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이야기’ 20선]<17>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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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9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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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중해, 문명의 바다를 가다/박상진 엮음/한길사

《“헤라클레스의 좁은 두 기둥 사이로 물을 흘려보낼 뿐 온통 육지에 둘러싸여 지중해라 불린 바다는 단지 ‘바다’만을 가리키지 않았다.… 지중해는 아프리카와 아시아, 그리고 유럽의 광활한 대륙들로 뻗어나가고 마침내 아메리카 대륙까지 팽창하는 엄청난 변용을 보여왔다. 지중해를 들여다보면 지혜로웠던 시절이든 오만했던 시절이든 지금까지 인류가 걸어온 길이 보인다.”》

육지에 갇혀 문명을 낳은 바다

지중해는 문명을 낳은 바다다. 그리스와 로마가 지중해에서 태어났고 그 뒤로는 비잔틴제국과 유럽문명의 바다였다. 각종 상품과 각 나라의 문화를 실은 배가 오가는 바다였고 때로는 전쟁에 휩싸이기도 했다. 육지에 갇혀 있지만 그만큼 육지에 수많은 영향을 준 바다, 지중해에 관해 학자 13명이 모여 글을 썼다. 분야는 역사와 건축, 문학, 해양생태학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른다.

지중해는 유난히 푸르다. 단순히 단어에서 연상되는 느낌으로만 푸른 것이 아니라 지중해 바닷물 성분이 유난히 짙은 푸른빛을 내도록 구성돼 있다. 지브롤터 해협의 좁은 입구로만 바닷물을 받아들이는 지중해는 담수의 유입이 많고 바닷물의 교체 주기가 70년 정도다. 1000년을 훌쩍 넘기는 다른 대양의 바닷물 순환에 비해 바닷물 나이가 적은 셈이다. 그 덕분에 지중해의 영양염 수준은 다른 바다보다 매우 낮고, 지중해의 기초생산력을 낮은 수준으로 유지시킨다. 따라서 플랑크톤 역시 빈약하다. 깊이 40m에 이르는 놀라운 투명도와 청명한 파란빛은 이 때문이다.

이 짙푸른 바다를 건넌 것은 ‘소’였다.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벽화에 소가 그려져 있는 데서도 알 수 있듯 황소 숭배는 오래된 전통으로 유럽과 아시아, 아프리카 전역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그리스 신화 속 에우로파 이야기에도 소가 등장한다. 지금의 레바논에 해당하는 페니키아의 공주인 에우로파는 황소로 변신한 제우스의 등에 올라타고 유럽 대륙으로 건너갔고 그 이름이 ‘유럽’의 기원이 됐다고 전해진다. 성경에서 모세가 시나이 산으로 계명을 받으러 간 사이 형 아론이 만들어낸 우상 역시 금송아지였다.

페르시아 조로아스터교에도 소와 얽힌 신화가 있다. 최고신의 부관쯤 되는 미트라 신이 어느 날 산에서 발견한 소의 등에 올라탔고, 소가 반항하자 소의 옆구리를 찔러 죽였다. 이때 소의 옆구리에서 온갖 곡식과 채소, 물고기가 생겨났다고 한다.

지중해는 이후로도 유럽 건축, 문학, 미술 등의 밑거름이 됐다. 그리스, 로마에서 시작된 건축의 전통은 초기 기독교시대와 비잔틴제국, 르네상스 등을 거치며 지금까지 이어져왔다. 특히 지중해 건축에 녹아있는 동양적인 면모와 자연과의 일체성을 중시하는 특징은 19세기 아르누보 양식과 20세기 근대건축의 거장 르코르뷔지에의 건축관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스페인의 문화와 풍광에 영향을 받은 피카소의 그림, 지중해 지역에서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며 가난의 어둠과 지중해 푸른 바다의 눈부신 빛을 동시에 경험했던 카뮈의 소설 역시 지중해가 갖는 문화적 힘을 확인시켜준다.

그렇다면 지중해를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가 좀 더 알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동아시아 바다를 보면 알 수 있다. 서해, 동해, 남해, 동중국해, 타타르 해 등 대부분의 바다가 전형적인 지중해는 아니더라도 각 나라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실제로 공유하는 문화 특성이나 역사적 경험도 많다. 유연성과 개방성을 바탕으로 독특한 문화와 국가 간 관계를 형성해온 서양의 지중해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새샘 기자 iams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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