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 이맛!]지글지글 ‘고갈비’ 한입, 소갈비가 부러우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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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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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어

‘고등어는 봄에 제주도 성산포 근해로 몰려와서 남해안으로 북상한다. 남해를 거쳐 그중 한 떼는 동해로, 한 떼는 서해로 올라간다. 그리고 9월에서 1월 사이에 다시 남쪽으로 내려간다. 약 40년을 주기로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성해지면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쇠해지고, 동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성해지면 서해로 올라가는 무리가 쇠해진다고 한다.’<윤대녕 ‘어머니의 수저’에서>

고등어 등짝은 푸르다. 갈맷빛이다. 그 군청색의 등때기가 펄펄 살아 숨쉰다. 날렵하다. 뱃살은 눈부시게 희뿌옇다. 코발트블루의 등짝과 하얀 뱃살은 ‘흰 눈 속의 댓잎’처럼 어우러진다.

고등어 눈은 검푸르고 그윽하다. 갓 잡은 고등어 눈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짙고 푸른 바다가 출렁인다. 꽁치 청어 눈망울도 그렇다. 이들은 모두 사람 몸에 좋다는 ‘등 푸른 생선’이다. 하나같이 얕은 바다에서 산다. 갈매기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등이 물푸레나무처럼 푸르러야 바닷새들이 못 알아챈다. ‘푸른 등짝’은 ‘생명 띠’인 것이다.

고등어는 가을이 되면 살(단백질)이 통통해진다. 영양가도 듬뿍 들어 있어 맛이 으뜸이다. 몸의 지방이 봄엔 10%밖에 되지 않지만, 가을엔 그 두 배인 20%나 된다. 한마디로 기름이 자르르하다. 오죽하면 ‘가을 배와 고등어는 며느리에게 주지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을까. 산란은 5∼7월에 한다.

고등어지방은 불포화지방산이다. 심장을 튼튼하게 하고 성인병에 좋다. 그뿐인가. 지방산 가운데 EPA는 혈전이 쌓이는 것을 막아 콜레스테롤을 낮춰준다. DHA는 기억력과 학습능력을 높인다. EPA와 DHA는 튀기면 손실이 많다. 찜이나 조림으로 먹는 게 좋다. 고등어는 껍질, 특히 꼬리부분에 피부를 좋게 하는 비타민 B2가 많다. 껍질과 검붉은 살에 좋은 성분이 많다.

고등어는 바다의 보리다. 서민들 밥상의 단골 반찬이다. 값싸고 흔하면서 영양만점이다. 한 손 구우면 네 식구가 한 끼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다. 서민들에게 비싼 소갈비는 그림의 떡이다. 하지만 ‘고갈비’쯤이야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고갈비란 보통 고등어구이를 말한다. 고추장양념을 고루 발라 구운 것도 포함된다. 고등어를 통째로 은박지에 싸서 연탄불에 익힌다. 은박지를 벗기면 고등어 몸통에서 김이 무럭무럭 난다.

1970, 80년대 대학가엔 고갈비집이 흔했다. 가난한 학생들은 막걸리 안주로 고갈비를 먹었다. 소주 안주로는 라면을 많이 먹었다. 요즘 대학가엔 고갈비집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느끼하고 비린내 나는 것’이 싫어서일까?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옆 피맛길 골목 고갈비집들도 사라졌다. 고등어구이에 막걸리 한잔 먹는 퇴근길 직장인들의 재미가 없어졌다. 땅거미 어둑어둑 내릴 때, 골목마다 환장하도록 풍겨 나오는 고등어 굽는 냄새. 미치도록 끌어당기는 고소한 고등어기름 냄새. “치∼익 칙∼” 아주머니의 부채질에 석쇠 틈새로 솔솔 피어오르는 푸른 연기. 몸통에 칼집 서너 개 긋고 노릇노릇 구워지는 고등어 보살. 어찌, 꿈엔들 잊을까. 서울 충무로 인쇄골목 어디쯤인가 허름한 고등어구이 집 하나 남아있지 않을까? 아니면 신촌 대학가 후미진 골목 어디엔가 한두 집 정도는 있지 않을까?

