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원심분리기 공개’ 파문]北‘핵엄포’ 문답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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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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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2000년 코뮈니케’ 해법으로 언급… 또 通美封南 노림수

Q. 정부는 북한이 우라늄 농축에 사용되는 원심분리기 시설을 공개한 것에 대해 오래전부터 관련 사실을 파악해 왔다고 설명하고 있다. 정부는 언제부터 어떤 정황을 근거로 얼마나 자세한 정보를 파악한 것일까.

A. 정부 고위 당국자는 22일 “북한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은 오랫동안 주시해 왔고 의구심을 가져왔던 부분”이라며 “새롭거나 놀랄 만한 상황이라기보다는 우리가 염려해 왔던 부분이 현실로 드러난 것”이라고 밝혔다.

북측 관계자들은 12일 북한 영변 핵시설에서 원심분리기를 목격한 시그프리드 헤커 미국 스탠퍼드대 국제안보협력센터 소장에게 “우라늄농축 시설을 지난해 4월부터 건설하기 시작했고 얼마 전 운용을 완료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정부 당국자는 “그렇게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우라늄농축 설비를 그렇게 단시간에 만들기 어렵다”고 말했다.

북한은 이미 1990년대부터 UEP를 시작했으며 2001년엔 원심분리기 제작용 알루미늄 강관 2600여 개를 남천강무역회사를 통해 러시아로부터 반입한 사실이 한미 정보당국에 포착됐다. 북한은 2002년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 차관보가 방북했을 당시 UEP의 존재를 사실상 시인했다.

이후 북한은 관련 의혹을 부인했지만 2004년 파키스탄 ‘핵개발의 아버지’로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 박사가 북한의 UEP 개발을 지원했다고 시인했다. 이어 2005년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은 칸 박사가 1990년대 초부터 북한에 원심분리기 본체와 관련 부품, 설계도를 보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도 북한이 헤커 소장 등을 통해 원심분리기 2000개를 공개하기 전까지 한국과 미국은 북한 UEP의 수준이나 규모 등 구체적 실체에 대한 정보는 입수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태영 국방부 장관도 22일 국회 예산결산특위에서 북한 발표의 진위를 파악할 정도로 정보를 수집하고 있는지를 묻자 “명확하게 확인은 되지 않아 추가 확인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정부 당국자들은 북한 경수로 건설 및 UEP 수준 등에 대한 질문에 “1990년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 20여 기를 도입했다는 것 외에 실제로 확인되는 것은 없다”며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여 왔다. 결국 북한의 잇단 우라늄 농축 발언이 단순히 ‘블러핑(허풍)’이 아님은 알고 있었지만 이와 관련한 정확한 정보는 갖고 있지 못했던 셈이다.

Q. 북한은 12일 영변을 방문한 헤커 소장에게 원심분리기를 공개하면서 설비를 자체 제작했다고 말했다. 믿을 수 있는 말일까.

A. 북한 관계자들은 헤커 소장에게 “모든 부품은 국내에서 제작됐다”고 주장했다. 헤커 소장이 현장에서 ‘원심분리기가 P-1형(파키스탄 개발)이냐’고 묻자 북한 책임자는 “아니다. 다만 네덜란드의 알메로와 일본의 로카쇼무라를 모델로 했다”고 말했다.

북한은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칸 박사로부터 구형 원심분리기(P-1형) 20대와 신형 원심분리기(P-2형) 설계도를 제공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거론한 네덜란드는 칸 박사가 핵 기술을 빼낸 곳이다. 하지만 일본과의 연관성은 확인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네덜란드와 일본을 거론한 것은 핵 능력의 수준이나 출처가 정확하게 공개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전략 차원일 가능성이 없지 않다.

정부 당국은 북한의 원심분리기가 파키스탄의 P-2형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아울러 이란과의 핵 기술 거래 의혹도 해소되지 않고 있어 이란과의 연계 가능성도 있다. 결국 북한이 ‘자체 제작’을 강조한 이면에는 파키스탄 또는 다른 국가와의 핵 관련 의혹을 불식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Q. 헤커 소장은 20일 공개한 보고서에서 “북측 고위 관계자가 ‘2000년 10월 북-미 공동 코뮈니케가 문제 해결의 좋은 출발점’이라고 말했다”고 밝혔다. 북한이 이를 들고 나오는 의도는 무엇인가.

A. 북-미 코뮈니케는 2000년 조명록 당시 북한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이 미국을 방문해 미국 고위 관리들과 함께 발표한 것으로 북-미 간 관계개선이 기본 내용이다. 정전협정을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등 적대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계를 위해 노력하자는 것이다.

북한이 새삼 미국과의 적대관계 해소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북-미 코뮈니케 얘기를 꺼낸 것은 북핵 문제는 북-미 간에 해결해야 한다는 점을 내세우며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남북관계 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한미 간의 공조에 균열을 내기 위한 의도로 분석된다.

그러나 미국이 북한과 양자 대화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꺼리고 있어 북-미 코뮈니케와 같은 상황으로 돌아가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북한의 우라늄 농축 활동은 미국이 우려하는 핵 확산 문제와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개선을 기다리기보다 기존 대북정책의 변화를 꾀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Q. 북한이 이후 추가로 들고 나올 수 있는 핵 카드는 무엇인가.

A. 북한이 지난해 2차 핵실험을 한 뒤인 6월 13일 외무성 성명을 통해 우라늄 농축 사실을 시인한 이후 이번에 핵심 설비인 원심분리기 공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전형적인 ‘살라미 전술’이다. 핵 카드를 여러 단계로 쪼개 단계적으로 공개해 협상력을 높이려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은 이번 카드가 먹혀들지 않거나 추가로 위협 강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우라늄 농축 작업을 거친 농축우라늄 표본을 제3자나 언론을 통해 공개할 수 있다. 현재 터파기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경수로 건설사업의 세부 공정을 공개하는 방법도 있다. 내년 상반기쯤엔 3차 핵실험을 단행할 수도 있다.

이후에도 북한이 활용할 카드는 남아 있다. △핵무기(폭발장치) 실물 공개 △이를 핵탄두로 장착한 미사일 시험발사 △핵무기 실전 배치 △핵무기와 물질, 기술의 제3국 이전 위협 등이다.

윤완준 기자 zeitung@donga.com

신석호 기자 ky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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