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체벌 금지·학생지도 포기·도망가는 교육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1월 2일 03시 00분


서울의 모든 초중고교에서 체벌이 어제부터 전면 금지됐다. 교사들은 “당장 첫날부터 수업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는다”며 한숨을 쉬었다. 한 고교 교사는 “떠들거나 수업 분위기를 방해하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더니 ‘오늘부터 체벌 안 되는 거 아시죠. 우리 휴대전화 있어요’ 하더라”고 전했다.

곽노현 서울시교육감이 올해 7월 체벌 금지 방침을 천명한 뒤로 학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은평구의 한 여교사는 교내에서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에게 주의를 줬다가 “벌도 못 줄 거면서 시끄럽기는…” 하는 핀잔을 듣고 황당했다고 토로했다. 이 교사가 서울시교육청의 학생지도 매뉴얼에 따라 해당 학부모와 면담하기 위해 전화를 하자 “왜 나한테 훈계를 하느냐. 당신이 우리 애 선생이지 내 선생이냐”는 항의가 돌아왔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교총)에 접수된 ‘체벌 금지 이후 부작용’ 사례다.

‘사랑의 매’가 없이는 교육시키기 어려운 학생들이 우리 교실 안에 있는 것도 현실이다. 적절한 체벌을 이용해 이들을 교육으로 끌어들이지 않으면 오히려 ‘교육 포기’가 될 수 있다. 체벌 금지 조치에 따라 가뜩이나 무사안일에 익숙한 교사들이 아예 학생 지도를 기피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수업시간에 소란을 피우거나 질서를 지키지 않는 학생들을 방치하다 보면 다수 학생이 학습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2004년 대법원은 체벌에 대해 ‘다른 교육적 수단으로는 학생의 잘못을 교정하기 불가능한 경우,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을 만한 객관적 타당성의 방법과 정도’로 예외적으로 허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곽 교육감처럼 ‘교육적 목적의 체벌’까지 금지하는 것보다는 대법원 판례가 우리 교육환경과 문화에 적절한 수준이라고 본다. 곽 교육감에게 교실의 현실을 정확히 파악하고 체벌 금지를 강행할지 판단할 것을 권하고 싶다.

체벌 문제는 교육청이 일률적으로 하라 마라 지시할 사안이 아니다. 허용 가능한 체벌의 방법과 한계에 대한 사회적 합의도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았다. 교육과학기술부는 체벌 금지를 둘러싼 논란이 확대되자 교육적인 체벌의 근거와 기준, 대안을 담은 법령을 추진한다고 해놓고는 아직 소식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의 비현실적 조치와 교과부의 천하태평 속에 한국 교육은 어렵고 복잡한 현실로부터 도망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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