고등어는 잡히면 금세 죽는다. 몸을 퍼덕거리다가 제 풀에 스르르 눕는다. 그래서 회로 먹을 고등어는 잡자마자 뱃전에서 머리에 침을 놓는다. ‘수면고등어’, 즉 ‘가사어(假死魚)’인 셈이다.

제주도에선 고등어회가 흔하다. 다른 생선회와 먹을 땐 맨 나중에 먹는 게 좋다. 먼저 먹으면 고등어회의 느끼함 때문에 다른 생선회의 맛을 못 느낀다. 고등어회는 살이 무른 편이라 쫄깃한 맛은 없지만 고소하다. 깊은 곳에서 사는 고기보다 육질이 연하다. 하지만 부패하기 쉽다. 흰살 생선보다 식중독을 일으키기 쉽다.

‘얼마나 뒤집혀졌는지/눈알이 빠져 달아나고 없다/뱃속에 한 움큼, 소금을 털어 넣고/썩어빠진 송판 위에 누워있다’ <유홍준의 ‘자반고등어’에서>

안동 간고등어는 짜지 않다. 슴슴하면서도 쫄깃하고, 담백하면서도 깊은 맛이 있다. 옛날엔 안동에서 고등어를 먹으려면 동해에서 등짐 봇짐으로 가져오는 수밖에 없었다. 싱싱했던 고등어는 안동까지 오는 동안 자연스럽게 숙성되었다. 안동사람들은 그 숙성고등어에 적당히 소금으로 간을 쳐서 먹었다. 안동 간고등어의 탄생이다.

안동사람들은 간고등어를 ‘얼간잽이’라고 부른다. 얼은 ‘어리’에서 나온 말이다. ‘어리’는 ‘덜되거나 모자라다’는 뜻이다. 결국 ‘얼간’이란 짜지 않게 간을 하는 것을 말한다. 서산 어리굴젓도 얼간으로 담근 굴젓이다.

안동 간고등어는 소금치는 사람(간잽이)이 가장 중요하다. 소금을 너무 많이 치면 고등어 맛이 사라진다. 그렇다고 너무 적게 치면 부패해 버린다. 많지도 적지도 않게 그리고 골고루 간이 배도록 쳐야 한다. 안동의 간잽이는 ‘생활의 달인’이다.

고등어는 비리다. 조리할 때 식초 몇 방울 떨어뜨려주면 비린내가 싹 가신다. 뻣센 뼈도 부드러워진다. 신 김치나 씁쓰름한 갓김치와 함께 요리해도 궁합이 맞는다. 고등어김치찌개가 좋은 예다. 고구마줄기를 냄비바닥에 수북하게 깔고 고추장을 풀어 조려도 맛있다. 목구멍을 넘어갈 때 칼칼한 맛이 황홀하다.

생선은 가시 발라 먹는 맛이다. 가시가 없으면 오징어 낙지 문어다. 가시 바르는 동안 입 안에 단침이 흥건하게 괸다. 조바심에 달뜬다. 고등어 가시는 단순하다. 갈치처럼 잔가시가 많지 않다. 가운데 줄기가시만 걷어내면 대충 먹을 수 있다. 노릇노릇한 지느러미 부분은 바삭하고 고소하다.

고등어 한 손은 두 마리다. 보통 큰 놈 한 마리에 작은 것 하나를 볏짚으로 한데 묶는다. ‘고등어 부자지간’이다. 옛날 아버지들은 시장에 가면 반드시 고등어나 꽁치 한 손 사들고 집에 돌아왔다. 아버지 입에선 늘 단감냄새가 났다.

‘가난한 아버지가 가련한 아들을 껴안고 잠든 밤/마른 이불과 따뜻한 요리를 꿈꾸며 잠든 밤/큰 슬픔이 작은 슬픔을 껴안고 잠든 밤/소금 같은 싸락눈이 신문지갈피를 넘기며 염장을 지르는, 지하역의 겨울밤’ <박후기의 ‘자반고등어’ 전문>

김화성 전문기자 mar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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