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중국 팽창 역사는 피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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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10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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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 유전자/에릭 두르슈미트 지음·이상근 옮김/576쪽·2만5000원/세종서적

《“위대한 중국의 황제이자 우주의 중심인 중원의 왕 짐이 생각해 보니, 먼 옛적부터 작은 공국의 대공(大公)들조차 이웃 나라와 우호적인 관계를 수립하고자 노력했다.…짐이 청하는 쌍방 간의 왕래를 거부하는 것이 합당한 일이겠는가? 만약 거부한다면 그것은 전쟁을 의미할 것이며 그런 사태를 좋아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1280년 원나라 황실은 쿠빌라이 칸의 뜻을 거역한 일본 왕에게 위협적인 편지를 보냈다. 당시 대제국이었던 원나라의 호전적인 편지를 받고 일본 왕실은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스트리아 출신 전쟁 전문 기자인 저자는 이 편지를 소개하며 책을 시작한다. 편지에서 볼 수 있듯 중국이란 여러 세기에 걸쳐 ‘전쟁 국가’의 다른 이름이었다. 저자는 북방민족이 지배하던 시기를 포함해 중국이 크고 작은 수많은 정복전쟁을 일으키며 대학살을 저질러 온 ‘피의 역사’에 주목한다.

저자가 중국의 역사를 소개하는 것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그들의 목소리가 높아졌고 팽창주의 야욕은 여전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 중국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를 둘러싼 일본과의 영토분쟁에서 사실상 일본의 백기를 받아냈으며, 미국과의 환율분쟁에서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천안함이 침몰한 지 한 달여 뒤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은 이명박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각각 만나 위기해소 논의의 중심에 섰다. 이런 일련의 사건을 통해서도 중국은 동아시아의 패권자라는 이미지를 전 세계에 알리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1218년 원의 호라즘 제국(현재 아프가니스탄과 그 주변) 침공부터 2001년 중국 하이난(海南) 섬 상공에서 미국 해군 첩보기를 중국 해군 전투기가 들이받은 사건에 이르기까지 800년 가까운 중국 역사에서 중요한 군사·외교적 사건들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해석한다.

원의 호라즘 침략은 호라즘 황제가 칭기즈칸이 보낸 사절을 살해한 사건이 발단이 됐다. 호라즘의 술탄은 칭기즈칸이 중원을 장악하고 세력을 넓혀가던 당시 정세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했다. 원나라 기병 3만 명은 20만 명에 이르는 호라즘의 군대에 승리해 제국을 점령했다. 제국의 술탄을 비롯해 수만 명의 현지인이 학살당했다. 원의 사절단 10명을 참수한 사건으로 말미암아 동서양 문명의 충돌이 시작됐으며 중원의 왕국은 은둔에서 벗어났다고 책은 평가한다.

15세기 초반 정화(鄭和)의 원정과 함께 중국은 해양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콜럼버스가 세 척의 작은 배로 미지의 세계로 나간 반면 정화는 승무원 2만7000여 명을 실은 317척의 함대를 지휘했다. 이 ‘용의 함대’는 7차례에 걸쳐 인도, 중동, 아프리카의 바다를 누비며 명나라의 위세를 과시했다. 하지만 원정을 주도하던 영락제가 사망하고 홍희제에 이어 선덕제가 집권하면서 30년 가까이 진행된 원정은 막을 내린다. 잠에서 깨어났던 용은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는 용에게 수난의 역사였다. ‘태평천국의 난’ ‘의화단 사건’ ‘난징대학살’ 등을 거치며 끝 모를 나락으로 떨어질 것만 같았다. 1949년 10월 1일 중국은 사회주의 공화국을 세우며 다시 부활했다. 수난의 역사를 마무리한 중국은 1950년 10월 티베트를 침공함으로써 팽창의 역사를 이어갔다.

2001년 4월 1일에는 중국이 미국을 떨게 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오전 중국 해군 전투기 조종사 왕웨이(王偉)는 하이난 섬에서 110km 떨어진 상공을 비행하던 미국 첩보기를 요격하도록 명령받았다. 왕웨이는 위협을 목적으로 첩보기에 접근했다가 추락사했고 첩보기는 간신히 하이난 섬에 불시착했다. 당시 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 “올바른 길은 외교적 해결뿐”이라고 제안했지만 부시는 강경한 담화문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중국 정부와 여론이 강경하게 나오면서 파월의 충고에 따랐다. 도약을 준비하던 용이 세계 최강 미국에 힘을 과시한 순간이었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외국이 간섭하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우리 중국인들에게 19세기는 치욕의 시대였고, 20세기는 그것으로부터 탈출하는 회복의 시대였으며, 21세기는 우리의 우수성을 떨치는 시대가 될 것입니다.” 평소 겸손하고 실용적인 이미지의 그의 입에서 나온 이 말은 중국의 향후 대외정책을 한눈에 보여준다.

이 같은 중국의 미래에는 장밋빛만 있지 않다. 거대도시들이 일자리를 찾는 수백만 명을 더는 흡수할 수 없게 되면서 노동자들은 더 열심히 일하라는 압력을 받고 있으며 이로 인해 불만이 누적되고 있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톈안먼(天安門) 사태 등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인민들의 민주적인 정치체제에 대한 갈망은 언제든지 중국의 체제를 위협할 핵폭탄이다.

이런 난관 속에서도 중국의 패권주의는 계속 진행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상한다. 그는 잠에서 깨어나는 용에 관한 역사적 이야기는 미래의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과거만의 이야기도 아니라며 “태양은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욱 강렬하게 동쪽에서 떠오른다.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가 시종일관 중국의 역사에 대해 서구중심적 시각을 놓치지 않는 부분은 우리에게 분명 껄끄럽다. ‘이쪽’ 서구에서 적으로서의 ‘저쪽’ 중국을 묘사한다. 오랜 기간 분쟁 취재에 몰두해온 저자가 역사를 전쟁 위주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며 문명 간 갈등을 부각시키는 점도 얼마간 거리를 두고 이 책을 읽어야 할 이유다.

민병선 기자 blued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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