑코 경제학과 교수는 “연금제도가 마련된 직후부터 적용 연령기준을 늦추지 않으면 곧 재정 부족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노조에서 이를 받아들이지 않아 30년 가까이 답보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세금 액수에 관계없이 모두 ‘공짜’인 무상의료보험 제도도 들여왔다. 스페인 의료보험의 경우 어떤 환자든 1유로만 내면 공짜로 진료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영국이나 독일 등 주변 국가에서 병에 걸리면 스페인으로 치료를 받으러 ‘의료 관광’을 다닐 정도다. 스페인 복지 전문가들은 “실업률이 20%를 돌파한 데다 세금을 내지 않는 노인 인구도 급증해 심각한 재정위기를 맞고 있다”고 말했다. 2004년까지만 해도 유럽연합 내 신규 일자리의 60%를 책임지던 스페인이지만 6년 사이 ‘유럽의 문제아’로 전락한 셈이다

○ 허리띠 바짝 졸라맨 스페인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5월부터 강도 높은 재정개혁안을 내놓고 뒤늦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KOTRA 마드리드KBC 박성기 관장은 “사회당 소속인 사파테로 총리가 최근 사회보장을 위한 재정지출만은 유지하겠다는 초기 입장을 전격적으로 바꿔 긴축정책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6월에는 공무원 임금 5∼15%를 삭감했고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하는 한편 매월 최대 2500유로(약 375만 원)까지 지급하던 연금 액수도 줄여나가기로 결정했다.

신생아 1명에 2500유로씩 지급하던 출산장려금도 올해 1월 1일부로 전면 폐지했다. 출산장려금이 폐지된다는 소식에 지난해 12월 31일까지 스페인의 산부인과들은 유도분만을 호소하는 산모들로 가득 차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정부의 갑작스러운 허리띠 졸라매기에 시민들은 당황하다 못해 분노하는 모습이었다. 마드리드국립대의 사바타 알무데나 교수(58·여)는 지난해 9월 강의실 대신 시내 기차역에서 열린 공무원 투쟁 결의대회장으로 출근했다. 정부로부터 임금 8%를 삭감한다는 통보를 받았기 때문이다.

며칠 차이로 출산장려금을 놓친 산모들의 불만도 여전했다. 25일 그레고리온 마라니온 마드리드시립병원에서 만난 이도이아 몬테로 씨(33)는 “이제까지 꼬박꼬박 세금을 내 온 게 억울하다”고 말했다. 임신 3개월째인 크리스티나 벨리야 씨(33)도 “정부가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출산장려금을 전면 폐지해 충격”이라고 말했다. 호세 마르티네스 올모스 스페인 보건소비부 차관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긴축재정은 스페인뿐 아니라 유럽연합(EU) 전체가 추구하는 방향”이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을 시민들도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드리드=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 긴축 필요하지만 ‘단맛’ 포기 힘들어 ▼
공무원 임금 5% 삭감 등 추진… 재정축소 반발 총파업 이어져

지난달 24일 스페인 마드리드의 시립취업센터에서 시민들이 상담을 받기 위해 접수 창구앞에 줄 서 있다. 정부와 마드리드 시가 운영하는 이 센터에는 매일 1000여 명이 찾아와 구직 알선과 실업수당 지급 등을 신청하고 있다. 마드리드=김지현 기자 jhk85@donga.com
스페인의 호세 루이스 로드리게스 사파테로 총리는 냉정하고 침착하면서 실무적인 업무 스타일에 일관된 중도 좌파 정책으로 ‘조용한 사회주의자’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해부터 어느 우파 정치인 못지않은 강력한 긴축정책을 펴고 스페인 국민이 그를 빗대 ‘흡혈귀’로 묘사한 가면을 들고 총파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 아이러니다.

스페인 정부는 지난해 공무원 임금을 5% 삭감하고 주요 사회복지정책 중 하나였던 2500유로(약 380만 원)의 출산장려금을 없애며 총리와 정부 각료의 급여를 15% 삭감하는 내용의 강도 높은 재정긴축을 추진했다. 사파테로 총리가 정치적 생명을 걸고 의회에 낸 긴축안은 1표 차로 간신히 통과했지만 곧바로 총파업이 벌어지는 등 후유증은 오래 갔다.

좌파 정당의 총리가 강력한 긴축정책을 펼치게 된 것은 그만큼 스페인 경제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스페인은 남유럽 재정위기를 일으킨 문제 국가로 꼽혀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앞 글자를 딴 것)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지난해 말 공식 실업률이 20.3%로 유럽연합(EU) 회원국 가운데 라트비아 다음으로 높았다.

긴축재정 외에는 대안이 없는데도 스페인 국민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복지정책의 달콤한 맛을 쉽게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 경제가 이 지경에까지 온 이유를 거슬러 올라가면 하나의 뿌리에 원인이 있다. 즉 ‘너무 늦게 허리띠를 졸라맸다’는 점이다.

스페인은 2008년 세계 경제위기 이전에도 국민부담률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낮고 복지지출은 그보다 높은 나라였다. 재정수지와 국가부채가 계속 악화되는 상태에서 2008년 세계 경제위기를 맞자 사파테로 총리는 세금환급 등 공공지출을 확대하는 정책으로 경기를 살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에 반대하던 페드로 솔베스 재무장관은 경질됐다.

하지만 재정확대정책에도 불구하고 2009년 마이너스 3.7%의 경제 성장을 경험한 뒤 경기부양 조치를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사회 각계의 고통 분담 노력으로 미국발 금융위기를 큰 탈 없이 넘긴 한국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호세 마리아 아스나르 스페인 전 총리는 지난달 월스트리트저널에 보낸 기고문에서 “스페인의 경제위기는 정부에 대한 신뢰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현 정부를 맹비난했다. 그는 “스페인은 가장 심각한 정치적 위기를 겪고 있다”며 “공공지출을 줄이고 복지개혁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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